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종목들 잇단 참패로 10-10목표는 물론 구조적 문제들 속속 드러내
2020년 대회에 올인한 일본 전폭적인 지원으로 아시아 2강으로 우뚝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리우올림픽 출정식에서 10(금메달 10개 이상)-10(종합 10위 이내)을 목표로 내걸었던 한국 올림픽 대표선수단이 받아든 결과는 충격적이다. 전통 메달밭으로 여겨졌던 유도, 배드민턴, 레슬링 등에서 제대로 수확을 하지 못했고 절대강자의 위치에 있는 양궁을 제외하고는 체면치레에 불과할 정도로 부진함을 보였다. 더욱이 올림픽에서 만큼은 일본을 제쳐왔던 그간의 영광마저 사라져 양국의 대조적인 정책마저도 구설수에 오르는 등 큰 후유증이 국내 체육계를 뒤덮고 있다.

한국대표팀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점점 경기 일정이 줄어드는 등 후반기 들어 태권도와 여자골프, 리듬체조 손연재 일정 정도만을 남겨둘 정도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이 때문인지 대회를 이틀 남겨둔 대한민국은 금메달 7개 은메달 3개 동메달 7개 등 모두 17개 메달만을 획득해 20개 메달을 획득하는 데도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거둔 금13, 은8, 동7 등 모두 28개 메달 수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한국 선수단은 종목별 세계랭킹 1위들을 내세우며 메달사냥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승무대조차 진출하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면서 일명 ‘세계랭킹 1위의 저주’라는 말이 나왔다.

허울뿐인 세계 1위
자화자찬으로 전락

특히 이번 대회에서 유도종목의 참패는 뼈아픈 순간이었다. 양궁, 태권도와 함께 올림픽 효자종목으로 분류되던 유도는 리우올림픽에서 ‘노골드’ 수모를 겪었다. 이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 유도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남자 7체급, 여자 5체급에 출전했다. 남자 대표팀의 경우 무려 4명이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있어 역대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리우대회에서 유도대표팀은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수확하는 데 그쳐 목표치에 한참 모자랐다. 66kg급 안바울과 90kg급 곽동한이 은메달, 동메달을 각각 목에 걸었고 여자 48kg급 정보경이 나머지 한 개 은메달의 주인공이었다.

배드민턴의 참패도 마찬가지. 남자 배드민턴 복식 세계랭킹 1위인 이용대-유연성 조는 경기 전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지만 8강에서 말레이시아에 패하며 결승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또 남자양궁 세계랭킹 1위인 김우진은 32강에서 고배를 마셨고 여자 양궁 세계랭킹 1위인 최미선도 8강에서 탈락해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이 같은 참패는 단순 세계랭킹 1위 저주라는 우연에서 찾을 수는 없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전략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진단한다.

유도대표팀의 경우 그동안 올림픽 무대에서 종종 한국의 발목을 잡아온 까다로운 일본을 피하기 위해 벌인 꼼수가 참사를 불러왔다는 데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당초 유도대표팀은 세계랭킹 순위를 끌어올려 좋은 시드를 받아 메달권 진입을 시도하겠다는 전략을 펼쳤다. 이에 많은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대거 출전시키며 선수들의 랭킹을 쌓아갔다.

하지만 이는 대표팀의 전력만 노출시킨 꼴이 됐다. 실제 이번 대회에서 유도대표팀은 4강 무대조차 밟기 힘들 정도로 초반에 대거 탈락했다.

미숙한 전략
상대팀에게 역습 허용

반면 지난 런던대회에서 ‘노메달’ 수모를 이미 경험한 일본은 철저한 전략적 접근으로 해법을 마련했다.

일본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체급 당 3명가량을 국제대회에 돌아가며 출전시켜 전력을 감췄다. 여기에 두터운 선수층도 보탬이 됐다. 이에 일본은 유도에서만 단 1명의 세계랭킹 1위없이 이번 대회에서 금3 은1 동8 등 총 12개 메달을 수확하며 웃을 수 있었다.

