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해군 참모총장 “인공 섬 계속 건설하겠다” 선언
국제재판소, “중국의 남중국해 주장은 법적 근거 없다”

 

▲ <뉴시스>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인공 섬 건설을 계속하겠다고 중국군 수뇌가 밝혔다.

지난달 19일자 AFP통신 보도에 따르면, 우성리(吳勝利)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사령관(참모총장)은 이날 베이징에서 존 리처드슨 미국 해군 참모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남중국해 인공 섬 건설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사령관은 “절반쯤 진행된 난사 군도(영어명 스프래틀리 제도) 인공 섬 건설을 결코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절대로 남해(남중국해) 주권을 희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얽히고 설킨 영유권 분쟁

중국은 오랫동안 마치 남중국해의 대부분이 자국 바다인 것처럼 행세해 왔다. 영유권을 다투는 베트남과는 1970년대부터 남중국해 파라셀 제도(중국명 시사군도·西沙群島)와 스프래틀리 제도 주변 해역에서 크고 작은 무력충돌을 빚어왔다. 역시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필리핀에 대해서는 무력을 사용해 고기잡이와 석유 탐사를 방해했으며, 근년 들어 스프래틀리 제도에서 인공섬 건설에 박차를 가해 왔다. 남중국해를 사실상 지배하겠다는 중국의 의도에 쐐기를 박은 것이 지난달 12일 나온 PCA의 명료한 판결이다. 이번 판결의 골자는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권리 주장’이 무효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규칙을 존중하는 강대국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힘으로 국제 규칙을 무시하는 패권국을 지향할 것인가의 중대 기로에 섰다.

이번 사건은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를 중국이 점령하자 2013년 필리핀이 제기했다. 이 사건은 그 중대성으로 인해 중국·필리핀 두 당사자뿐만 아니라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남중국해는 방대한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어 에너지 자원 면에도 중요하지만 세계 교역량의 3분의 1이 통과하는 해로(海路)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이처럼 중요한 바다에서 중국, 대만,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가 서로 해양 영유권 주장이 겹치는 해역을 놓고 다퉈왔다. 여기에 ‘항해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 원칙을 내세우며 미국이 개입해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미국은 PCA 판결 직전 항모 2척을 남중국해에 배치했으며 중국은 PCA 판결 전날 해당 해역에서 해군이 실탄사격 훈련을 했다.

중국은 자국 어부들이 여러 세기 전에 남중국해에서 섬들을 발견해 이름을 붙였으므로 그 섬들이 중국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남중국해(중국명 ‘남해’)에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이라는 것을 그어 놓고 있다. 남해구단선은 대시(dash) 모양(‘-’)의 선인 ‘단(段)’을 9개 그어 이를 연결한 것이다. 중국 남해안에서 남쪽으로 1500km 넘게 내려오는 이 선은 마치 소 혓바닥처럼 남중국해의 거의 전부를 둘러싸고 있다. 남해구단선이 무슨 뜻이냐는 외부의 질문에 중국은 “남해구단선 안에 들어오는 해역은 전부 중국 바다”라는 식으로 딱 부러지게 설명하지 않는다. PCA는 중국 측 주장을 일축하고 오직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부합하는 주장만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PCA 판사들은 중국의 남해구단선이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고 봤다.

중국이 부지런히 인공 섬을 건설 중인 스프래틀리 제도에 대해서도 썰물 때만 형체가 드러날 뿐이므로 국제법상 어느 것도 섬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PCA는 섬이 아닌 곳은 배타적경제수역(EEZ)을 가질 수 없고 따라서 섬을 근거로 EEZ를 행사하는 필리핀의 권리를 중국이 어선 조업 방해 등으로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中, 판결에 승복하지 않아

중국은 이번 판결을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집행하지도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UNCLOS 가입국이지만 판결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 2014년 인도 정부는 벵골만을 둘러싸고 방글라데시가 제기한 영유권 소송에서 패하자 이를 조용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PCA 판결이 나오자 중국에서는 반대 기운이 높았다. CCTV와 환구시보(環球時報) 등 관영매체들은 PCA와 미국을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내며 성난 여론을 부채질했다. 중국 정부는 이웃 나라들에게 중국은 자국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조처”를 다 하겠다고 경고했다.

중국 최대 온라인쇼핑몰 타오바오 입점업체들은 “필리핀에서 수입하는 말린 망고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등 필리핀 제품 불매운동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UNCLOS를 탈퇴할 것 같지는 않다. 만약 탈퇴하면 법을 깔아뭉갠다는 인상을 외부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문가들이 유력하게 보는 중국의 다음 단계 대응은 남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ADIZ)을 설정하는 것이다.

중국은 2013년 일본과 한바탕 영유권을 놓고 다툰 뒤 동중국해에 ADIZ를 설정했다. PCA 판결이 나온 다음 날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은 중국이 ADIZ를 설정할 권리에 대해 언급했다. 중국의 ADIZ를 통과하는 항공기는 중국 당국에 위치를 통보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상 방어 조처”에 직면할 수 있다. 미 군용기는 현재 동중국해의 중국 ADIZ를 무시하고 있으며 남중국해에 ADIZ가 설정되더라도 역시 무시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양국 전투기가 남중국해에서 적대적인 상태에 돌입하는 위기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가장 우려되는 것은 중국이 PCA 판결의 핵심인 스카버러 암초에 시설을 건설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만약 그곳에 레이다, 항공기, 미사일을 배치하면 그것들은 필리핀과 필리핀 내 미군 기지들에 근접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스카버러 암초를 매립하는 것은 미국의 이익을 위협할 것이며 군사적 점증(漸增)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진핑 중국주석에게 경고했다. ‘군사적 점증’은 해당 해역에서의 미·중 대치 상태 심화를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중국이 조심스러운 자세를 유지하리라 본다. 중국은 오는 9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을 주관한다. PCA 판결에 반발해 중국이 막무가내 식 행동을 하면 G20 정상회담에서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 그것은 중국이 결코 원치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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