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연예계 침투

한류 열풍에 힘입어 급성장한 연예계가 조직폭력 세력에 휘둘리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협박을 견디다못해 검찰 수사를 요청한 권상우 외에도 일부 한류 스타들이 조폭들의 협박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연예계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권상우를 협박해 매니지먼트권을 행사해온 폭력조직 출신 매니저 A씨를 구속 기소하고, 권상우에게 일본 팬미팅을 강요한 혐의(강요미수)로 전 서방파 두목 김태촌을 함께 기소하는 등 6일 연예계 조폭 관련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형사3부에 따르면 A씨는 양은이파 행동대장의 아들이자 신학동파 조직원 출신으로 2003년 5월부터 2년 동안 권상우의 매니저로 활동해왔다.

그는 권상우가 전소속사인 I사와 계약이 끝나는 지난해 9월부터 자신과 전속 계약을 맺지 않으면 언론에 약점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고, 이에 굴복한 권상우는 ‘매니지먼트를 A씨에게 맡기고 이를 어길시는 10억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특히 A씨는 “나는 감방 가도 편하게 지낼 수 있지만 연예인 스캔들이 알려지면 얼마나 파장이 큰지 아느냐, 무사할 것 같으냐”며 권상우에게 겁을 줬다.

A씨의 권상우에 대한 협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5년 11월, 유명 연예인 S씨가 강남 불법 도박장에서 도박을 벌이다 붙잡힌 적이 있다. 당시 A씨는 권상우가 도박장에 있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권상우의 협박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연예계의 실상은 ‘조폭’이나 매니저에게 협박당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화려한 모습 뒤 감춰진 상처
이번 사건은 한마디 협박에 수십억원을 뜯기고 코스닥 등록업체임에도 불구, 주먹구구식으로 수백억대 횡령이 이뤄지는 등 연예계가 화려한 모습 안에 감춰진 곪은 상처를 안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무명이었던 권상우를 키운 I사 전대표 H씨의 경우 폭력조직 ‘신학동파’ 비호세력으로 검찰의 관리 대상이었던 인물.

H씨는 I사가 Y사에 넘어가게 되자 권상우 등 I사 소속 연예인들의 약점을 폭로하겠다고 Y사 대표를 협박해 25억원의 채권을 포기하도록 하고 추가로 8억원을 받아내는 등 33억원을 뜯어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원에 의해 두 차례 영장이 기각된 H씨는 “Y사측에서 받은 33억원은 적법하게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때 강남 유명 J나이트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던 H씨는 횡령혐의로 함께 기소된 J씨와 더불어 연예계의 ‘거물’로 꼽혔다.

유명연예기획사 D사와 모케이블TV를 운영하던 J씨의 경우, 2002년 1월 모케이블TV 명의의 50억원짜리 약속 어음을 발행해 개인적으로 오피스텔 부지 매입에 쓰는 등 3년여간 회사돈 4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J씨와 H씨가 함께 경영해온 D사(현 P사)는 코스닥 등록업체였지만 금융당국의 감시는 미치지 못했다.


협박에 떠는 한류스타들
폭력조직과 연예계의 악연은 상당히 오랫동안 뿌리 박혀 있다. 폭력조직은 2000년 초반 연예기획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어엿한 사업가를 자처하며 양지로 나오게 된다. 작년 2월 유명 가수 J씨 공연이 끝난 뒤 뒤풀이에서 공연기획사 대표가 폭력배들을 동원해 술자리에 오라며 J씨를 위협하자 J씨 역시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사건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검찰은 권상우 협박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몇몇 한류스타들이 비슷한 협박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객관적인 증거가 일부 확보된 사건들이 있어 매니저 3명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한결같이 조사를 회피했다”며
“대부분 협박을 참더라도 ‘문제를 노출시키면 일이 더 커지는 만큼 조용히 살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검찰은 연예계 침투 조폭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박충근 부장검사는 “한류스타 등 국내 문화산업 보호를 위해서는 일회성 수사로는 부족하다”며 “조폭 세력에 대한 지속적 감시와 철저한 피해실태 파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부장검사는 “한류열풍에 편승, 한류스타들의 해외 활동이나 캐릭터 상품판매 등 이권 개입 소지가 있는 분야에서 해외 폭력 조직과 국내 폭력조직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할 것”이라며 “특히 해외 조폭의 자금 유입 경로를 추적해 국내 연예계와의 연결 고리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영화·드라마서 조폭 미화 문제

조직 폭력배 관련자들이 연예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조직 폭력배 관련자들이 이미 연예계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다음으로는 연예계의 특성상 은밀히 이뤄지는 협박은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검찰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보복을 두려워해 피해진술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조직 폭력배는 신종 사업에 진출해 돈벌이에 나서는 사업가에 가깝다.

모 폭력조직의 조직원은 “사업 추세로 따지면 연예기획사, 건설, 용역, 바다이야기를 차린다”며 “한 달에 100만 원에서 300만원 사이의 수입을 올리는 조직원이 30% 정도로 가장 많고, 30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를 받는 조직원의 비율도 28% 정도다”
라고 말했다.

조직 폭력배는 주로 유흥업소나 오락실 등을 운영하면서 돈을 끌어 모은다. 업소를 직접 운영하거나 이른바 ‘뒤를 봐 준다’는 명목으로 수입을 올리는 조직이 가장 많다. 부동산 개발에 개입하거나 빚을 대신 받아 주는 대가로 돈을 벌어들이는 등 돈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손을 댄다.

한편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조직 폭력배들이 신종 사업에 진출하는 모습이 지나치게 미화된다는 것이다.

일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특히 사람들의 의식을 왜곡시킬 정도다. 이 같은 환경에서 날이 갈수록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조직폭력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사 체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