한국은 또 지나치게 일본만 경계하고 유럽, 남미 선수들에 대해 지나친 자만이 착오를 일으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원진은 8강전에서 러시아의 베슬란 무드라노프에게, 안창림은 16강전에서 벨기에 티르그 판 디첼트에 발목을 잡히는 등 한국유도는 천적 일본이 아닌 유럽과 남미에 침몰됐다.

여기에 젊은 코치진도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남자 대표팀은 지난해 5월 조인철 전 감독이 사퇴한 이후 송대남(37), 최민호(36) 등 젊은 코치들을 내세웠다. 이들은 분명 스타 출신이지만 지도자 경험이 부족했던 만큼 실전에서 허술했다.

흐름을 잃고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노련한 지도자의 공백이 치명타가 됐다.

이번 대회로 한국유도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한국 유도가 지니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도 속속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국 스포츠계를 휘감고 있는 파벌문화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더욱이 특정 학교 주도로 재편돼 있는 한국 유도계가 이대로 방치될 경우 더 이상의 경쟁력을 유지하기에는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번 리우 올림픽 대표팀 12명 중 정보경과 김민정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 모두 용인대학교 출신이다. 또 지도자도 송대남 코치를 제외한 전원이 용인대 출신이다. 세간에 유도계를 빗대 ‘엇비슷하면 용인대, 조금 부족해도 용인대’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특정학교에 집중돼 있다.

이를 두고 1988 서울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재엽 동서울대 교수는 “선수 선발은 실력 위주로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특정 대학이 중심에 선 게 사실”이라며 “경쟁력을 지키려면 한국 유도가 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신화 쓴 양궁
공정 선발 효과 톡톡

침몰한 유도와 달리 양궁은 ‘전 종목 석권’이라는 신화를 쓰며 금의환향했다. 더욱이 이번 대회 한국 금메달의 절반가량을 양궁이 독식하며 종목별 빈부격차를 더욱 벌렸다.

한국 양궁이 28년 동안 세계 최강을 유지하는 데는 파벌 없이 오직 실력으로만 선수를 뽑는 공정한 선발 원칙에서 시작된다.

일각에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한국 양국 국가대표가 되는 일이 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어떠한 기득권도 인정되지 않는 철저한 자유경쟁 시스템은 선수들의 실력을 상향평준화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양궁 종목은 남녀 각각 120명을 추려 6개월간 실시하는 평가전을 통해 최종 남녀 3인을 선별했다.

이들은 최종 엔트리에 들기까지 무려 1인당 4055발의 화살을 쏴야 했다. 여기에 학연, 지연, 원로 추천 등 파벌이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한국 체육계가 양궁과 같은 공정한 선발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원카드 꺼내든 일본
성적향상 일등공신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체육계는 안일한 자세와 파벌 논란에 휩싸인 반면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둔 일본은 정부차원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선수들을 지원한 것이 양 국가의 명암을 엇갈리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그간 한국과 중국에 밀려 아시아 3위에 머물던 일본은 이번 대회를 통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일본은 지난 19일 현재 금12 은6 동18 등 모두 36개 메달을 합작해 종합순위 6위에 올랐다. 이 때문에 한국은 또 다른 한일전인 스포츠 정책에서 이미 패하고 말았음을 드러냈다.

일본의 약진은 모든 스포츠 정책을 주도하는 장관급 부처인 ‘스포츠청’이 신설된 데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조직은 지난해 5월 설치돼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은 금메달 30개, 종합 3위를 목표로 도쿄올림픽을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정부차원에서 엘리트 체육 지원을 효율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스포츠청을 통해 일본 정부는 정책을 단일화하고 지원 예산도 40%가량 대폭 늘려 경기력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적 변화는 실제 선수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며 성적향상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대표팀 관계자는 리우올림픽에 앞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쿄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뒤 정부 지원도 좋아졌고 더욱 열심히 하려는 선수들의 의지도 높아졌다”고 전했다.

