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부모 “딱 한번 ‘실수’인데…” 황당한 발언까지

법원 “초범·도주위험 없다”며 구속영장 기각

음주운전, 사고 안나면 살인미수, 사고 나면 살인자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지난 5월 13일 새벽 경기도 양평의 한 도로를 운전하던 노부부는 우측 커브길에서 역주행해 온 아우디 차량과 정면충돌했다. 노부부는 이 사고로 7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거쳐 겨우 생명의 끈은 붙잡았지만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됐다. 그런데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것도 모자라 역주행까지 해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의 부모가 피해자 측에 한 발언으로 비판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가해자 부모가 ‘초범이고 실수인데 꼭 구속까지 시켜야겠냐’는 황당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유명 자동차 전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만취상태인 20대 여성이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도로를 역주행해 마주오던 노부부의 차를 들이받아 노부부에게 심각한 장애를 안겼다는 사건의 내용과 영상이 올라왔다.

이 글은 사고로 부모를 잃을 뻔했던 아들이 ‘음주운전의 경각심’을 고취하고자 적은 호소문이었다.

아들 최 씨는 사고로 부모님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며 음주운전으로 가정을 파탄 낸 가해자에게 엄벌을 촉구했다.

사고로 폐차된 피해차량의 모습 <보배드림 캡쳐>

영상 속 긴박했던 사고 상황

공개된 피해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광경이 벌어졌다.

1차로 정상 주행 중 왼쪽 급커브 도로에 진입한 피해차량의 정면으로 갑작스레 밝은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췄다. 이내 차량은 역주행으로 달려오는 아우디 차량과 피할 새도 없이 정면충돌했다. 사고 충격으로 블랙박스 화면이 검게 변했지만 크게 다친 부부의 신음소리는 고스란히 담겼다.

이 사고로 운전을 했던 어머니는 고관절과 슬관절이 파손돼 인공관절 수술을 했고, 동승한 아버지는 사고충격으로 내장 파열이 생겨 소장, 대장, 직장을 잘라내고 장루(배변주머니)를 평생 차야하는 장애를 얻었다. 가해자 권 씨는 경미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의 아들 최 씨는 가해자보다 부모가 상대적으로 많이 다치게 된 경위에 대해 “사고 당시 가해자는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가해자가 과음 때문인지 상황 인지 및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어머니께서 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결과적으로 아우디 차량에 들이받힌 것과 같은 피해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당시 담당 의사는 “아버지는 안전벨트락(승객의 쏠림이 감지되면 다시 벨트를 되감는 기능) 때문에 주행속도에서는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것과 같은 충격이 가해져 내장파열이 생긴 것”이라고 판단했다.

가해자는 24세 어린 여성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술을 마시다 떨어진 술을 사러 편의점에 가는 길이었다. 당시 가해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98%로 만취 상태였다. 심지어 사고가 난 도로는 펜스까지 쳐 있어 중앙선 침범이 어려운 도로였다. 당시 운전자의 인지 능력이 상당부분 떨어진 상태였음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고를 겨우 피했다는 한 목격자는 운전자 외에도 2명의 동승자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동승자도 취한 듯한 얼굴이었다며 사고를 피한 자신도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의 아찔한 사고라며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최 씨는 “수술 직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며 “지금 이 순간도 영상을 보면 두 분의 비명소리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말했다. 또 “두 분 모두 신경불안으로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으며 농사를 지으며 사시는 시골 분이라서 앞으로의 생활에 많이 막막해 하신다”고 말했다.

초범에 어리면 집행유예?

경찰은 가해자 권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현재 가해자가 ‘초범이고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구속 영장을 기각한 상태다. 경기 양평경찰서 관계자는 18일 “피해자의 신체피해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는 점을 수사기록에 첨부해 검찰과 조율한 뒤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씨는 “음주운전과 역주행이 한 가정을 파괴하고 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음주운전에 대하여 얼마나 관대한지 느꼈다”며 “많은 분들께 경각심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라며 영상을 제보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리고 “끝으로 사법부에서는 참혹한 짓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을 한 가해자의 나이가 어리고 초범이라는 이유로 선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가정을 파탄 낸 가해자에게 엄벌을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그런데 첫 호소문을 적은 다음날인 15일 최 씨는 가해자 부모 측에서 피해자 측 법정 대리인에게 “꼭 한 번 실수한 것을 가지고 가해자를 꼭 구속시켜야겠느냐”는 말을 전했다며 분노하는 글을 다시 남겼다. 덧붙여 그는 “가해자 측에서는 만취운전에 역주행까지 한 ‘범죄’를 ‘실수’로 생각하나 보다”며 “이제 사법부의 수사 과정과 판결을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면서 “대한민국 음주운전자 중에 정당한 처벌을 받는 첫 사례가 되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해외 음주처벌 강도는?

우리나라 음주운전 처벌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음주운전 처벌기준은 혈중알코올농도 0.05%~0.1% 미만은 형사 입건 및 100일간 면허정지, 0.1% 이상은 형사 입건이나 면허 취소와 벌금은 150만 원에서 최고 1000만 원을 내야한다.

최근 음주운전 삼진아웃 제도로 음주운전 횟수가 3회 이상일 경우, 5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1~3년의 징역형과 2년간 운전면허 취득자격을 상실시키는 등 법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해외국가의 음주운전 처벌기준에 비해 훨씬 더 낮은 강도의 처벌기준을 두고 있다.

일본의 경우, 0.03% 이상부터 음주운전으로 처벌하며, 운전자에게 주류를 제공했거나 권한 사람도 벌금을 물게 한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1일간 유치장에 구치하는 구류 조치를 하며 기혼자의 경우 그 배우자도 함께 수감한다. 핀란드의 경우 음주운전이 적발된 경우, 1개월분의 급여가 벌금으로 몰수되기도 한다. 호주에서는 음주운전자의 수치심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신문에 음주운전 적발자의 이름을 공고하기도 한다.

경찰은 여름휴가 시즌 동안 음주운전을 근절시키고자 경찰의 집중 단속을 시행한다며 술을 한 잔만 마셔도 운전을 삼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간혹 부득이하게 술을 한 잔이라도 마셨다면, 대중교통이나 대리운전을 이용하고 본인은 운전하지 않는 것이 자기와 다른 사람 모두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전일 저녁이나 새벽에 술을 마셨다면, 아침에 술이 깬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혈중알코올농도는 그대로 유지될 수 있으니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가급적 술을 마신 다음날 오전에는 운전하지 않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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