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 사용에 대한 공격 거세
남자 영역 휘젓는 ‘잘난 여자’가 치르는 정치적 대가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하 ‘힐러리’)을 밉상으로 보는 미국인이 더 늘었다. 미국인의 57%가 힐러리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비호감도는 힐러리의 정치 인생 24년 만에 최악이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미국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지난 7월 16~23일 전국 성인 남녀 3545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힐러리에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57%, ‘호감을 갖고 있다’는 응답이 38%로 나타났다.

호감도는 한 달 전의 41%에서 38%로 3% 포인트 줄었고, 비호감도는 54%에서 57%로 3% 포인트 올랐다. 같은 조사에서 경쟁자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비호감도는 힐러리보다 2% 포인트 높은 59%, 호감도는 힐러리보다 2% 포인트 낮은 36%였다. 트럼프야 그렇다 치고 힐러리는 왜 그토록 많은 미국인들에게서 미움을 받는 것일까? 캐나다 앨버타주 중심부에 있는 작은 도시 모린빌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 《모린빌뉴스》는 7월 26일 ‘미국인들의 힐러리 클린턴 혐오라는 미스터리’라는 기사를 실었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미국 유력 신문들은 트럼프와 힐러리를 거의 기계적으로 동등하게 다룬다. 그것이 공직 선거 후보를 다루는 이들 신문의 보도원칙이다. 그런 까닭에 특정 후보에 편향된 기사는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찾기 어렵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모린빌뉴스》의 힐러리 관련 보도는 다소 객관적이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해당 기사를 한번 따라가 보자.

공화당은 그녀를 혐오하고 민주당은 그녀를 의심한다. 여론조사는 그녀가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호감도가 높은 대통령 후보임을 보여준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이론적으로 힐러리는 최고여야 한다.

심지어 민주당 39%도
“힐러리 믿을 수 없다”

그녀는 경험도 풍부하고 온건하다. 민주당 중도우파로서 노조와 월스트리트 양쪽에서 지지를 받는다. 외교에 있어 그녀는 우드로 윌슨과 존 F. 케네디를 계승하는 진보적 강경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힐러리를 가장 자격을 갖춘 대통령 후보라고 치켜세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힐러리는 고전하고 있다. 예비 선거를 치르는 동안 힐러리는 최근에야 민주당에 합류한 자칭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도전을 물리치느라 애를 먹었다.

힐러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 필라델피아의 민주당 전당대회를 하루 앞두고 힐러리는 인기도에서 트럼프에 추월당하기까지 했다. 힐러리는 오래 논란에 휩싸여 왔다. 남편 빌 클린턴이 대통령(1993년 1월~2001년 1월)이었을 때 퍼스트레이디로서 그녀는 정부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맡았다. 의료보험 개혁을 총괄하는 역할이 대표적이었는데, 그 개혁은 끝내 실패했다. 백악관에서 살던 시절 클린턴 부부는 화이트워터게이트와 트래블게이트에 오래 시달렸다.

전자(前者)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 시절 힐러리의 친구인 제임스 맥두걸과 함께 설립한 부동산개발회사 화이트워터의 지역 토지개발을 둘러싼 사기 의혹이다. 후자(後者)는 1993년 힐러리가 이례적으로 백악관 여행국 직원 7명 전원을 해고한 사건에 대한 의혹이다. 이들 두 스캔들과 관련해 각각 특별검사가 임명돼 수사했지만 힐러리가 나쁜 짓을 했다는 증거가 없어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그런데도 클린턴 부부가 백악관을 떠날 즈음 대중의 머릿속에는 힐러리가 뭔가를 감췄으리라는 의심이 뿌리를 내렸다. 현재 공화당은 힐러리가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장관(2009년 1월~2013년 2월)으로 있으면서 번번이 외교실책을 범했다고 몰아세운다. 《모린빌뉴스》도 힐러리가 리비아 독재자 가다피 축출 후의 혼란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국무장관 시절 힐러리의 인기는 전반적으로 높았다. 인기가 급강하한 것은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난 2015년 이후다. 이 사안과 관련해 미연방수사국(FBI)은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미국 하원에서 “2012년 리비아 주재 미국 영사관에서 미국 외교관 4명이 괴한의 공격을 받아 숨진 사건과 관련해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의 업무 소홀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라고 물고 늘어졌지만 이 또한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 사건은 힐러리에 대한 대중의 해묵은 의심을 다시 일깨웠다. 5월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원의 50%가 힐러리를 믿을 수 없다고 봤고, 심지어 민주당원의 39%가 같은 견해를 밝혔다.

남편에게 인정받는 힐러리
대선 앞두고는 역풍 맞는 중

여기에다 그녀는 이제 트럼프의 정조준 대상이 되어 있다. 트럼프의 선거 구호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미국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힐러리가 범죄자라는 것이다. 7월 18~21일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장에 모인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이 “그녀를 잡아넣어라”는 구호를 외쳤다. 범죄자이므로 힐러리를 구속하라는 것이다. 일부 극성팬은 힐러리 얼굴을 본뜬 가면을 쓰고 스스로 손에 수갑을 채운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모린빌뉴스》는 힐러리가 그런 치욕을 당해도 싸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힐러리가 100점 만점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예비경선 유세 과정에서 어느 경쟁자의 아버지가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연루됐다고 발언한 트럼프보다야 낫지 않느냐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왜 힐러리가 이토록 미움을 받는 것일까? 그것은 전통적으로 남자의 게임으로 간주되어 온 것을 수행하는 강한 여자가 치르는 정치적 대가라는 것이 이 신문의 결론이다. 마거릿 대처, 앙겔라 메르켈, 골다 메이어, 인디라 간디 같은 여성 지도자들을 떠받들어온 세계에서 2016년 대명천지에 멀쩡한 힐러리를 이토록 몰아세우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냐고 이 신문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힐러리는 명문 웰슬리 여대 졸업식 때 학생대표로 연설했다. 예일대 로스쿨에서 빌 클린턴을 만나 결혼했고 결혼 3년 만에 주지사 부인이 됐다. 이후 변호사로 계속 일했고 퍼스트레이디에서 물러난 뒤에는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국무장관을 지냈다. 1992년 대통령에 처음 도전했던 빌 클린턴은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고 ‘하나 값에 두 개(two-for-one)' 구호를 외쳤다. 자신이 당선되면 똑똑한 변호사 출신 아내 힐러리까지 국민의 공복으로 얻게 된다는 뜻이었다. 남편도 인정하는 ‘똑똑이‘ 힐러리가 대선을 앞두고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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