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정치권이 ‘특권 내려놓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면책특권’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명목상 특권은 내려놓고 실질적인 특권을 부둥켜안으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엉뚱한 ‘면책특권’ 공방 뒤에 ‘진짜 특권’이 가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의원이 누리는 ‘진짜 특권’만 200여 가지가 넘는다는 지적이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엉뚱한 면책특권 공방 뒤에 숨은 ‘물타기 전략’
-‘특권’보다는 ‘특권 의식’ 내려놓아야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회에는 ‘특권 내려놓기’ 바람이 불었다. 그동안 관행으로 치부되던 국회의원 특권에 국회가 제동을 건 것이다. 나아가 조응천 의원이 지난달 30일 대법원 양형위원인 MBC 간부가 성추행 전력이 있다며 허위 폭로를 하면서 ‘특권 내려놓기’에 방점을 찍었다. 조 의원의 ‘아님 말고’식 폭로가 국회의원 면책특권 문제로까지 번진 것이다. 면책특권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의혹 제기나 허위 사실 유포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님 말고’식 폭로 후 면책특권 뒤에 숨는 구태

이에 새누리당은 “헌법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에서 면책특권의 개선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국회의 권한을 제약하려는 시도에는 과감히 싸우겠다”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한 정치권 인사는 “우 원내대표의 발언은 의원의 권리만 있고 억울하게 성추행 범으로 몰린 피해자의 권리는 없다는 뜻”이라며 날을 세웠다. 면책특권은 의원들이 거대한 권력과 맞서야 할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부여된 특권이다. 국민의 대표로서 진실 편에 설 수 있는 무기로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튀어보려는 목적의 폭로가 면책특권으로 보호받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야는 정세균 국회의장 직속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자문 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권을 내려놓을 방안을 몰랐던 게 아니고 의장과 정치권의 의지가 선결될 문제”라면서 “자문 기구를 만든다며 위원 구성하다 시간만 보내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는 이미 16대 국회에서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17대 국회에서는 법안으로 발의되기도 했다. 새 국회가 구성될 때마다 국회의원들의 결심은 계속됐다. 하지만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매번 폐지됐다.

이 같은 전력 때문에 국민들은 이번에도 말뿐인 내려놓기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시민 A씨는 “사라져야 할 국회의원의 특권이 정말 무엇인지 모르나. 결국 자문 기구를 구성해 시간을 끌겠다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불체포특권 하나 바꾸겠다고 여론몰이를 하면서 다른 특권은 다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려 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한편 일각에서는 금배지를 다는 순간 그들에게 주어지는 ‘진짜 특권’이 200여 가지에 이른다는 말이 나온다. 일례로 ▲거의 공짜에 가까운 장학혜택 ▲평생 받는 연금 ▲연 2회의 해외 시찰 ▲해외시찰시 공항에서의 VIP 대우 ▲보좌직원 9명을 뽑을 수 있고 보좌직원들의 연봉 4억 원 정도 지원 ▲민방위·예비군 제외 ▲1년 세비만 1억 4,000만 원 ▲명절 휴가비 770만 원 등이다.

특히 세비는 국회를 열지 않아도 지급되고 구속 중에도 지급된다. 이러한 특권들이 진정 국민을 위해 일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특권’이 아닌 국회의원의 ‘권리’ 로서 국민 모두가 이해할 것이지만 언급한 특권 중 어느 것도 의정 활동에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스웨덴과 덴마크 의원들, 특히 국민행복도 세계 1위라는 덴마크의 경우 의원 3분의 1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의원 2명이 작은 사무실과 비서 한 명을 공동으로 쓴다. 당 대표실은 의원들 손님 응접실로 쓰이기도 한다.

하루 평균 12시간씩 일하고 법안을 1년에 백여 건씩 발의하고도 기본급은 800~900만 원 정도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하는 데 반해 아이러니하게도 북유럽의 국회의원들은 재선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치인 누구도 이런 특권을 입 밖에 꺼내지 않고 있다. 대신 면책특권·불체포특권 공방이 정치권을 덮고 있다. 그 사이 정작 국민이 원하는 특권 내려놓기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김영란법)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빠져 국회의원은 부정청탁의 ‘사각지대’에 남게 됐다.

“국회 의원은 정치 원시인”

이와 관련 최근 SNS에는 정치인들을 ‘오스트랄로 폴리티쿠스’라고 지칭하고 있다. 네 발로 걷다가 두 발로 걷게 되는 초기 직립 원시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빗대어 국회의원들이 선거 때만 굽실거리다가 선거가 끝나면 바로 유권자에게 군림하는 자세로 가는 것을 풍자하는 말이다.

실제로 국회에는 국회의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 전용문이 있고 레드 카펫도 깔려 있다. 정작 유권자들은 삥 돌아서 후문으로 드나들어야 한다. 심지어 당선자 합동연찬회에 참석한 20대 국회 초선 의원들이 300m 떨어진 옆 건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 6대가 동원됐고 불과 한 층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3대가 독점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뿐 아니라 심심찮게 의원 보좌관이 경찰을 폭행하거나 정당한 법 집행에 맞서는 기사도 보게 된다. 이런 행동들은 그만큼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특권층이자 권력자라고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역설적이게도 정치권 내부에서조차 의원들의 ‘특권의식’, ‘갑질 행태’가 사라질 것으로 보진 않고 있다. 설사 불체포특권 제한과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 등 일부 제도 개선에서 성과를 거둔다고 해도 특권의식이나 그들만의 문화까지 없애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특권’이 아닌 ‘특권의식’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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