20세기 초반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1880-1936년)는 저서 ‘서구의 몰락’에서 성장과 쇠퇴의 역사 발전 순환법칙을 제시했다. 인간의 문명은 모든 생명체와 같이 성장과 몰락의 순환을 반복한다고 했다. 새로 태어나 유년기를 거쳐 장년기로 성장하며 노년기를 지나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영국이 EU(유럽공동체) 탈퇴를 결정하면서 EU 또한 성장과 몰락으로 이어지는 슈펭글러의 역사 순환법칙대로 늙어 쇠퇴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6월23일 국민투표를 통한 영국의 EU 탈퇴 결정은 이 섬나라가 1973년 EU 전신인 EC(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한 지 43년 만의 결별이다. EU는 1.2차 세계대전을 치러야 했던 서유럽 국가들이 전쟁을 예방하고 공동 번영하기 위해 만들어낸 지역 경제협력기구이다. 그들은 집단 군사안보기구로는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창설했다.

1952년 서독·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벨기에·룩셈브루크 6개국의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시작한 EU의 팽창은 2000년대로 접어들어 정점에 이르렀다. 소련 공산제국 붕괴 후 동유럽 13국들이 가입, 28개국으로 늘었고 장년기로 접어들었다. 장년기로의 EU 성장은 노년기로의 진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동유럽의 값싼 노동자들이 회원국 간의 자유이동을 보장한 셍겐조약을 이용, 잘사는 영국과 독일 등 서유럽으로 모여들었고 그곳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영국 이민자수는 33만 명에 달했으며 절반 이상이 동유럽에서 들어왔다. 영국이 부담하는 EU 분담금은 연간 178억 파운드(129조 원)이고 그 돈을 내수경제로 돌리면 30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 국가주권을 찾아야 한다는 신고립주의, 국수주의, 반이민, 인종차별주의가 확산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밖에도 소련 붕괴로 안보위협이 사라지면서 EU 국가들은 EU에 남아야 안전하다는 긴박성을 잃게 되었다.

영국의 EU 탈퇴가 EU 붕괴 조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국 탈퇴를 계기로 프랑스·덴마크·스웨덴·네덜란드·체코 등에서 탈퇴 도미노(Domino:연속 붕괴) 조짐이 보인다. EU 회원국들의 탈퇴 여론 확산은 EU의 무능과 불신도 한몫했다. 브러셀에 본부를 둔 EU 기구의 투명성 결여, 흔들리는 유로화 체제, 그리스의 채무 해결 난망, 이슬람권 난민 수용을 둘러싼 회원국들간의 갈등과 대결 등은 EU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EU가 신고립주의, 반이민, 인종차별주의 등의 확산에 밀려 장년기를 거쳐 노년기로 접어들었다는 감을 금할 수 없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국가들이 국가와 민족단위의 배타적 경제로 움츠러든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제3산업혁명인 기술정보(IT) 발달과 그동안 얽히고 설킨 국가 간 상호 경제 의존관계 덕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2018년까지 5.2%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도 향후 2년간 일자리 52만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늙은 EU가 존재적 가치를 상실했다며 떠났다.

EU도 슈펭글러의 역사 순환법칙 대로 쇠퇴기에 접어든 것 같다. 그러면서도 유럽국가들은 기독교 문명, 민주주의 정치문화, 시장경제 뿌리를 함께 하는 동질성을 지닌다. 그들은 EU를 탈퇴한다 해도 경제·안보 협력을 유지해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도 당분간 영국의 EU 탈퇴 충격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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