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비자금 조성 의혹 관련 조사를 받았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중반 넘어 종반으로…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롯데그룹 총수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각종 비리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부 전력이 대대적으로 투입, 롯데그룹을 압수수색한 지 한 달여가 흘렀다. 현재 이와 관련해 수사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지목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측근자들의 소환조사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검찰의 전면 수사도 종반부에 다다랐다는 분석이다. 한편 롯데그룹 수사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외하고서도 신동빈·신동주 형제의 경영권 분쟁과 총수 신씨 일가의 복잡한 가계도, 사정기관 별 수사결과, 확대 수사 여부와 범위 등 세간의 시선이 집중돼 있다. 일요서울이 롯데그룹 수사의 지난 한 달과 여전히 남아 있는 의혹을 들여다봤다.

코앞으로 다가온 신 씨 총수 일가 줄소환 예정  
재벌가 비자금·배임횡령 등 사건 실체 드러나나

정경유착 등 또 다른 의혹에 수사 확대·장기화 우려도
형제 경영권 분쟁·사정기관별 눈치싸움도 이목집중

검찰이 수십억 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롯데그룹 압수수색을 펼친 뒤 약 한 달이 흘렀지만, 롯데그룹은 여전히 적색경보를 해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검찰의 수사 칼날이 그룹을 넘어 총수 일가의 목을 겨냥하고 있는 형국으로 몰려 있다.

지난달 10일 서울중앙지검 특수 4부는 롯데그룹의 정책본부를 비롯해 호텔롯데와 롯데쇼핑 등의 계열사, 그리고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머물고 있던 롯데호텔 34층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평창동 자택을 수색했다.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조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비자금 300억 원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롯데그룹에 대한 수사 속도는 거침이 없었다.

검찰은 신동빈 회장의 측근인 이 모 전무의 친인척 집에서 20억 원의 현금뭉치와 함께 신씨 부자가 계열사로부터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돈을 매년 300억 원 가량 받아온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7일 검찰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누나인 신영자 이사장을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부정 청탁과 뇌물 수수를 받은 혐의 등으로 롯데 총수 일가 중 최초로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날인 지난 8일에는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 부자를 3000억 원대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출국금지 시켰다. 현재 사건의 핵심 인물로 거론되는 이인원 정책본부장과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소진세 대외협력 단장의 소환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의 조사가 끝나면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에 대한 조사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르면 다음 달인 8월 초 총수 일가가 검찰에 출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주요계열사들도 혐의를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먼저 롯데홈쇼핑은 지난해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를 상대한 광범위한 금품로비를 벌이는 등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를 받은 혐의(방송법 위반)다.

검찰은 강현구 사장을 비롯한 핵심 임직원들이 차명 휴대전화인 대포폰을 사용해 온 사실을 적발하고, 일부 임직원들의 경우 회삿돈으로 매입한 상품권을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깡 방식으로 로비자금을 조성한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롯데케미칼 역시 일본 롯데물산을 통해 통행료 명목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받는다. 또한 이와 관련해서도 롯데그룹이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어 더욱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4일 일본과의 사법 공조를 요청하는 문서를 법무부에 제출한 상태다.

결국 롯데그룹은 총수 일가 대부분을 위시한 주요 계열사들이 비자금 조성과 비리 행위에 조직적으로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들 인사들의 소환조사와 증거분석이 마무리되면 롯데그룹 수사의 종반전이 시작될 시기라는 것이 검찰 주변의 관측이다.

다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즐비하다는 점은 지켜볼 대목이다. 자칫 검찰의 수사가 갑자기 장기화 노선을 걷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간과할 수 없는 잔재들

여기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도 한 몫하고 있다. 지난 10일 세계일보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한 의원을 만나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재벌수사는 전 정권에 대한 표적수사”라는 발언을 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지난 13일 브리핑을 통해 “제2롯데월드 인허가 특혜 의혹과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과 묘하게 맞물린다.

이날 그는 “신동빈 회장의 제2롯데월드 인허가 특혜 의혹과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면서 “롯데그룹은 이명박 정부 시절 계열사 수가 46개에서 93개까지, 2배 가까이 급성장하며 정권 특혜 의혹을 받아 왔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롯데그룹의 정경유착 의혹은 기정사실로 언급되고 있고, 향후 해당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비자금을 밝히겠다고 시작한 수사가 우리나라 정치 전반을 뒤흔드는 성역 없는 사정 사건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이미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지난 13일 자신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측으로부터 50억 원을 전달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한 아시아투데이를 상대로 5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제기했다고 밝히는 등 적지 않은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검찰이 한 달여간 이어진 수사에도 뚜렷한 실체를 찾지 못한 채 먼지털이식 조사만 거듭하고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신격호, 신동빈 부자의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자금의 성격을 규명하고, 롯데케미칼에 대한 통행세 의혹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특히 수사팀이 “살펴봐야 할 자료가 많다”거나 “수사에 기한을 정한 적이 없다”는 등 수사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발언에 대해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검찰 수사가 한 달을 넘기면서 롯데그룹과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다들 공개적으로 언급하길 꺼려하고 있을 뿐, 수사 확대 가능성과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은 누구나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조여야 하는 시기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건 뒤에 숨겨진 시선

한편 신동빈·신동주 형제의 경영권 분쟁과 총수 신씨 일가의 복잡한 가계도, 사정기관 별 수사일지 등은 롯데그룹 사태를 바라보는 또 다른 눈들이다. 우선 이들 형제 전쟁의 향방은 이미 롯데그룹 내부의 손길이 닿지 않을 만큼 멀어졌다는 의견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신영자 이사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그의 진술에 따라 검찰이 움직일 것은 당연하고, 경영권 다툼의 승자가 여기서 결정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더욱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치매약 복용 사실과 사주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로 인해 더 이상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이 내부교통 정리에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그들의 가계도 역시 이제는 전체 공개된 상황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와 사주들의 관계가 언론에 의해 알려졌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그의 부인들로 알려진 노순화, 시게미쓰하쓰코, 서미경 씨, 각각의 자식인 신영자, 신동주·신동빈, 신유미의 관계와 권력의 이동은 신격호 회장 시대의 폐막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국내 재벌그룹 가운데 경영 일선에 영향을 끼쳤던 마지막 1세대 창업주이지만, 지금의 롯데 상황을 보면 이미 그의 시대가 끝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부분 혐의가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 등 다른 사정 기관이 이전에 조사했던 내용이라는 부분도 수사가 어떻게 마무리될지에 더욱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검찰이 롯데그룹의 새로운 범죄 사실을 밝혀내면 과거 롯데를 조사한 뒤 검찰 고발을 하지 않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의 책임론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롯데그룹은 수사가 장기화할수록 악영향을 받을 것을 고려해 최대한 검찰 수사에 협조해 조속히 사건이 마무리 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검찰 수사와 별개로 근거가 없는 의혹들마저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미지 실추를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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