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여주인공들이 여성스러움을 버리고, 강함과 터프함을 강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최근 새로 시작한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은 <스마일 어게인>의 김희선, <불꽃놀이>의 한채영, <위대한 유산>의 한지민, <미스터 굿바이>의 이보영, <진짜진짜 좋아해>의 유진 등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여주인공들이 이렇게 터프함과 털털함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삼순이 열풍’ 이후 더욱 심해지고 있는 추세. 또한 월드컵 시즌에 맞춰 소프트볼 선수, 아쿠아리스트, 마라톤 선수 등 스포츠 선수를 직업으로 하는 여주인공들이 늘어나고 있고, 청와대 영양사 등의 이색 직업도 드라마의 재미를 높이고 있다.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변했다. 터프하거나 털털하며, 강하고 듬직하기까지 하다. 지난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 캐릭터가 대히트를 기록한 이후, 여주인공들의 털털함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노메이크업 맨얼굴 출연

SBS 드라마 <스마일 어게인>의 김희선. 그녀는 극중 소프트볼 선수로 변신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기존 드라마에서 예쁘게 보이려고 했던 김희선의 외모도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극중 소프트볼 선수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가 하면, 화려한 옷차림보다는 바지에 티셔츠를 즐겨 입고 나온다. 이런 외모에 걸맞게 성격은 더욱 터프하다. 남자들을 향한 발길질에, 노메이크업, 심지어는 서슴없이 욕까지 하는 캐릭터. 제작발표회장에서 만난 김희선은 “이렇게 거친 캐릭터는 처음인 것 같다”면서도 방송에서 욕을 할 수 있다는 게 마냥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MBC 드라마 <불꽃놀이>의 한채영은 <쾌걸 춘향> 이후로 엽기적이고 쾌활한 캐릭터를 이어가고 있다. 드라마에서 한채영은 7년 동안 뒷바라지한 애인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선택하자, 위장취업까지 하면서 복수의 칼날을 간다. 극중 한채영 역시 귀엽고 터프한 복수녀로 등장. KBS 드라마 <위대한 유산>의 한지민. 유치원 교사로 변신한 그녀는 화가 나면 물불 안 가리고 설치는 당차고 엽기적인 캐릭터. KBS 드라마 <미스터 굿바이>의 이보영. 그동안 <어여쁜 당신>, <서동요>를 통해 여성스럽고 청순가련한 여인의 향기를 물씬 풍겼다. 그녀가 이번에는 노메이크업에 청바지와 면티, 앞만 보고 달리는 억척스런 마라톤 선수로 돌아왔다.

이번 캐릭터 변화에 이보영 역시 사극과는 달리 현대극은 ‘메이크업’과 ‘의상’이 가벼워서 편하고 좋다고 밝혔다. MBC 드라마 <진짜진짜 좋아해>의 유진. 극중 청와대 요리사로 분한 유진은 강원도 사투리와 촌스러운 복장으로 완벽하게 씩씩하고 당찬 시골처녀로 변신에 성공했다. 시골 아주머니들이 즐겨 입을 법한 몸뻬 바지와 가디건을 걸치고,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모습에서 과거 SES의 화려했던 유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MBC 드라마 <주몽>의 한혜진은 한민족 최초의 여왕 소서노 역을 맡았다.

극중 주몽(송일국)과 함께 고구려 건국을 도와주는 역. 한혜진이 맡은 역할은 말타기, 활쏘기, 달리기, 칼싸움 등 여느 남자들보다 거칠고 강한 캐릭터다. 5월 말 첫 방송 예정인 <어느 멋진 날>의 성유리. 그녀는 아쿠아리스트 스킨스쿠버를 하며 수족관 안의 물고기들을 돌보는 역할로, 기존 공주의 이미지를 버리고 활동적인 역을 맡았다.

사회적 분위기 반영

이제 드라마에서 여성스러움은 더 이상 여배우들의 ‘무기’가 아니다. 여성 탤런트들이 이렇게 여성스러움을 버리고, 터프하고 씩씩함을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우선, 드라마는 당대의 사회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분위기가 여주인공들의 캐릭터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예로 그동안 드라마에서 발랄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해왔던 김희선. <스마일 어게인>에서 소프트볼 선수를 맡은 그녀는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워낙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녀는 요즘 축구와 야구 등 전 국민이 스포츠를 사랑하는 분위기가 형성이 돼 자연스럽게 ‘스포츠 선수’ 역할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체력장 하는 것도 싫어했다는 김희선. 하지만 이번 드라마를 위해 우리나라 여성 소프트볼 선수 안향미씨에게 지도를 받기도 할 정도로 열성을 보이고 있다.

한 연예 관계자 역시 “요즘에는 월드컵의 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졌다. 요즘 스포츠 관련 드라마가 많아지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것 아니냐”면서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스타들 역시 이러한 흐름에 따라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희선 이외에도 <미스터 굿바이>의 이보영이 마라톤 선수, 어느 멋진 날의 성유리가 수족관의 아쿠아리스트로 분해 스포츠 선수로 나온다.

삼순이 따라잡기

또 한 가지 여주인공들의 캐릭터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제2의 삼순이’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제작자나 시청자들이 모두 바라는 욕구. 지난해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노처녀 삼순이가 사랑과 일을 통해 겪는 갈등이 주연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빛을 발했던 드라마다.

비슷한 내용의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역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로 치장한 ‘공주풍’의 여주인공들은 화면으로 보기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시청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다소 힘들다. 이에 반해 뚱뚱하고, 서른이 넘은 노처녀가 일을 통해 좌충우돌 갈등과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일반인들도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벌써부터 드라마 <불꽃놀이>의 한채영을 두고 ‘제2의 김삼순’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른살 노처녀가 사랑했던 연인으로부터 배신당했지만, 특유의 밝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모습이 삼순이의 김선아와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대리만족 현상

이런 삼순이 열풍은 ‘시청자들의 대리만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주인공이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시청자들은 친근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다가가기 힘든 스타’라는 벽이 허물어지기 때문. 이에 대해 방송의 한 관계자는 “시청자들은 가진 것이 없고, 허점이 많은 캐릭터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된다”며 “스타가 시청자의 기대보다 더 망가져 있을 경우, 더욱 만족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화려한 스타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이중적인 성격으로 보인다”면서 “이러한 여주인공 캐릭터 변화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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