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수많은 스타들이 광화문 한 자리에 모였다. 설날 직전 발표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 때문이었다. 지난달 27일, 정부는 오는 7월부터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현행 143일에서 73일로 절반가량 축소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영화계는 “미국의 문화침략을 저지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방침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이는 안성기, 박중훈, 장동건, 최민식, 전도연 등 톱스타들의 1인 시위와 영화인들의 광화문 대집회로 이어졌다. 유명스타들의 이러한 행동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결국 여론의 동요를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영화인들에 대해 “공감한다”는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 언론사에 귤농사꾼이 보낸 편지에 따르면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광고하던 최민식이 이제 와서 미국의 문화 침략을 반대한다는 게 솔직히 짜증이 난다”고 말하면서 일부 농민들과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최근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로 인해 영화계가 떠들썩하다. 지난 4일부터 안성기를 필두로 박중훈, 장동건, 최민식, 전도연 등이 광화문 1인 시위에 나서는가 하면, 지난 8일에는 100명이 넘는 톱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크린쿼터 사수 집회’를 가졌다.

일반 시상식 자리에도 50여명 이상의 스타들이 한꺼번에 모이기 힘들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집회 장소에 이렇게 많은 스타들이 모인 것은 극히 드문 경우다. 이날 집회에는 체감온도 영하 11도의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안성기, 정진영, 황정민, 전도연, 문근영 등 영화배우 100여명을 비롯한 2,000여명의 영화관계자들은 노무현 정부에 스크린쿼터 축소방침을 철회하고,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영화진흥법에 명시하도록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영화인, 농민 ‘동상이몽’

톱스타들의 잇따른 1인 시위와 광화문 집회 등은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 무관심하던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네티즌들 중심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여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현재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더라도 한국 영화의 역량을 감안하면 영화계가 충분히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스크린쿼터 축소가 오히려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영화계에서는 스크린쿼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영화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스크린쿼터의 축소는 ‘영화산업의 몰락’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이날 집회에서 최민식은 “우리는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잘살기 위한 배부른 투쟁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문화를 놓고 미국과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익을 위한 행동임을 강조했다. 또한 영화인 대책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영화배우 안성기는 “미국은 FTA 협상을 할 때마다 협상 카드로 스크린쿼터 축소와 농산물 수입 개방을 요구해 왔다. 영화인들과 농민들은 한 배를 탄 처지”라고 말하며 영화인들과 농민들이 힘을 합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배부른 영화인의 넋두리(?)

하지만 영화인들의 이런 목소리에 대해 일각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스타급 배우들의 1인 시위가 단지 ‘배부른 자의 넋두리’ 정도로 들린다는 것.최근 귤농사꾼이 모 언론사에 보낸 편지에 따르면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광고하던 최민식이 이제 와서 미국 문화 침략에 대해 반대한다고 외치는 데에 솔직히 짜증이 난다”면서 이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이 같은 기사를 접한 네티즌은 “영화배우가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투쟁하는 건 상관할 바 아니지만, ‘델몬트’를 외치던 그가 민족문화수호와 국민의 밥그릇 지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에 저절로 실소가 나온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거액의 개런티를 받는 영화인들이 1인 시위를 하는 걸 보면 짜증스럽다”면서 “우리의 쌀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했고, 왜 이제 와서 농민들과 연대를 하겠다고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톱스타들은 피켓 하나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만으로도 언론과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분신자살 등 극단적인 방법을 써도 유명인사들은 물론, 여론으로부터도 외면을 받아왔다. 때문에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로 톱스타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농민과의 연대’ 주장은 솔직히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금 거리로 쏟아져나온 배우들은 그동안 거액의 개런티를 받으며 유명한 감독들과 같이 작업을 하고 싶어했을 뿐,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무명감독의 영화나 저예산 독립영화 등에는 왜 출연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자생력도 키워야

또한 1,000만 관객의 신화를 이루어내고 있는 한국영화의 호황이 과연 영화인들의 노력과 능력에 의해 형성된 것인지에 대한 물음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영화의 비약적인 발전에는 스타급 배우와 감독, 제작자뿐만 아니라 ‘스크린쿼터’라는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화 제작과정에서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는 박봉의 스태프들, 시나리오 작가들, 신인감독들, 신인 배우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 등 영화계의 어두운 치부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정부가 마련해 놓은 ‘스크린쿼터’라는 안전한 ‘놀이터(?)’에서 영화인들은 거액의 개런티와 유명 감독만을 고집했을 뿐, 스스로 발전하고 경쟁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우기에는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계 안팎의 여러가지 지적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가 “영화인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닌 “국민의 밥그릇 싸움”이라는 배우 최민식의 말대로 전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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