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김부겸·추미애·김성식 등 여야 정치권의 핵심그룹 부상

[일요서울송승환 기자] 누구나 ‘58년 개띠라는 관용구 한번 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1958년은 본격적인 베이비붐(baby boom·출생률이 다른 시기에 비해 현저하게 상승하는 것)이 시작된 첫해다. 4.19세대와 386세대 사이에 낀 세대로도 불리는 그 해 출생자들은 한국 사회가 고도성장할 수 있도록 산업화에 앞장섰고 군부독재시대에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는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30세가 되던 1987년에는 6월 항쟁에 넥타이 부대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대사(現代史)를 관통하는 사회의 주역이었지만 이들은 IMF와 미국 발() 금융위기를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아픔도 겪었다. 마흔 살이되었을 때에는 IMF로 조기퇴직과 정리해고의 아픔을 맛봐야 했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1955~63년 사이에 태어난 700여만 명을 일컫는다. 이 중 58년 개띠(57)는 베이비붐 세대의 상징이다. 지난 2013430일 정년연장법안의 처리를 주도했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당시 새누리당 간사인 김성태 의원이 58년 개띠다.

김 의원은 법안 통과 후 국회의원은 4년짜리 비정규직이라 개인적 이익과는 상관없다소신대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는 김 의원 외에도 새누리당 이정현·심재철·유승민 의원, 더불어민주당엔 추미애 의원, 국민의당엔 김성식 의원 등 58년 개띠 의원들이 적잖다.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도 58년 개띠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20132월 기준 58년 개띠는 779000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2%를 차지한다. 비율은 낮지만 이들이 상징하는 바는 매우 크다. 이들은 고교 평준화의 첫 세대였고 사회에 발을 들일 땐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가 도약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보험회사 임원인 최모씨는 다행히 명문고를 갔는데 뺑뺑이란 이유로 우리는 후배 취급도 못 받았다고 말했다. 전자회사에 다니는 장모씨는 속칭 삼류 X학교에 배정을 받았더니 우리도 선배가 선배로 보이지 않았고 선배도 후배를 후배로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골에 사는 상당수 58년생은 계속 입시 공포를 겪었다. 전남 출신인 박모씨는 우리 지역에선 58년 개띠들이 시험 봐서 고등학교 간 마지막 세대였다고 말했다.

58년생인 서울의 사립고등학교 송모 교감은 “58년 개띠가 마지막 세대인 것이 딱 하나 있다고 말했다 배고픈 시절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한 부모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마지막 세대일 것이란 얘기다.

이처럼 58년 개띠는 삶의 애환이 많은 세대다. 언제나 사람에 치여 살았기 때문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했고, 사회에 나가서도 늘 좁은 문()을 지나 다녀야 했다. 직장에서 중간간부가 됐을 때는 세계화와 디지털화의 소용돌이를 만나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독수리 타법으로 힘겹게 살아남았다.

고난(苦難)의 세월이 이들에게 남다른 끈기와 생존력을 심어준 것일까. 요즘 들어 사회 전반에서 ‘58년 개띠가 맹활약 중이다. 지난달 국내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급 등기임원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8년생이 14.1%로 가장 많았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 윤갑한 현대자동차 사장,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 김해성 이마트 대표이사, 김철교 한화테크윈 대표이사, 박동문 코오롱인더스트리 사장, 이제중 고려아연 사장, 손동연 두산인프라코어 사장, 박종석 LG이노텍 대표이사,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 등이 모두 ‘58년생 개띠경영인이다.

시인(詩人) 서정홍은 ‘58년 개띠란 작품을 시집 제목으로 올렸다. ‘58년 개띠란 제목의 창작무용과 다큐영화가 발표되기도 했다. 작가(作家) 은희경이 1958년 개띠 동갑내기 4명의 인생유전을 그린 장편소설 마이너리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디를 가나 사람에 치이는 일은 우리들이 태어날 때부터의 숙명(宿命)이었다. 우리의 인생(人生)은 죽죽 뻗어 가기보다는 그럭저럭 꼬여 들었다. 끊임없이 투덜대면서도 어쨌거나 가족을 부양했고, 그런 틈틈이 겸연쩍어하면서도 모르는 척 자질구레한 죄를 저질렀다.” 인생을 논하며 소주잔 위에 눈물을 뿌리던 별 볼일 없는 개띠 남자들의 이야기야말로 우리네 범부(凡夫)들의 슬픈 자화상일 것이다.

소설(小說)에 등장하는 일반인들의 삶과 달리 58년 동갑내기 정치인들은 최근 여야(與野)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의 핵심그룹으로 부상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4년 뒤 나란히 국회의원 당선과 함께 꽃을 목에 걸더니, 한 사람은 화려하게 여당의 당 대표에 올랐고, 또 한 사람은 야권의 떠오르는 대권 주자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추미애 더민주 의원은 당 대표에 도전하며 야권 핵심인사로 떠올랐고,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탈당 뒤 기사회생하면서 여권 잠룡(潛龍)으로 손꼽히고 있다. 국민의당 김성식 의원도 정책위의장으로 눈부신 광폭행보를 하고 있다.

songwi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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