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호령하던 재벌 총수 근황 추적

▲ 강덕수(왼쪽) 전 STX그룹 회장과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뉴시스>

조동만·정태수, 세금 체납왕…장진호·신명수, 쓸쓸히 별세
현재현·강덕수, 교도소 신세 전락…최원석, 새 분야 활약
재계 순위권 올랐다가 ‘뚝’…무리한 사업 확장 발목 잡아
그룹 재건 꿈꿨지만 과거 명성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한때 대한민국 재계를 이끌던 총수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을까. 일부는 간간이 고액 체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거나, 객지에서 쓸쓸히 임종을 맞으며 대중들의 ‘반짝 주목’을 받는다. 경제 지도층의 정점에서 손가락 하나로 재계를 호령하던 당시와 비교하면 비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이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그리 곱지 않다. 대부분의 재벌 총수가 재계를 떠나면서 남긴 뒷모습이 썩 바람직하진 않았던 까닭이다. 일요서울이 이들의 현재 상황을 추적해봤다.

국세청이 매년 공개하는 고액 체납자 명단에는 그룹을 경영하다가 부도를 맞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총수들의 이름이 올라온다. 지난 3월 발표된 명단에서는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 눈에 띄었다. 조 전 부회장은 709억 원의 세금을 내지 않은 채 수년째 버티고 있다. 그는 최근 이 같은 혐의로 출국이 금지되자, 법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패소가 확정돼 주목을 받았다.

조 전 부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전 회장의 외손자로, 이 전 회장의 맏딸 이인희 고문의 아들이다. 한때 정보통신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유력한 승계자로 거론됐지만 사업부진으로 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적발되기도 했다. 그는 신주인수권을 헐값에 인수해 회사에 손실을 끼치고, 회삿돈을 담보로 제공하는 등의 혐의로 지난 2005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체납 액수로만 따지면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도 대표적인 ‘체납왕’이다. 이들의 체납액은 각각 2252여억 원과 1073여억 원이다(국세청 공개시점 기준).

“세금 낼 돈 없다” 체납왕

정 전 회장은 지난 1991년 12월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사건에서 국회의원 등 정·관계 인사들에게 뇌물을 뿌린 혐의(뇌물공여 등)로 구속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1995년 특별사면됐다. 정 전 회장은 1997년 한보사태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2년 말 다시 사면되면서 ‘사면 재수생’이라는 호칭도 얻었다.

이후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 일부를 영동대 학생 숙소로 임대하는 허위 계약을 맺고 임대보증금 명목으로 72억 원을 받아 횡령하는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6개월이 확정됐다. 정 전 회장은 2007년 항소심 재판을 받던 중 도피성 출국을 한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알려진 최 전 회장은 할렐루야 교회 원로장로를 맡아 다양한 종교 활동에 전념하는 알려졌다. 최순영 전 회장은 지난 1976년 최성모 창업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신동아그룹은 1999년 최 전 회장이 국내 4개 은행으로부터 수출금융 등의 명목으로 1억8500여만 달러를 대출받아 편취하고 이중 1억6500여만 달러를 해외로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게 몰락의 시초였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최 전 회장의 주식은 모두 휴지조각이 됐고 신동아그룹 주력 기업이던 대한생명은 100% 정부 소유로 넘어갔다. 최 전 회장은 결국 경영권도 잃었다. 법원은 2006년 최 전 회장에게 징역 5년에 추징금 1574억 원을 확정 판결했다.

2008년 광복절 특사로 형 집행은 면제됐지만 추징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고액 체납자 명단에 매년 이름이 오르는 이유다. 일부 총수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면서도 천문학적인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이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현행 조세범처벌법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재산을 숨기거나 빼돌린 경우 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이 경우 검찰은 국세청 또는 세무서의 고발을 접수해야만 체납자를 재판에 넘길 수 있다.

교도소 신세 전락

그룹 경영자에서 교도소 수감자 신세로 전락한 인물도 있다.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강 전 회장은 수천억 원대 배임·횡령과 2조 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2014년 5월 구속기소됐다. 이후 같은 해 9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아 현재 수감 중이다.

