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광폭 행보를 재개했다. 4.13총선을 거치면서 더불어민주당 내 세력화에 실패했고 구의역 사고에 종로구 아파트 개발을 둘러싼 ‘옥바라지 마을 사태’까지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대선주자로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하지만 취임2주년을 맞이해 일주일간 해외순방에 나서고 핵심 요직에 인적 쇄신을 단행하면서 신발끈을 재차 조여 매고 있다. 하지만 야권 일각에서는 박 시장의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차기보다는 차차기로 선회할 공산이 높다는 관측이다. 박 시장이 2017년 대권 도전이 녹록치 않은 배경을 심층취재 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세력화, 빚 청산, 3선 도전, “쉽지 않네~”
-박 시장의 반반(潘半)화법, ‘MB와 오세훈 사이’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7월 5일 서울시청에서 민선 6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세간의 관심은 1년6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 도전 여부였다. 기자회견 전 박 시장은 호남의 심장부인 광주를 방문해 “5.18 희생자, 영령들을 위한 일이라면 역사 뒤로 숨지 않겠다”고 발언한 후로 관심이 고조됐다. 사실상 대권 선언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반기문 화법 구사하는 박 시장 딜레마

하지만 박 시장은 차기 대권 도전 관련 “남은 임기는 법으로 이미 정해졌는데 왜 자꾸 의심을 갖고 묻느냐”며 “시장직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데 왜 자꾸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광주 발언’에서 후퇴했다. 그러면서 “남은 임기동안 여전히 서울의 그늘과 소외를 파고들겠다”며 “역대 시장 명단에 이름 한 줄 올리려고 시장 된 것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장에서 박 시장의 발언을 보면 출마는 하는데 내년 대선은 아니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박 시장이 반기문 사무총장의 말투를 쓴다며 사무총장의  성을 본따 만든 ‘반반(潘半)화법’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반반화법이란 ‘어느 쪽에도 무게를 싣지 않으면서 민감한 주제를 피해 나가는’ 반 총장 특유의 화법으로, ‘반반 화법'이라고 기자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이처럼 박 시장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박 시장의 대권 출마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내년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내 세력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박원순 사단’으로 불리는 인사들은 대거 공천 과정에서 물을 먹거나 본선에서 패배했다.

대표적인 인사가 임종석 전 서울시정무부시장, 권오중 전 서울시 정무수석, 천준호 전 서울시 비서실장, 오성규 전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이사장,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 최측근 인사들의 국회 입성이 실패했다.

그나마 기동민 전 서울시정무부시장과 비례대표 권미희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 대표가 배지를 단 정도다. 잠재적 경쟁자이자 ‘강진 토굴’에 있는 손학규 전 고문의 경우 더민주당 내 20여명이 ‘손학규계’로 분류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박 시장의 세력이 얼마나 미미한 지 잘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력뿐만 아니라 서울 시장 3선 도전도  대권 도전을 가로막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 2011년 10월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서울시장에 취임했고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해 5년째 서울시정을 이끌고 있다. 다음 지방선거는 내년 대선이 끝난 다음해인 6월에 치러진다. 시점이 문제다.

현재 더민주당 내 대권 구도는 1강다약으로 ‘문재인 대세론’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경선을 치를 경우 문 후보를 꺾을 당내 후보는 눈씻고 봐도 없는 상황이다. 박 시장의 고민은 여기서 비롯된다. 서울시장직을 버리는 초강수 배수진을 치고 임할 수밖에 없고 경선이 치열해지면 문 의원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 경선에 참여한 이상 ‘아름다운 경선’은 허울뿐이다.

 3선·차기대권 도전, ‘뫼비우스의 띠’

자칫하면 박 시장은 서울시장직도 잃고 경선 패배로 손학규 고문처럼 정치적 토굴에 갇힐 공산도 높다. 이에 일부 측근들은 대선후보로 나서지 않고 서울시장 3선에 대비하는 편이 박 시장의 최선의 카드라는 조언도 하고 있다.

실제로 문 의원 핵심 주변에는 차기 서울시장에 도전하려는 인사가 존재한다. ‘당권도전’에 나서는 추미애 의원이 대표적이다. 문 의원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대통령 취임후 치러지는 첫 선거 그것도 서울시장 당내 경선에서 영향력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경선에서 ‘각’을 세운 박 시장이 문 의원 대리인으로 나선 후보에게 승리하기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박 시장의 대권 도전과 3선 도전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는 셈이다.

또한 박 시장의 차기 대권 도전이 쉽지 않은 것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의 경쟁구도도 부담스럽다. 차기 대권 도전이 유력한 안 전 대표에게  박 시장은 정치적 빚 청산이 남아 있다. 박 시장이 2010년 11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나서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은 강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던 안 전 대표의 ‘양보’ 때문이었다. 만약 안 전 대표가 양보하지 않았다면 현재 잠룡군으로 분류되고 재선도 불가능했다는 게 안철수 사람들의 시각이다.

안철수 전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권력은 와이프에게도 나눠주지 않는 게 정치권 속설인데 안 전 대표는 박 전 시장에게 서울시장직을 양보했다”며 “그리고 박 시장의 서울시장직은 스스로 권력의지를 갖고 투쟁해서 얻은 자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바람처럼 사라질 공산이 높다”고 내다봤다.

과거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회의원 한 번하고 당 밖에 있다가 혜성처럼 나타나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당내 유력한 후보를 누르고 서울시장직에 오른 오세훈 전 의원을 대표적인 인사로 꼽았다. 결국 ‘바람’처럼 나타나 서울시장직에 당선됐지만 역시 ‘무상급식’이라는 바람에 날려 직을 잃었다. 차라리 임기를 채우고 대통령직 도전에 나서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조언이다.

반환점 돈 박 시장 차기에서 차차기로

현재 박 시장은 임기 절반을 남기고 인적 쇄신을 단행하고 후반기 서울 시정을 대비하고 있다. 서울 시장 본연의 임무에 돌아가 3선과 차차기 대선 도전에 나서겠다는 행보로 읽혀지고 있다. 일단 박 시장은 허영 더민주당 부대변인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허 전 부대변인은 김근태 보좌관 출신으로 춘천 아름다운 가게 초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박 시장과 친분을 쌓아온 인사다. 이번 비서실장 임명에 이인영 의원이 적극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아울러 최창환 정무수석 후임으로 최종윤 단국대 겸임교수 그리고 서왕진 정책특보를 대신해 안균호 전 서울시 정책보좌관을 임명했다. 또한 박 시장은 미디어 특보를 신설해 CBS에서 25년간 언론생활을 한 김주명 전 논설위원장을 임명했다. 김 전 위원장의 임명배경에는 사퇴한 서왕진 전 정책특보가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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