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 결과가 새누리당의 무참한 패배로 나타나자 새누리당이 대명천지에 밝힌 첫 반성문이 계파 청산을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해서 줄 세우기 하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보였지만, 당 대표라는 사람이 ‘옥새 나르샤’라는 전대미문의 해괴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은 데 대한 진실한 사과 한마디를 들은 기억은 없다.

언론이 K-Y 라인으로 표현한 유승민 의원의 무난한 당선을 위해 공심위가 공천 내정한 유력후보의 무소속 출마마저 못하도록 해놓고 당사자에게 유감 표명 한마디 했다는 소리도 못 들어 봤다. 또 해당 지역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해 참정권을 유린한 당 대표로서의 사과 한 구절 없었다. 이런 김무성 전 대표가 계파 청산을 부르짖을 때 국민 몇이나 저 말을 믿을까 싶었다.

그나마 대표직에서 물러앉아 조용한 모습이 자숙하는 듯해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마저 한낱 뜬구름에 지나지 않았다. 뒤안길에서 칼을 갈고 있었던 게다. 그는 당 대표 당선 2주년을 명분으로 지난 14일 대규모 행사를 열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며 “내가 선봉에 서겠다. 믿고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 행사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1500여명이 모여 사실상 대선 출정식과 같았다고 했다.

공천 파동에 대해선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 안 된다고 생각해 병신 소리를 듣고도 참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부끄러운 ‘옥새파동’ 인가 뭔가를 저질렀다는 얘기다. 뒤안길 자숙 모드 꼭 3개월 만에 본격적인 대선주자 행보에 나선 그가 행사 직후 ‘사실상 대권선언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또다시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대답을 선택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대권에 나서겠다고 한 적 없다”면서 “여론조사에서도 내 이름을 빼달라고 아무리 사정해도 안 빼줬다”고 언론 탓을 한 것이다. 동원된 지지자들과 행사장 곳곳에 ‘그가 필요했다’ ‘반드시 이어 갑시다’란 문구와 자신의 얼굴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내걸린 건 다 뭐였단 말인가. 행사에서 사회자가 “이 나라 지도자 누구냐”고 분위기를 돋우고 참석자들이 “김무성 만세”를 외친 건 또 뭔가.

‘김무성을 공격하라’는 콘서트 프로그램에서는 어느 참여교수가 “문재인·유승민은 브랜드가 있는데 김무성은 뭐가 있나, 김무성이 외교를 아느냐 경제를 아느냐, 콘텐츠가 없는데 참모도 없다”고 했고, 어떤 정치평론가는 “누구(김무성)는 소처럼 궂은일 다하고 욕 듣고 밟히는데, 누구(유승민)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란 말로 빵 떴다. 김 전 대표는 사람이 미련한 거냐, 정치 감각이 없는 거냐”고 목청을 높였단다.

그러나 김무성을 공격하겠다던 이 토크 콘서트는 “그래도 여권에는 (대선후보가) 김무성밖에 없는 거 아니냐”는 결론으로 끝맺음 했다. 기히 다 알고 있는 김 전 대표의 평가를 꺼내 놓고는 ‘그래도 김무성 아니냐’는 식이었다. 행사 마무리에서 김 전 대표는 부인과 함께 테이블을 돌며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었고 지지자들은 “김무성 파이팅” “2년 후 만나자”를 외쳤다는 언론보도다.

이렇게 끝이 난 그날의 행사가 잘못 됐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가 정말 국민을 받들고 옳은 정치를 하려면 먼저 자신의 과오를 성찰하고 대명천지에 떳떳해야 한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계파 청산을 외치고 뒤로는 계파 결집을 획책하는 뒤통수 때리는 그런 행태의 정치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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