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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개입 직후 합참서 검토동시철군 아니면 中共 지배 자치정부 용인
 
미국(美國)이 중공군(中共軍)의 한국전(韓國戰) 개입 직후 합참 차원에서 한반도를 포기하는 방안을 한때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이어 1951년 말에도 비슷한 방안을 재론(再論)했으나 자유 진영에 대한 파급 효과를 우려해 대신 남북한을 다시 가르는 쪽을 택한 것으로 지난 199412월 비밀 해제된 국가안보회의(NSC) 보고서가 밝혔다. 이같은 검토는 한반도가 군사적으로 가치가 없다는 당시 합참의 판단이 한국전말까지 계속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중공군 참전 20일 후인 1950125일자로 작성된 합참 극비 문서는 당시 남한의 장래를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미국은 중공이 다음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토록 제의해야 한다. 하나는 중공과 유엔이 한반도에서 동시 철군(撤軍)하는 것이다. 아니면 중공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치 정부를 세우는 방법이 있다.” 충격적인 내용은 그 다음이다. “한반도에 이같은 정부가 들어설 경우 대개 그렇듯이 미군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중공의 지배로 들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미국으로서는) 불행하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고서를 작성해 합참 수뇌부에 올린 공군성 차관보는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군부의 고민에도 사뭇 원론적으로 접근한다.
 
맹방에게 보호를 강조해 이들을 만족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보호 수단은 끝내 구입하지 않음으로써 정치인과 납세자도 기쁘게해야 하는 데서 오는 중압감은 합참 수뇌부로 하여금 현실에서 점차 뒤로 물러나도록 만들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외군사 정책을 이렇게 꼬집는다
 
우리는 열강이란 국제적 허세때문에 모든 방향으로 너무 무리하게 약속을 했다. 그것이 마침내 아직은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나 ()인명 손실이란 결과를 초래했다.”
 
확실히 미국은 당시 중공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공격적 보병 전술의 하나로서 공격측이 수비측과 한데 뒤엉켜 전투 국면을 혼전 상태로 전환시켜 수비측을 제압할 목적으로 병력의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이용한 밀집 보병 형태를 구축하여 적 전선을 향해 무방비 정면 공격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이렇게 전한다.
 
공산군의 맨투맨 전술에 대처하기에는 미국의 인력에 너무 한계가 있다. 자살하듯 달려드는 엄청난 규모의 적()에게 우리 지상군이 당하지 않도록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유리한 해.공군력을 충분히 쓸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소련이 한국전에 본격 개입하지 않을까도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우리나 맹방을 공격중이란게 틀림없이 분명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그들을 직접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대목이 이를 뒷받침한다.
 
보고서는 한국전이 또다른 2차 대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거듭 우려하면서 중공이 미국의 제안을 거부할 경우 첫 대안으로 공격받고 있는 미군을 필요하다면 철수시키자고 건의했다. 미군을 빼는 문제는 525월에도 거듭 검토됐다. 당시 브래들리 합참의장과 콜린스 육참총장 등 4() 장군 4명에게만 올려진 195259일자 한국 전황에 관한 극비 보고에 이렇게 적혀 있다.
 
현 상황에서 한국전은 다음 둘 중 하나로 결론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중공과 전면전이 되고 결과적으로 국제전으로 비화돼 미군이 철수(撤收)하는 것이다. 아니면 공산군의 도발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미군이 한반도에서 빠져 나가는 것이다.”
 
어느 경우건 미군은 철수하도록 돼 있다. 이보다 앞서 19511220일자로 NSC에 제출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목표와 현지 전황이란 제목의 극비 보고서에 나타난 한반도의 장래도 암울하기만 하다. 트루먼 대통령도 검토한 이 보고서가 남북한 재분단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락할 수 있는 한반도 문제 해결 방안의 성격이란 소제목이 달린 해당 부분은 이렇다.
 
한반도 문제 해결은 성격이 서로 판이한 3단계를 포함하게 될 것이다. 첫째가 만족스런 휴전(休戰)이며 다음은 수락할 수 있는 최소한의 분쟁 타결, 그리고 독립되고 민주적인 통일 한국을 세우는 것이다. 각각의 단계는 그 자체가 미국의 목표다.”
 
보고서는 이어 각 단계마다 문제들이 있다면서 최소한의 분쟁 타결 단계에서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과 중공간의 이해 절충이 쉽지 않아 외국군 주둔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 다음이 한반도의 운명을 사실상 결정짓는 대목이다. 통일 한국을 실현시키는 정치적 타결단계를 거론하면서 남북 재분단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함을 분명히 언급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분명히 한국민은 영구 분단을 가져올 정치적 타결을 거부할 것이다. 중공도 (남한) 전복을 통해 한반도 전역을 자기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한 북한에 대한 직접 통제를 포기할리 없다. 결과적으로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타결은 요원해 보이며 조만간 분단 한국이 출현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또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 모두가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방안도 분쟁 해결책일 수는 있으나 이 경우 자유 세계에 파급 효과가 미칠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합참의 한반도 포기안은 결국 사장됐지만 NSC 보고서에 언급된 한반도의 운명(運命)은 거의 그대로 이뤄져 근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우리 앞에 여전히 냉엄한 안보 현실로 버티고 있다.
 
<윤광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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