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 기자] <글로리아>가 82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다.

<글로리아>는 악에 종속되는 선, 비이성에 휘둘리는 이성, 나르시시즘에 굴복하는 동정을 쉽고 깊게 표현한 연극이다. <글로리아>가 감당하는 인간의 이중성과 혐오는 관객이 극 중 인물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일반적인 절차조차도 꺼리게 혹은 부끄럽게 만드는 것 같다. 비극적이고도 대립적인 관념의 구체화를 통해 상당한 몰입감을 안기는 연극이다.
 
<글로리아>에는 사무실, 카페 등을 배경으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따돌리는 혹은 잘 모르는 글로리아가 등장한다. 인물들은 갖은 험담과 수다로 시간을 때우면서 불안을 분산시키고 생의 식상함을 분해한다. 글로리아가 퇴직하고 나서 생긴 충격적인 사건, 이후 인물들은 각각 다른 비율로 지닌 트라우마, 욕망, 재능에 따라 급변한 삶을 산다.
 
<글로리아>를 등장인물을 향한 감정이입마저 꺼리게 하는 연극이라고 설명한 것은, 현실이 불만족스러우나 다시 현실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습성을 세밀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강박적이고 나약하고 기회주의적인 잡담은 광범위해서 관객 역시 그 범주에 들어가게 했다. 우리와 우리 주변의 모습을 연극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 하지만 타인의 관점으로 볼 때 타인은 모두 속물에 불과하므로 관객들은 등장인물의 모습이 자신과 같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잡지사 팩트체킹 팀장인 로린은 조직에서 그나마 의인으로 부를만한 인물이다. 헤드폰으로 귀를 막고 급박하게 기사를 확인하는 로린은 비록 과거의 선택과 발자취를 후회하고 업무 스트레스에 괴로워하지만, 그의 무기력과 염세주의는 순수하고 정의로운 인상을 풍긴다. 현재를 비관하는 와중에도 한 때의 영광이나 미래의 가능성을 끌어다 변명하지도 않고, 타인(글로리아)을 오직 자신의 관점으로만 본다. 안전한 울타리 안에 들어가 이성의 감각은 포기한 채 타인을 경멸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극 말미에 로린이 내뱉는 글로리아는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나는 좀 더 존재하고 싶어요.’, ‘이제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좀 더 알아가려고 해요.’ 등의 대사는 유대감이 멸종한 조직 사회에서 힘겨워하는 순수한 인간형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외로움은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헤드폰과 옆 사무실에서 떠드는 사람들 소리의 거리만큼이나 아득하고 적막하다. 정직한 사람의 진심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동정 또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글로리아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지닌 채 지나간 사람은 그만 놓아주자는 로린의 태도는 감동적이다. 하지만 감정을 투영시키려다 멈췄다. 우리와 로린은 비슷한 면모가 있다는 생각은 아마도 착각일 뿐 나를 비롯한 우리가 투영하고 마주해야 할 인물은 로린이 아닌 자기애라는 운명에서 발버둥 치다가 심취하고 단련하거나 혹은 훼손시키는 편집부 어시스턴트들이나 그 윗선 정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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