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투병 후 돌아온 정세희 심경고백
90년대 ‘에로배우’로 비디오 영화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정세희(32)’.
사람들은 그녀를 90년대 에로영화계의 히로인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녀의 변신은 그간 무궁무진했다. 작가로, 대학강사로, 가수로, 사업가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정세희는 지난 2005년 음반작업을 끝내고 안무연습을 하던 도중 돌연 실신했고 뇌종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 이후 수술을 위해 독일로 떠났다.
2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다시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재기를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본지는 지난 5일 투병을 겪고 난 후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세희를 만났다.


햇살이 좋으니 야외에서 만나고 싶다는 바람대로 강남의 한 공원에서 정세희를 만났다. 매니저가 없는 탓에 커다란 의상가방과 화장품 가방 등 한 짐 가득 들고 기자를 찾은 그녀. 오랜만의 인터뷰였기 때문일까. 다소 수줍은 듯 인사를 나누며 벤치로 향했다.
정세희는 2년여의 투병생활을 마치고 지난 5월 전남대에서의 강의를 시작으로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가수와 드라마 연기자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기 위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도발녀’, 언론이 만든 환상

92년 sbs공채탤런트 2기 시험에 도전했지만 3차에서 탈락한 이후 뜻하지 않게 비디오 영화계로 들어선 그녀. “처음에는 에로영화가 뭔지도 몰랐었죠. 그 쪽도 경쟁이 정말 치열한 곳이에요. 거기서 프로로 살아남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있었어요.”

한참 에로영화계에서 명성을 떨칠 때 두 번 공중파 단편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촬영장과 공중파 드라마 촬영장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영화 쪽이 좀 더 자유롭고 가족적이죠. (공중파의)딱딱한 분위기가 적응이 안됐었지만 이제는 적응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이제야 이해했으니까요.”

그래서 정세희는 지난 5월 말 ‘엑터(온라인 전문 캐스팅 업체)’를 찾아 캐스팅 센터에 정식 등록했다. 이제는 비디오 영화가 아닌 드라마 연기에 도전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정세희하면 도발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제가 원하는 역할은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이미지예요. ‘당당하고 도발적인 여자’는 언론이 만들어낸 저의 이미지일 뿐,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면 떨려요. 제가 NG를 낼수록 스태프들이 힘들어하고 일정이 지연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프로인 척 연기할 뿐이죠.”

기존 드라마의 캐릭터 중 원하는 역할을 꼽으라 했더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드라마의 며느리 역할이에요”라고 말한다. 기대를 벗어난 대답이다.

“부모님이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예요. 내 딸이 저런 드라마에 나왔으면 하는 소원을 이제는 들어드리고 싶어요.”

아프고 난 후 그녀는 자신의 욕심보다는 부모님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예전에는 아무리 주위에서 뭐라해도 제가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프고 난 후에는 아니에요.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는 프로가 <전국노래자랑>과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예요. 두 프로 모두 출연하고 싶은 욕심이 있죠.(웃음)”

뇌종양 수술 후 2년간의 공백기.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사실 쓰러지기 전부터 안면통증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음반작업 때문에 5개월 동안 잠을 못자서 그런가보다 했었지만…. 뇌종양 판정을 받고 수술비 때문에 서울에 있던 집과 차를 다 팔았어요. 독일에서 수술 후 3개월 간 요양한 후 부산의 본가로 들어가서 어머니와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며 휴식을 취했구요.”


사랑, 남은 건 상처 뿐

2년 동안 건강을 위해 쉬면서도 TV를 보지 못했다. ‘아프지 않았다면 나도 활발한 활동을 했을 텐데’라는 원망 때문이었다고. 음반을 완성하고도 선보이지 못한 채 병마와 싸웠던 그녀는 친구들이 위로 차 데리고 간 노래방이 첫 무대가 됐다고 말했다. “노래방에 제 노래가 있었어요. 부르면서 많이 울었었고 친구들도 다 울었구요. 그게 가수로서 저의 첫 데뷔무대가 된 셈이죠.”

