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공사 망명 뒷이야기

▲ 뉴시스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55) 공사의 망명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태 공사는 19년만의 최고위급 망명자인 데다 출신성분이나 직업, 직책 등이 기존 탈북·망명자들과 확연히 다르다. 생계형 망명이 아닌 이민형 망명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태 공사의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일요서울에서는 태 공사의 망명 배경과 과정, 북한 체제 변화 등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정부 “빨치산 가문이 탈북해 입국한 것은 처음”
북한 내부 현금 부족해 난리, 해외공무원 채찍질

태영호 공사의 망명이 주목 받는 이유는 그의 가족 배경 때문이다. 현재 태 공사는 항일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 인민군 대장의 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의 아내 오혜선(50)은 북한군 총참모부 오금철(69) 부총참모장의 일가로 알려졌다.

오금철 일가는 북한에서 최고 특권층으로 불리는 ‘항일 빨치산’ 가문이다. 오금철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1984년 사망)의 아들이다. 오혜선은 대외무역·외자유치·경제특구 업무를 맡고 있는 대외경제성에서 영어 통역을 담당하던 요원으로, 홍콩 근무를 거쳐 2년 전 런던에 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빨치산 가문이 탈북 해 입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금수저 중에 금수저’가 남한으로 망명을 하자 모든 언론이 그의 행적을 뒤쫓고 있다.

삼엄한 감시 뚫고
망명한 배경은 ‘돈’

정부에서는 태영호 공사가 직접 망명을 요청했다고 발표를 했다. 영국 정부에서도 그의 망명을 도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해외에 근무하는 대사관직원들이나 일반 공무원들을 철저히 감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간첩활동을 펼쳤던 탈북자 A씨는 “보통 대사관 직원이나 가족 그리고 일반 공무원들을 감시하기 위해 2명의 감시원들이 따라 붙는다”며 “대사관 직원들의 경우 가족끼리 해외에 머물기 때문에 더 추가되기도 하고 숙소와 자녀들의 학교까지 감시원들이 활동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태 공사의 경우 본인 스스로 감시자였기 때문에 망명요청이 쉬웠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우도 있다. 바로 감시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경우다. 북한에서는 해외에 나가 있는 공무원들이나 보위부 직원들에게 풍족한 급여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 공사의 경우도 급여가 한 달에 2천 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약 173만원 정도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A씨에 따르면 “나는 처음 500불을 받았다. 식당접대원은 100불에서 300불 정도 받았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지만 북한에서 주는 돈으로는 생활이 안 된다. 해외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정말 힘들게 생활할 수 밖에 없다”며 “하지만 대사관 직원들은 돈을 모으고 만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감시원들에게 돈을 준다면 충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며 태 공사가 직접 망명신청을 할 수 있던 데는 감시원들과 밀접한 관계가 조성돼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태영호 공사·북한종업원
통치자금 관리했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과 오스트리아 주재 북한대사관은 북한에서 최고 엘리트만이 갈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자 A씨는 “영국과 오스트리아 북한대사관은 북한 상류층 중에서도 최고위층 자제들만 갈수 있다. 아무리 유명 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갈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대사관 근무는 3년 단위로 교체되는데 태 공사의 경우 10년을 근무 했다. 그걸 보면 그의 배경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고 전했다.

태 공사는 영국에서 주로 북한 체제 홍보와 통치자금 모집, 사치품 공급 역할 등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태 공사가 런던에서 모았던 통치자금을 갖고 들어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가 관리했던 통치자금은 580만 달러, 한화로 약 68억 원으로 알려졌다. 이 돈을 국내로 갖고 들어오는 조건으로 망명을 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말이 사실일 경우 국정원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최근 단체로 탈북 해 화제가 됐던 북한종업원 13명도 실제로는 단순한 탈북이 아닌 북한 통치자금 100억 원을 가로채 위험해 처하자 탈북을 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탈북자 A씨가 “지난 4월초 중국 연길에 방문했다가 현지인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라며 전한 말이다. 또 A씨는 “국내에 입국한 13명 중에 종업원 7~8명은 당초 탈북을 계획했던 것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며 “당시 탈북을 주도한 지배인과 일부 종업원들과 어쩔 수 없이 엮여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A씨에 따르면 “현재 북한은 통치자금이 부족해 난리가 난 상황”이라고 한다. 중국의 시진핑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그동안 진행돼 왔던 현금 모금 활동이 모두 차단됐기 때문이다. A씨에 다르면 과거 중고외제자동차, 마약 등을 판매해 돈을 모았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하나원 가지 않은 이유?
신분이 다르기 때문

국내에서는 태영호 공사와 가족 그리고 북한종업원들 13명이 통일부가 관할하는 북한이탈주민지원사무소인 하나원을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제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았던 탈북자 A씨에 따르면 “그들이 하나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묵었던 것은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는 탈북자들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이다”라며 “신분이 다른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놓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있어 따로 분리해 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A씨는 “태 공사의 경우는 신변의 위협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북한이 과거와 달라졌겠지만 간첩 등을 통한 위협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분리교육과 생활이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전했다.

“김정은 멘붕 상태
대응은 침착하고 차분할 것”

태영호 공사의 망명으로 김정은 체제는 해외 대사관 및 북한 공무원들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 대사관 직원들의 자녀를 북한으로 소환한다거나 탈북자 가족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진행될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A씨는 “김정은의 성격상 급진적인 대응은 자제할 수도 있다”며 “태영호 공사의 망명으로 김정은은 멘붕 상태일 것이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A씨는 “배짱이 있고 욱하는 성격이 아니라 차분하고 침착하게 지켜볼 가능성도 높다”고 전했다.

od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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