강 전 회장은 2001년 쌍용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쌍용중공업이 모태인 STX그룹을 절묘한 인수합병(M&A)으로 재계 11위까지 올려놓은 인물이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로 주력사업이던 조선과 해운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그룹은 위기를 맞았다.

현 전 회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1조3000억 원대 기업어음(CP)을 사기발행한 이른바 ‘동양사태’로 1심에서 징역 12년의 중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7년으로 감형받았다.

동양그룹은 만기를 앞둔 회사채와 CP를 상환하지 못하고 동양을 비롯해 동양레저, 동양시멘트,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네트웍스 등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주요 계열사 및 보유자산을 처분했다. 한때 재계 38위까지 올랐던 동양그룹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태다.

수감생활을 하다가 최근 출소한 인물도 있다. 임병석 전 C&그룹 회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임 전 회장은 500만 원으로 설립한 칠산해운을 모태로 계열사 41개, 재계서열 71위의 그룹을 일궈낸 입지전적인 경영인이었다.

그러나 수천억대 비자금조성과 정관계 로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된 임 전 회장은 2011년 1심에서 징역 10년, 항소심에서 징역 7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서울고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임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까지 복역하다가 만기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기 꿈꿨지만…

재기를 꿈꾸다가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총수도 있다.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은 지난해 4월 중국 베이징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동안 해외를 떠돌며 생활한 장 전 회장은 재기를 모색해 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꺼비 소주’로 유명한 진로그룹의 모태는 장학엽 창업주가 1924년 평안도에서 설립한 진천양조상회로, 1965년 생산방식을 증류식에서 희석식으로 전환하면서 당시 점유율 65% 이상을 차지하던 삼학소주를 물리치고 소주시장 1위를 차지했다.

1988년 그룹 회장에 취임한 장 전 회장은 ‘탈주류’를 선언하고 광고·유통·건설·제약·식품 등으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손을 뻗었다. 이런 공격적인 사업확장으로 진로그룹은 1996년 24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19위의 재벌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무리한 외형확장은 몰락의 단초가 됐다. 1997년 ‘IMF 사태’로 자금 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돼 부도처리되면서 사실상 그룹이 공중분해됐다. 이후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와 중국에서 은행과 부동산 개발회사, 카지노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왔다고 전해진다.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도 장 전 회장과 비슷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신 전 회장은 지난 2014년 8월 숙환으로 별세했다. 신 전 회장은 부친인 창업주 신덕균 전 회장이 설립한 신동방에 입사해 1989년부터 회장직을 맡아 그룹을 이끌어왔다.

신동방그룹의 위세는 1990년 신 전 회장의 딸 정화씨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와 결혼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1995년 신동방그룹이 대검 중수부의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에 연루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신 전 회장은 1997년엔 대농그룹의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추진했다. 당시 계열사들과 우호세력이 투입한 자금은 2000억 원대에 달했다. 그러나 전경련의 지원을 받은 대농의 방어로 인수는 불발에 그쳤고 이후 자금난을 겪어야했다.

신동방그룹은 1999년 결국 워크아웃기업으로 전락했다. 이후 2002년 경영 정상화 작업을 자율 추진으로 전환하면서 그룹은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이후 부인과 아들을 통해 하이리빙 경영에 관여하며 재기를 모색했지만 끝내 과거의 명성은 되찾지 못했다.

새 분야에서 유명세

재계를 떠나 새로운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도 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은 교육 분야에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회장은 현재 동아방송예술대학교와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를 운영하는 공산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07년에는 동아방송예술대학 학내 기업이 제작하는 영화 ‘굿바이 테러리스트’ 총감독을 맡아 영화계에 입문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의 과거 연예계 부인들과의 결혼 스토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 전 회장은 배우 김혜정, 펄시스터즈 멤버였던 배인순, 아나운서 장은영 등을 차례로 아내로 맞았다. 장 아나운서와는 지난 2010년 이혼했다.

한때 승승장구하던 동아그룹은 주력사였던 동아건설이 외환위기 당시 부실에 빠지면서 그룹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1998년 동아그룹은 국내 최초로 기업개선작업 대상기업으로 최종 확정되면서 한때 재계 10위 자리를 지키던 적도 있지만 끝내 그룹이 산산이 흩어졌다.

sh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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