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태 선수 <뉴시스>

지카 바이러스로 남자골프 톱랭커 대거 불참…올림픽 잔류에 빨간불
남녀 간 올림픽 온도차 극명…한국남자골프 흥행몰이 실패에 불구경


박태환이 올림픽 출전을 위한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꿈을 이룬 사이 남자골프 김경태는 지카 바이러스를 이유로 출전을 포기해 대조를 이뤘다. 반면 손가락 부상으로 미국여자골프(LPGA)투어에서 좀처럼 힘을 쓰고 있지 못하지만 출전을 감행키로 결정하면서 올림픽 출전을 두고 벌어진 엇갈린 행보에 쓴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112년 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골프는 지난 11일 발표된 남녀 골프 세계랭킹에 따라 2016 리우 올림픽에 출전할 남녀 대표선수가 결정됐다. 남녀 각각 60명씩 총 120명이 출전하게 된다.

이에 따라 여자대표팀에는 박인비(3위), 김세영(5위), 양희영(6위), 전인지(8위)가 출전의 기회를 얻었고 남자대표팀에는 세계랭킹 31위인 안병훈과 김경태(42위)가 출전하게 되면서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벌어진 각축전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김경태가 리우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김경태는 이날 매니지먼트사인 IMG를 통해 “가족과 상의를 거쳐 현재 계획 중인 2세를 위해 올림픽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저는 (지카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하더라도 그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이미 최경주 감독님, 대한골프협회와 미리 말씀드리고 조언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김경태는 또 “물론 국가대표로 국위선양을 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아마추어 때부터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11년 프레지던츠컵 등 여러 대회에 이 같은 자부심을 갖고 참가한 바 있다”며 “대한민국 대표로서 나라의 부름에 당연히 응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이번 결정을 두고 오래 고민했다”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그는 “제 결정에 실망하셨을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 골프 대표팀을 응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자발적 불참
국가대표 위상 흔들

▲ 박인비 선수 <사진=와이드앵글 제공>

김경태의 포기로 한 장의 출전티켓은 76위인 왕정훈에게로 돌아갔다.

어부지리로 출전권을 이어받게 된 왕정훈은 지난 13일 매니지먼트사 인 ISM 아시아를 통해 “일생일대의 행운이 나에게 찾아온 것에 대해 감사하고 영광이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메달에 도전하겠다”고 출전 포부를 밝혔다.

앞서 제 145회 디 오픈에 출전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 머무르던 왕정훈은 김경태의 올림픽 출전 포기 소식을 늦게 접하고 자신이 출전할 수 있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을 접했다. 그는 때마침 응원하기 위해 영국을 찾은 부모와 상의한 끝에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한국 선수들 중에 첫 포기 선언이 나오면서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고 있는 선수들 사이에서는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얼마 전 극적으로 올림픽 출전을 위한 국가대표 자격을 회복한 박태환과는 너무도 다른 입장 차이가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박태환은 도핑징계 이후 국가대표 선출 규정에 가로막혀 이중처벌이라는 논란 속에서도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법원과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박태환의 손을 들어주면서 구사일생 출전 기회를 얻게 됐다.

또 손가락 부상으로 LPGA 투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박인비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꿈을 이루겠다며 출전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메달사냥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박인비는 지난 11일 “올림픽 출전은 오랜 꿈이자 목표였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하겠다”며 “올림픽은 국가를 대표하는 일이기에 부상 회복 경과를 보면서 깊이 고민해왔다.

부상은 상당히 호전됐다”고 말했다. 앞서 박인비는 왼쪽 엄지손가락을 다쳐 1개월 정도 투어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이에 그의 출전 가능성을 놓고서도 설왕설래한 바 있다.

하지만 출전의지를 다진 그는 지난달 24일 귀국 후 국내에서 치료와 훈련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 박인비는 9홀 연습라운드를 무리 없이 소화할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측근에 따르면 “(박인비는) 대회에 나가지 않고 올림픽 준비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다만 경기 감각 회복을 위해 다음달 초 국내에서 열리는 제주 삼다수 챔피언십에 출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물론 올림픽 출전 포기가 김경태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상위권에 위치한 선수들도 속속 포기 선언을 하고 있다.

