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주의 지향해온 유럽행로에 큰 충격파
EU개념은 2차대전 참상, 교훈에서 출발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를 떠나기로 결정함에 따라 EU의 분열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단일 국경, 단일 통화, 안정적 회원국을 갖춘 EU의 생존은 그 어느 때보다 덜 가능해 보인다”며 이런 사태를 일찌감치 예견한 학자가 있었다. 나이리 우즈 옥스퍼드대학교 블라바트닉 정치대학 학장 겸 글로벌경제관리 교수는 지난 연초 미국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논문 ‘유럽의 분열-유럽대륙은 어떻게 길을 잃었나’에서 분열하는 유럽을 진단한 바 있다. 영국의 EU 탈퇴 결정을 몇 달 앞두고 나온 우즈 교수에 이 분석에 따르면 유럽의 연방주의자들은 유럽 분열이 별것 아니라고 본다. 이들은 EU가 지금 대단히 야심적인 작업, 즉 주권·국가 지위라는 뿌리 깊은 관념에 도전하는 유럽의 비전을 추진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금융위기 거치면서 흔들

1999년 유로화가 도입되자, 개별국가들이 자국 통화 절하를 통해 금융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잃게 됐다며 많은 사람이 우려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정치통합의 논리에 압도당했다. 유로화 지지자들은 개별국가들이 과도한 부채만 쌓지 않으면 위기를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로화 지지자들의 견해는 2008년 미국에서 터진 금융위기가 유럽으로 번지면서 큰 손상을 입었다. 2009년 10월 그리스 총리가 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는 그리스 부채가 그간 엄청나게 과소(過少)보고돼 왔음을 알게 됐다. 그리스에 돈을 빌려준 주체들 가운데 특히 프랑스·독일 은행들은 그리스 부채에 과다(過多)노출됐다.

EU는 위기확산을 우려해 국제통화기금(IMF)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위기는 진짜 확산되었고 이내 아일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에 영향을 미쳤다. 각국 정부는 부지런히 협상했고, 이른바 트로이카, 즉 유럽중앙은행(ECB)·EU집행위원회·IMF는 ‘EU-IMF 합동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마련해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스페인의 재정위기를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후 EU의 대응책을 보는 외부 시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위기가 유럽을 단결시켰다”는 것이다. EU 회원국들은 위기를 맞아 유로화를 살리기 위해 1조 유로를 투입했다.

유로안정화기구(ESM)를 설립했고, 유럽은행동맹을 현재 구축 중이다. ECB의 권한은 강화되었으며 유럽 정상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만나고 있다. 다른 하나의 시각은 “EU가 뭉치기는커녕 중간에서 쪼개졌다”는 것이다.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등 남부 유럽국들은 EU가 그들에게 부과한 긴축방안을 성토한다. 독일·네덜란드·영국 등 북부 유럽국들은 빚 많은 회원국들에게 EU가 덜 엄격했다고 불만이다. 그리스를 향해 대놓고 EU에서 나가라고 한 북부 유럽의 정치 지도자까지 있었다.

현 시점에서, 유로존 위기에 대한 EU의 대응을 EU의 통합심화를 보여준 증거로 해석하자면 엄청난 낙관주의가 필요하다. 공통의 상징과 관행을 수십 년 동안 쌓고 사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드러난 EU의 분열상은 경제통합에 이어 정치통합을 지향하는 EU의 근본적인 취지에 만족스러울 정도로 부합하지 않는다고 우즈 교수는 본다. 그렇다면 앞으로 EU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인가. 우즈 교수는 EU의 미래 모습으로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방색, 지역주의, 그리고 심지어 분리주의까지 떠오르고 있는 유럽의 현 정치지형에서 EU가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대응 방안은, 독립을 추구하는 소수 민족의 부상(浮上)을 봉쇄할 것이 아니라 수용하는 것이다.

유럽국가들 단합 흔들려

두 번째 가능성은 EU에 대한 독일의 실질적인 주도권이 강화되는 것이다. 독일은 EU의 핵심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하지만 유로화 위기를 거치면서 독일의 막강한 영향력에 위협을 느낀 EU국들도 적지 않았다. 영국 의회 유럽조사위원회 위원장 빌 캐시의 “EU는 갈수록 비민주적인 독일 지배 하의 유럽으로 변형되었다”라는 발언에 이런 정서가 잘 드러난다. EU국가들은 EU 규칙을 계속해서 존중하면서도 ‘유럽 연방’이라는 개념에는 갈수록 흥미를 잃어가고 있으며 EU의 안정이 독일 총리의 자제력에 달려 있음을 두려워한다.

EU의 세 번째 미래는 유럽대륙의 변화하고 있는 인구통계학에 달려 있다. 낮은 출산율과 인구 고령화로 인해 유럽에는 이민 노동력이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EU집행위원회는 2014년 보고서에서 2013~2020년 기간 중 유럽의 근로인구가 750만 명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약 이민 노동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수치는 1170만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 돼 가고 있다. 독일 인구 8100만 명 가운데 1600만 명이 외국인이거나 이민자의 후손이다.

다른 EU국들도 경제가 커가면서 외국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지정학적으로 이민을 막을 수 없는 데다 인구통계학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이민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유럽은 앞으로 더 미합중국처럼 되어갈 것이 뻔하며, 이렇게 되면 유럽통합은 가속화된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과도한 난민 유입에 대한 반발로 이민과 유럽통합 심화에 대한 반대가 가속화할 수 있다.

우즈 교수가 전망하는 가장 가능성 높은 EU의 미래는 독일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협력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 두려움을 느끼느냐 여부는 독일 내부의 정치, 그리고 EU의 공동이익에 집중하게끔 독일을 순치(馴致)해 나가는 유럽 대국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장기적으로 독일 내부의 정치는 독일의 인구 구성이 변화하면서 함께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더 다양한 유럽은 EU 각국의 정치를 변화시킬 것이며 궁극적으로 더 큰 통합을 더 쉽게 만들 것이라고 우즈 교수는 보았다. 하지만 영국의 이탈로 이런 시나리오는 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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