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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니코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소개하는 광고나 신문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니코틴은 대표적인 담배 유해 물질 중 하나다. 독성이 강해서 살충제로 가공돼 사용되기도 한다. 흡입하거나 피부를 통해 흡수될 경우 매우 위험해 사용 및 보관에 주의가 필요한 유독물질로 분류된다. 특히 ‘니코틴 용액’은 최근 전자담배를 사용하면서 많이 알려졌다. 

일본 추리소설·만화에 니코틴 용액 살인 장면 등장
독극물·니코틴 등 범죄 악용 약물 규제 현실성 없어

니코틴이 신체에 과량 투입, 흡수되면 전신 중독이 일어난다. 오심, 구토, 복통, 설사, 두통, 어지럼증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심할 경우 호흡 곤란, 혈압 상승, 경련, 근육 수축, 심정지 등으로 실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니코틴의 급성 치사량은 성인 기준 40~60㎎이다. 이는 체중 1㎏당 0.5~1.0㎎ 정도로 몇 방울의 니코틴 원액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애연가들이 즐기는 담배 한 개비에는 1~2㎎ 정도의 니코틴이 포함되어 있다. 담배 30~40개비를 한꺼번에 피워야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담배 필터를 통해 들어오는 니코틴은 우리 몸에 100% 흡수되지 않는다. 또 반감기가 약 2시간 정도로 짧아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이어지기 쉽지는 않다.

사건발생 2달 전 혼인신고
니코틴은 내연남이 구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니코틴 용액 살인사건’은 지난 4월에 발생했다. 사망한 남편 A씨는 평범한 50대 회사원이었다. 어느날 평소 건강에 문제가 없던 A씨가 갑자기 사망을 하자 아내 B씨가 사망신고를 하려 했다. 하지만 상황이 의심스러웠던 경찰이 시신 부검을 해본 결과 A씨 몸에서 수면유도제인 졸피뎀과 니코틴이 검출됐다.

문제는 남편 A씨가 평소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A씨의 몸에서 검출된 니코틴 양은 안전수치의 11배가량인 리터당 1.95mg가량이다. 이 수치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도 나올 수 없는 수치였다.

결국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고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도피하려던 아내 B씨와 외국에 머물다 잠정 귀국했던 내연남 C씨를 검거했다.

경찰 수사결과 부인 B씨는 남편의 집 등을 포함해 10억 원가량을 처분해서 자신 명의로 이전했고 그 과정에서 내연남 C씨에 1억 원을 송금한 것이 확인됐다. 살인에 사용된 니코틴 용액은 C씨가 인터넷을 통해 중국 쪽에서 구입한 것도 밝혀졌다. 구매한 니코틴 용량은 20ml다.

국내에서는 허가받은 업체만 니코틴 용액을 판매할 수 있다. 또 농도가 2%가 넘으면 유해화학물질로 분류돼 구매자의 인적사항을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C씨는 인적사항을 숨기기 위해 해외 사이트를 이용한 것으로 경찰은 판단하고 있다.

또 다른 사실은 아내 B씨와 남편 A씨는 결혼정보업체의 소개를 통해 만나 2010년경부터 6년 동안 동거를 하다가 사건발생 두 달 전에 혼인신고를 했다. 재산을 노린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의심을 받는 이유다.

해외에선
완전범죄 시도 때 사용

국내에서는 처음 발생한 니코틴 용액 살인사건이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살인 사건에 니코틴 용액이 사용돼 왔다. 다만 과거에는 혈중 니코틴 농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한 니코틴 중독 정도로만 확인됐다. 건장하던 사람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어도 단순한 니코틴 중독으로 확인되다 보니 완전범죄를 노린 범죄자들이 주로 사용해 왔다.

니코틴 용액을 사용한 범죄가 고전적인 수법이다 보니 과학기술이 발전한 지금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국내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던 사건인 만큼 모방범죄가 의심되기도 한다.

실제 사건이 발생한 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니코틴 용액을 사용한 살인사건이 이미 일본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과 추리소설 ‘잠자는 숲’ 등에 나온 적이 있다며 모방범죄를 확신하고 있다.

‘소년탐정 김전일’은 일본 최고의 추리만화로 꼽힌다. 명탐정 킨다이치 코스케의 손자인 김전일의 활약상을 그린 추리만화다. 이 만화 중 ‘아마쿠사 보물전설 살인사건’편에 보면 등장인물 ‘하즈끼’가 니코틴 원액을 주사기를 통해 주입받아 사망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만화 주인공 김전일이 “니코틴이라면 주사한 순간에 거의 즉사에 가까운 상태에서 숨이 끊어져요!”라며 사건을 설명하기도 한다.

인터넷, SNS 등에서
손쉽게 구매 가능

국내에서는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수면제, 독극물 등 약물 유통은 법적으로 엄격히 규제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전 국민이 사용하고 인터넷이나 SNS 등을 활용하면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 국내 대표 포털에서 ‘니코틴 용액 구매’라는 키워드만 입력해도 수백 건의 관련 블로그를 찾을 수 있다. 그중에 일부 포스팅은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 니코틴 용액을 직구할 수 있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써놨다.

실제 방문해본 H 직구 사이트에서는 니코틴 용액을 250ml까지 구매할 수 있었다. 250ml 니코틴 용액의 가격은 109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만 원선이다. 물론 사이트에서는 한국 상담전화와 함께 카카오톡 아이디까지 공개돼 있어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한편 ‘니코틴 용액 살인사건’ 발생 후 남성들 사이에서는 ‘불륜남 주의보’가 내렸다. 사건의 원인과는 상관없지만 아내가 남편을 직접 살해했다는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껏 남편을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범죄는 살인교사가 주를 이뤘다. 그러다 보니 간통죄 폐지 이후 늘어나고 있는 불륜남들이 이번 살인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od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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