男골프선수 변명…
국제적 조롱거리

지난 12일(현지시간) 골프 세계랭킹 3위인 조던 스피스(미국)가 리우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다.

이날 AP통신에 따르면 스피스는 국제골프연맹(IGF)에 올림픽 불참 의사를 전달했다. 피터도슨 IGF 회장은 “스피스가 건강상의 이유로 올림픽에 나오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리우올림픽 남자골프는 세계정상급 선수들을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보여 흥행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세계랭킹 1위인 제이슨 데이(호주)를 비롯해 더스틴 존슨(2위·미국), 스피스, 로리 매킬로이(4위·북아일랜드) 모두 불참을 선언했다. 여기에 남자 골프 출전 자격을 갖춘 선수 중 18명이나 올림픽 출전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세계랭킹 15위 이내 선수 가운데 7명이 빠지게 됐다.

불참을 선언한 톱랭커들은 지카 바이러스를 이유로 들고 있다. 이들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라도 지카 바이러스의 위험에 노출되기가 겁난다고 해명했다.

김경태 역시 “골프 종목은 모기에 가장 많이 노출된다. 올림픽 기간 중 겨울이라 온도도 내려간다고 하지만 모기가 없어질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다만 지카 바이러스라는 최대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올림픽이 상금도 없는 상황에서 굳이 무리해서 출전해야 하는 이유가 부족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즉 돈도 되지 않는 경기에 건강을 담보로 출전을 감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같은 불참 선언은 골프계뿐만 아니라 체육계에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어 향후 골프가 올림픽에 연착륙할 수 있을 지 물음표를 남기게 됐다.

기로에 선 골프
올림픽 퇴출 가속화

먼저 김경태의 결정에 대해 개인의 의사도 존중돼야 하는 만큼 일부 네티즌들은 국가대표를 꿈꾸는 후배에게 기회를 줬다는 점을 들어 비난의 화살을 세우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지카 바이러스만으로 출전 포기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해명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또 부상에도 불구하고 출전하겠다고 선언한 박인비를 보더라도 다소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 같은 논란이 남자골프계 전반을 뒤덮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정상급 선수들의 불참을 놓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조차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지난 14일 AP통신 등 주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골프 선수들의 불참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상위 랭커들의 불참으로 올림픽에서 골프의 미래가 재평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골프는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는 정식 종목으로 열리지만 2024년 대회부터는 2017년 투표 결과에 따라 올림픽 잔류 여부가 정해진다.

이에 리우올림픽에서의 골프종목에 대한 평가가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지난 12일 “정상급 선수들의 불참으로 올림픽에서 골프의 미래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최악의 경우 골프가 야구처럼 올림픽에서 쫓겨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야구는 올림픽 기간 미국 메이저리그(MLB) 측이 선수를 내보내지 않으면서 갈등을 빚다가 결국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퇴출당했다.

반면 테니스의 경우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프로선수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초반에는 시큰둥했지만 지금은 정상급 선수들 대부분 참가해 연착륙에 성공한 케이스로 평가 받는다.

결국 리우올림픽의 골프 흥행은 찬밥신세가 된 남자골프가 아닌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는 여자골프로 시선이 쏠리게 돼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더욱이 여자골프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응이 부족한 한국남자골프계는 올림픽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기대했지만 김경태의 결정으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손 놓고 바라보는 처지가 돼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 왕정훈 선수 <뉴시스>

한편 올림픽 여자골프 출전을 확정한 박인비는 국내에서 치료와 훈련을 병행한 후 올림픽에 출전한다. 또 김세영과 양희영, 전인지는 LPGA투어 국가대항전인 인터내셔널 크라운과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출전한 뒤 리우데자네이루로 이동할 계획이다.

안병훈과 왕정훈도 브리티시 오픈(디 오픈)을 마친 뒤 입국해 올림픽 출전 준비를 마친 뒤 PGA 챔피언십에 참가한다. 이후 1주간의 짧은 휴식 뒤 이동해 현지 적응에 나설 예정이다. 리우올림픽 남자골프는 오는 8월 12일부터 나흘간 열리고 여자골프는 18일부터 21일까지 치러진다.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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