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대권 분리’ 당헌 규정상 대선 후보들이 모두 불참하는 새누리당 8.9 전당대회는 대표 후보 5명과 최고위원 후보 8명이 경쟁하는 경선으로 치르게 되었다. 당연히 흥행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후보등록 마감 결과 대표 후보는 이주영·정병국·한선교·이정현·주호영 의원 등 5명이고, 최고위원 후보는 조원진·함진규·강석호·이장우·정용기·이은재·최연혜 의원과 정문원 전 의원 등 8명이다.

친박계는 좌장격인 최경환 의원과 최다선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 각각 불출마를 선택함에 따라 이주영·한선교·이정현 의원 모두가 후보 단일화 없이 끝까지 완주하게 되었다. 비박계 대표 후보들은 당초 ‘친박 패권주의’를 막는다는 미명 하에 친박 대표급 인물들을 주저앉혔지만, 같은 비박계 출신인 김문수 전 지사의 등판마저 ‘계파 음모론’으로 무산시켰다.

결국 비박계의 전당대회 전술전략은 ‘친박 타도’를 위한 후보 단일화 카드 말고는 아무런 비전이 없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급기야 이주영 의원은 “계파 간 또 단일화해서 또 계파싸움하자는 그 얘기 아닙니까? 이건 반혁신입니다!”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동안 ‘혁신 대 반혁신’ 구도를 구두선으로 외쳤던 비박 후보들의 표리부동(表裏不同)에 대한 일갈인 것이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언제부턴가 ‘나보다 당, 당보다 국가’라는 공익을 저버리고 친박의 패권을 욕하면서 친박을 닮아가는, 오로지 ‘계파 이익’과 ‘당권 장악’에만 혈안이 되어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새누리당 당헌 제8조(당과 대통령의 관계)를 들여다보자. 제①항은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고 규정돼 있다. 제②항은 “당정은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하여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한다”고 규정돼 있다.

일본과 같은 내각책임제 국가는 계파정치가 일상화되어 있지만,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여당 국회의원은 모두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여당 의원들 중에 대통령과의 이런저런 인연으로 친소관계는 있을 수 있지만 ‘반 대통령계’ 존재는 바람직하지 않다. 다음 대통령 후보로 정권재창출이 되면 자연스럽게 전직 대통령계는 소멸하고 새 대통령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직 대통령의 임기 말이 되면 집권 여당 내에서는 권력투쟁이 일상화 되어 레임덕을 가속화시키고 국정동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나라의 앞날을 위해 사라져야 할 구태 정치의 표본이다.

당 대표 선거가 후보 개인의 실력보다는 단일화로 변화와 혁신을 역행하고 있지만, 최고위원 선거는 상대적으로 이전투구가 덜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반면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 여성 의원들 간의 ‘최고위원’ 쟁탈전이다. 새누리당은 최고위원 4명 중 1명이 여성 몫이다.

이은재(비주류·재선) 의원과 최연혜(주류·초선) 의원이 자웅을 겨루고 있어 당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은재 의원은 지난 7월 18일 출마 선언문에서 “고질적인 계파 문제를 혁파하지 못하면 우리 당의 미래는 없다”며 계파 척결을 주장했다.

반면, 최연혜 의원은 7월 24일 출마 선언문에서 “당·정·청이 삼위일체가 돼 일사불란하게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코레일 사장 재직 시 ‘철도파업’과 ‘만성적자’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능력을 바탕으로 “철도를 살렸듯이, 새누리당을 살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초선의원의 최고위원 도전에 대해 이은재 의원 측은 “여성 최고위원은 그동안 1명으로 교통정리가 돼서 나왔다”고 주장하나, 최연혜 의원은 “과거에도 초선 여성의원이 최고위원에 당선된 사례가 있다. 잘못된 밀실 담합의 기득권을 깨는 것이 변화와 혁신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대한민국호는 지금 위기에 봉착해 있다. 안보·경제·외교 등 국정의 어느 한 분야도 온전한 데가 없다. 따라서 총선 패배로 위기에 빠진 집권당의 당권을 놓고 친박·비박 간 수준 낮은 계파 다툼은 더 이상 안된다. 수원수구(誰怨誰咎)할 시간이 없다. 전당대회는 대통합을 위한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 계파 패권을 버리고 모두가 하나가 될 때 보수 정당의 정권재창출의 길도 열릴 것이다.

최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니 샌더스가 보여준 경선결과 승복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소중함,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의 “함께해야 미국이 강해진다”는 연설을 새누리당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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