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는 곳이 그 날의 잠자리”

▲ 서울역 광장 앞

탈(脫)노숙 위해 주거·일자리 사업 적극 지원해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30도를 훨씬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거리에서 24시간 더위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노숙인들이다. 국내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역에 가면 노숙인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서울역 주변에만 200~300명에 달하는 노숙인들이 있다고 알려진다. 서울역은 누군가에겐 고향을 오가는 교통시설이거나 대형 환승역 또는 만남의 장소지만 노숙인들에게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의 터전이다. 이들은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삼복더위의 끝자락 말복인 지난 16일 서울역을 찾았다.
 
오후 1시 30분 서울역 광장.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오고가는 인파 속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노숙인들이 보였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박스를 깔고 장기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주변의 한 기독교 교인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현수막을 달고 설파하는 선교 외침은 그들의 귀에 닿지 않는 듯 했다.
 
그들 쪽으로 다가가자 정체 모를 냄새가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 9명가량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다. 모두 꺼칠꺼칠한 얼굴에 누렇게 바랜 티셔츠를 입은 이들의 모습은 적어도 몇 달은 거리에서 지낸 듯 보였다. “저, 안녕하세요?” “누구여? 어디서 왔어?” 대답 대신 곧장 질문이 날아왔다. 신문사에서 왔다고 하니 무리 중 한 명이 “아이고. 반가워. 그 때 일은 고마웠다. 다시 찾아줘서 고맙다”며 어리둥절해 하는 기자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낄 무렵 다른 노숙인이 다가왔다. 노모(51)씨는 이곳에서 생활한 지 9개월쯤 됐다고 했다. 더위는 견딜 만하다고 했다. 점심은 먹었는지 묻자 대충 때웠다면서 얼버무렸다. 콘크리트 바닥에 먹다 남은 막걸리가 보였다. “역 근처에 무료급식소 가보셨어요?” “술 취한 사람은 안 받아줘.” 그럼 술을 끊으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게 참 어렵다고 했다. 술이 없으면 노숙 생활을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노 씨는 기초수급대상자로 정부로부터 매달 60만 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올해 최저임금으로 계산된 월 근로소득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쪽방살이하는 노 씨는 방세와 식비를 빼면 남는 것도 없다고 했다. 노숙인 자활을 돕는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는 이들을 위한 자활근로 모집을 한다. 하지만 노 씨는 기초수급대상자이기 때문에 이마저도 참여가 불가능하다.
 
그는 기자에게 담배가 있는지 물었다. 안 피운다고 했더니 다른 사람에게 거듭 묻는다. 기자가 담배 한 갑을 사서 건네드리니 연신 고맙다며 아들뻘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다른 무리로 옮겨갔다.
 
서울역 2번 출구 주변에는 노숙인을 위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희망지원센터가 있다.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던 중 한 종교단체에서 대형 천막을 설치해놓고 노숙인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10명 남짓한 노숙인들은 시원한 그늘막에 앉아 교회인들이 내는 화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희망지원센터 내 무더위 쉼터
이 곳에서 50m 정도 걸어가면 남대문경찰서 서울역 파출소가 보인다. 파출소를 지나 우측으로 돌아가면 희망지원센터가 있다. 이 곳에는 더운 여름 몸을 식히고 TV시청을 하며 쉴 수 있는 ‘무더위 쉼터’가 있다. 문을 열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피부에 와 닿았다. 여러 명의 노숙인들이 앉아 올림픽 경기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고, 더위를 못 참고 샤워실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무더위 쉼터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주변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아예 박스를 깔고 그늘에 자리를 편다. 그 중에 앳돼 보이는 김철우(가명)씨에게 말을 건넸다. 김 씨는 “안에는 너무 시끄럽고 계속 있으면 머리 아프다”고 했다. 이 곳 주변에서 생활한 지 3개월 정도 됐다는 김 씨는 울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넘어왔다고 했다. 그는 현재 여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호기심이 발동해 조심스럽게 추가로 질문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묵묵부답이었다. 비밀이 많은 듯 보였다.
 
밖에서 기자가 연신 땀을 흘리자 옆의 한 아저씨는 길 건너편 연세재단 세브란스 빌딩 밑이 시원하다며 팁을 주기도 했다. 대화를 이어가려는 찰나 어디선가 고성이 들렸다. 두 명의 노숙인이 일촉즉발 주먹을 날릴 기세로 다투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 명의 얼굴이 술에 취한 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둘은 10원짜리(?) 욕설을 주고받으며 5분간 대치하다 파출소 경찰이 나오자 그제야 고분고분해졌다.
▲ 희망지원센터 앞
술 취해 보이는 노숙인에게 다가가자 진한 알코올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는 “술을 마시면 아버지가 생각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할머니마저 어릴 때 돌아가시고 일용직을 전전하다 이곳에 왔다고 했다. 오늘밤 잠은 어디서 자느냐는 물음에 그는 “정해진 곳은 없다”며 “눕는 곳이 그 날의 잠자리”라고 말했다.
 
다시서기센터에서 실시한 거리 노숙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노숙을 하게 된 원인으로 실직 및 사업실패가 48.4%로 가장 높았고, 가족 해체가 22.4%, 부채 및 신용불량 10% 순이었다. 또 노숙인 절반 이상이 한 부모 가정, 재혼가정, 보육원 등 결손 가정에서 자라 가족의 지지기반이 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시서기센터 관계자는 “노숙인 양산은 핵가족화에 의한 가족체계의 붕괴현상의 심화와 더불어 실직 및 사업실패 등 경제적 요인이 높다”며 “탈 노숙을 위해서는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노숙인들의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두바퀴희망자전거 사업과 서울시·다시서기센터·코레일 등이 진행한 코레일 청소사업단 사업 등을 통해 노숙인의 자활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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