2005년 수술 때문에 독일로 떠날 무렵 일각에서는 “남자친구와 함께 독일로 떠났다”는 소문이 나돌았었다. “사실이 아니에요. 남자친구와 동행했다면 아마 귀국하지 않았겠죠. 지금 그 사람은 다른 분과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일 욕심이 많아서 결혼 생각이 없을 것 같다는 말에 그녀는 강하게 부정했다. “인연이 닿는다면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어요. 일이 우선이라는 건 아파 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그런데 저는 사랑이 쉽지가 않아요.”

그녀는 담담하게 과거의 경험을 풀어 놓았다. “겉으로 보여진 이미지 때문에 저와 남자친구 모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남친은 제 직업을 이해했지만 그 주위 사람들이 그를 가만두질 않았죠. 왜 조신한 여자가 아닌 저 같은 여자를 만나느냐며 만류했어요. 저는 에로배우였지만 사생활은 문란하지 않다고 말해도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코미디’가 되고 말아요. 저도, 남친도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연기보다 강의가 더 행복

정세희의 일에 대한 열정은 사실 남다르다. 배우, 대학강사, 가수, 사업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직업을 꼽으라는 질문에 그녀는 주저 없이 ‘강사’라고 말한다. 또 한번 기대에 벗어난 대답이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몰론 돈은 안되겠지만요.(웃음) 엔돌핀이 솟고 강의 후 학생들이 다가와 소감을 전할 땐 너무나 뿌듯해요.”

그녀는 ‘대중문화와 예술’을 주제로 동아대와 동국대 등에서 특강중이다. 2학기에도 이미 두 학교의 특강이 예정되어 있다.

‘대중문화와 예술’이라는 강의에서 그녀는 에로에 대한 ‘순기능’을 언급했다. “고시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외로운 학생들이나 군대 친구들이 ‘누나의 영화를, 사진을 보며 행복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에로의 순기능이 되는 거죠.”

강의 후 그녀에게 온 수많은 이메일에 오히려 여학생들의 것이 더 많다고 했다. “멋지고 당당하게 살라”며 그녀는 모든 메일에 답장을 해주고 있다. “지방대와 서울의 학생들은 차이점이 있어요. 지방 학생들이 조금 순수하다고 할까. 동국대의 어떤 학생은 어떤 체위를 좋아하느냐고도 물어보더군요.(웃음)”

요즘은 병 때문에 접은 가수활동 준비 때문에 맹연습 중이다. 가수에 대한 욕심이 상당할 것 같지만 사실 소속사로부터 가수 데뷔 제의를 받은 후 두 달간을 도망다녔다고 털어놓는다. 결국엔 회사의 뜻에 따라 음반작업에 착수했다. “카메라도 무섭지만 녹음실에서는 더 떨렸어요. 불을 다 꺼달라고 했죠. 차라리 옷 벗고 강남을 한 바퀴 도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웃음)”


주위의 시선, 남몰래 눈물

그녀는 뜻밖에도 ‘에로배우’라는 말이 가장 싫다고 했다. 15년간의 에로영화배우로서의 삶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그건 아니라고 부정한다. “저는 영화도 찍고 강의도 여러 번 했고 가수준비도 했지만 항상 저의 타이틀은 에로배우예요. 제 직업에 대해 10명 중 8명은 ‘미쳤다, 부모도 없냐’고 비난했어요. 그런 하소연을 지인들에게 하면 ‘그럼 관두라’는 말이 나오구요. 제가 뇌종양 판정이 났을 때 지인들은 ‘그 동안 혼자 쌓아뒀던 스트레스가 결국 병을 만들었다’고들 하더군요.”

정세희는 자신의 인생을 ‘자갈-모래-아스팔트-산책길’이라고 표현했다.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는 험난함 그 자체였죠. 그러다 에로스타가 됐고, 섹시스타가 됐고 이제는 배우라고 인정을 받게 됐어요.”

“어디 가서 학교 이름 말하지 말라”는 동문 선배들의 가시 돋친 말,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까지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현실로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버텼고 큰 수술 이후에도 그녀는 당당하게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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