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수만 마리 모이면 성 무너뜨린다”

전체 전기사용량 13% 가정용엔 ‘누진’
사용 85% 넘는 일반·산업용은 ‘제외’
정부, 7~9월 전기요금 20% 한시적 인하
곽, “누진 피해 사실 인정하는 셈” 반박
징벌적 누진제 폐지해 단일요금제로 가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폭염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요구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가정에서 전기를 쓸수록 폭증하는 요금 때문에 여론이 빗발치자 지난 11일 정부와 새누리당은 긴급회의를 열어 7~9월에 한시적으로 가정용 전기요금을 20% 가량 할인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정용에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누진제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여론을 주도하며 한전(한국전력공사)을 상대로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로도 잘 알려진 법무법인 인강 곽상언 변호사(45·사법연수원 33기)다. 일요서울은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그의 주장을 직접 들어봤다.

 
수화기를 통해 넘어오는 그의 목소리는 무척 피곤한 것 같았다. 곽 변호사는 “갑자기 쏟아진 관심 때문에 너무 바쁘다”고 했다. 이어 “그래도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전을 상대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2014년 8월 가까운 지인 20명 정도를 설득해 참여한 소송에 12일 오전 현재 1만22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곽 변호사는 “하루에 수천 건의 문의전화가 들어오고 있다”며 “개미 한 마리는 성을 무너뜨리지 못하지만 수천, 수만 마리가 모이면 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서 최종 인원 목표는 10만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소송은 서울중앙지법 3건, 서울남부지법 1건, 대전지법 1건, 부산지법 1건, 광주지법 1건 등 총 7건으로 산발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 이유에 대해 “이 중요한 사안을 한 사람의 판사에만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이같이 했다”고 밝혔다.
 
비정상의 정상화
 
한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기업이자 대한민국 전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유일한 전기판매사업자다. 한전은 대한민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전기공급약관’을 통해 사용자에게 요금을 부과한다. 전기공급약관은 가정에서 쓰는 주택용, 기업에서 쓰는 산업용, 자영업자 등이 쓰는 일반용 등 6가지로 나눠 요금을 분류하는데 현재 주택용 전기요금에 대해서만 누진제 규정을 두고 있다.
 
곽 변호사는 소송 취지에 대해 “보통의 경우 사업자들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통해 요금을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이 때 소비자가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업자와 거래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전기는 그렇지 않다. 선택권이 없다. 소비자는 생존·생활을 위해 사용하는 것인데 오직 한전이 판매하는 전기만을 구매해야 한다”며 운을 뗐다.
 
이번 소송은 표면적으로는 한전을 상대로 하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하는 것이다. 정부가 한전의 전기요금을 전기공급약관을 통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곽 변호사는 “매달 전기요금을 내지만 요금이 어떻게 산정되는지 적정하게 책정된 건지 아는 국민은 거의 없다. 가정용 전기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누진제 규정은 불합리하다”며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위해 꼭 필요한 소송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곽 변호사는 소송에 대해 한전의 ‘전기공급약관에 따른 주택용 전기요금 규정’이 위법이라며 소송의 법적 근거를 설명했다. 그는 “부당이득이 되려면 요금징수의 근거가 위법해서 무효가 돼야 한다. 그 근거는 한전의 전기공급약관에 따르는데 약관에 나와 있는 ‘주택용 전기요금 규정’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에는 불공정한 법률을 규제하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 있고 이 법률은 소비자·고객의 이익에 현저히 반하는 약관을 무효로 하고 있다”며 “따라서 한전의 주택용 누진제 요금 규정은 무효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기요금 누진제 관련 KBS 보도 캡쳐
‘징벌적’ 요금제
 
곽 변호사는 현 규정의 누진율이 지나치게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전기요금 체계는 총 6단계로 1~100kwh가 1구간, 101~200kwh가 2구간, 이 같은 방식으로 500kwh를 초과하면 6구간이다. (표 참조) 산업용 전기는 어느 단계에서나 1kwh당 81원으로 동일한 반면, 가정용 전기는 1구간에서는 1kwh당 60.7원, 6구간에서는 709.5원으로 누진율이 무려 11.7배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각 가정이 부담하는 전기요금의 ‘실질적’ 누진율은 이보다 훨씬 더하다고 곽 변호사는 강조했다. 50kwh를 사용한 소비자와 550kwh 소비자가 있으면 사용량이 10배이기 때문에 당연히 전기요금도 10배만 내면 될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50kwh사용자는 550kwh사용자보다 실제로는 41.6배 더 많은 요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주택용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전력량 요금’ 구조인데 두 가지 모두 6단계의 누진율이 적용되기 때문”이라며 “기본요금의 누진율은 약 30배, 전력량 요금은 11.7배로 실제 계산해보면 41.6배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한전은 지금까지 기본요금의 누진율은 뺀 채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율이 11.7배라고 설명해왔다”며 “그렇다 쳐도 11.7배는 과도한 징벌적 요금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곽상언 변호사는 누진율이 적용되지 않는 구간은 1구간뿐이지만 이는 누구든지 넘을 수 있는 단계여서 사실상 모든 가정이 누진율 적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구간의 100kwh는 집에서 냉장고, 전기밥솥, 세탁기만 틀어도 넘는 수치”라며 “1인 경제활동 가구 중 특히 밤늦게 집에 들어가고 아침 일찍 나가는 사람을 제외하곤 사실상 모든 가정이 누진제의 대상이다”고 말했다.
 