허술한 체육회와 협회
몰락 부채질

반면 한국은 올림픽을 주관하는 대한체육회를 비롯해 종목별 협회들의 비상식적인 행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정부와 대한체육회, 국민생활체육회는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통합 대한체육회 출범에 전념하면서 리우올림픽에 대한 뚜렷한 대책 마련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일부 협회들을 제외하고 여전히 종목별 협회들의 준비와 지원이 부실한 점도 몰락을 부채질했다.

44년 만에 구기종목 ‘노메달’ 위기에 몰린 한국은 배드민턴 여자 복식 정경은-신승찬 조의 동메달로 구사일생 벗어났지만 유독 여자대표팀에 대한 대한체육회와 협회의 차별은 극대화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세계적인 배구 스타 김연경의 진두지휘 아래 메달을 노렸던 여자배구대표팀은 아쉽게 8강전에서 네덜란드에 패하며 이번 대회를 마감했다.

그 과정에서 몇 차례 범실을 범한 박정아에 대해 비난이 이어졌고 급기야 박정아는 자신의 SNS를 비공계로 돌리는 등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박정아 선수가 바로 한국여자배구의 현실이에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번 대회 성적은 배구협회나 대한체육회의 여자대표팀에 대한 홀대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또 몇몇 언론을 통해 대표팀 선수들이 따로 귀국길에 오르게 된 것, 경기장에 출입할 수 있는 AD카드 부족으로 매니저나 통역, 팀닥터 등이 동행하지 못한 점, 올림픽 기간 중 협회 회장 선거 실시 등이 알려지면서 배구협회의 부실한 대표팀 지원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대해 배구협회 측은 지난 18일 일부 언론의 보도 내용이 사실관계와 다르다며 적극 해명했지만 여자배구에 대한 부실한 지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의 허술한 선수관리도 손연재 사태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냈다.

유일한 리듬체조 한국 국가대표인 손연재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브라질 상파울루서 러시아 리듬체조 선수단과 함께 동반 훈련을 진행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문제는 손연재가 리우에 입성한 지난 15일까지 아무도 그의 소식을 몰랐다는 것. 당시 대한체육회 측은 “확인이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고 체조협회 측도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말한 뒤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손연재는 체육회와 체조협회가 모르는 사이 조용히 리우에 입성하는 웃지 못할 일을 경험해야 했다.

재목 발견했지만
키워낼 능력 의문

약 2주간에 걸쳐 치러진 리우올림픽 결전이 마무리됐지만 한국 선수단의 부진한 모습은 큰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한체육회의 안일한 대처와 관계자들 역시 제사보다 제삿밥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은 체육계 스스로가 각성해야 할 부분이다.

더욱이 침몰한 유도계를 비롯해 배드민턴, 레슬링 등 전통 효자 종목이 부진함을 이어간 데는 선수들의 책임을 논하기에 앞서 정책적 부실과 여전히 잔재하고 있는 파벌문화의 피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더욱이 현 상태가 유지될 경우 일본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견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선수 개인의 기량에 앞서 이를 지원하고 이끌어주는 정책과 전략의 부재는 치명상이 될 수 있다.

이번 리우올림픽의 경우 열악한 현지 여건과 치열한 경쟁 등을 고려할 때 좀 더 치밀한 전략과 대응방안이 필요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수단의 부실한 관리와 지원 등은 스스로 스포츠 약소국으로 추락시킨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내내 씁쓸할 따름이다.

그나마 한국 선수단은 이번 대회를 통해서 앞날이 기대되는 재목들을 발굴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지만 재목들을 키워내는 건 정당한 정책과 지원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체육계가 공정한 선발원칙과 자유경쟁시스템의 확립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에 리우올림픽 실패가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고 스포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각성의 계기가 돼야 4년 뒤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기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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