정부 주장 설득력 없어
 
그동안 정부는 저소득층을 보호하고 전기 과다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취지로 전기요금 누진제를 도입해왔다. 그러나 곽 변호사는 이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전기 과소비 억제는 가정뿐 아니라 기업 등 모든 경제 주체에 적용돼야 함이 마땅하다. 게다가 전체 전기 사용량을 보면 전 가정이 사용하는 전기량은 전체의 13.6%에 불과하고, 일반 자영업자들은 30% 이상, 기업의 사용량은 55%가 넘는다. 전체 사용량의 85%가 넘는 일반·산업용 전력이 누진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이 과연 정당한가”라고 반문했다.
 
더욱이 그는 “일반 국민들이 전기를 사용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생존·생활을 위한 것이지만,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 추구를 위해 전기를 사용하는 것”이라며 가정용 누진제의 부당성을 거듭 강조했다.
 
저소득층을 위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맞받아쳤다. 그는 “주택용 전기는 소득과 관계없이 집에 사람이 많고 오래 있을수록 사용량이 늘어나기 마련”이라며 “저소득층이라고 하더라도 집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어린아이가 있으면 24시간 거주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사용량이 증가, 폭탄 요금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기초수급대상자, 차상위계층, 세 자녀 이상 가구 등에는 요금 할인·연체 탕감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그러나 곽 변호사는 이마저도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누진제 규정이 없으면 그런 보완 제도 자체가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마치 징벌적으로 요금을 부과하고 다른 제도를 두는 셈”이라며 “비유를 들자면 누진제라는 뺨을 때린 다음에 보완제로 반창고를 붙여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외국선 어떨까
 
미국, 일본 등 일부 다른 국가에서도 누진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폭탄’ 수준이 아니다. 미국의 노스&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듀크 파워(Duke Power)라는 회사는 누진 단계 기준 전력량이 1000kwh다. 우리는 100kwh만 넘어도 누진율이 적용되며 500kwh 넘으면 최고 단계다. 미국의 누진 배율도 1.1배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오직 여름에만 적용한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일본의 누진율은 1.4배(3단계), 대만은 2.4배(5단계) 수준에 그친다. 곽 변호사는 “11.7배와 같은 비정상적 고율의 누진제를 오직 주택용 전력에 대해서만 사계절 내내, 24시간, 100kw만 넘으면 누진제가 적용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못을 박았다.
 
승소, 조심스럽지만 긍정적
 
지난 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누진제를 개편하면 ‘부자감세’ 구조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전기요금제에 손 볼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틀 후 11일 정부는 기존 입장을 뒤엎고 7~9월에 한시적으로 약 20%를 인하한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 7월분은 9월 고지서에 소급해서 할인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곽 변호사는 근본 대책이 아닌 일시적 방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용도별로 요금을 차등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며 “이는 소비자를 차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기사용량 50%가 넘는 산업용 전력이 여전히 누진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은 산업용, 특히 대기업의 전기요금을 일반 국민이 보전해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용도별 전기요금 체계를 폐지하고 단일 요금 체계로 가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완화 정책을 내놓긴 했지만 전기세 누진제를 둘러싼 불만이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소송은 갈수록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일정 기간 동안의 전기공급약관(2012년 8월 6일~2013년 11월 21일)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소송은 승소했을 시 자신이 실제 사용한 전기사용량에 따라 산정된 반환 금액을 받게 된다. 소송에 참여한 사람만 부당이득금을 받을 수 있다.
 
▲ 법무법인 인강 홈페이지 캡쳐
2년째 이어지고 있는 1심 소송은 다음달 22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결론이 나올 예정이다. 이번 1심 결론은 전국에 산발적으로 제기된 같은 취지의 소송에도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곽상언 변호사는 소송 승소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는 “우리 측 주장과 이 사건의 본질이 법리적으로 옳지 않았다면 이미 패소해 끝났을 것”이라며 “하지만 법원에서 2년 동안 심리를 한다는 것은 우리 측 주장이 타당성이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10만으로 간다”며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해 선한 결과로 보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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