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여자’ 신풍속도 >>

남성들은 ‘불륜의 최절정, 저질 드라마’라 혹평하는 반면, 여성들에게는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 혹은 분노를 비롯한 절제된 감정표출의 분화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드라마가 있다. 혹자는 ‘너무 매워서 짜증이 나지만 자꾸 손이 가는 음식’같은 드라마라 평했다.

늘 친자매처럼 대해준 착하디착한 친구를 배신한 화영(김희애 분). 친구의 남편과 불륜에 빠지고 ‘내 남자’라 우기며 결국 자신의 품으로 친구의 남편을 빼앗아 온다. 천사 같은 친구 지수(배종옥 분)는 대학교수의 현모양처, 조강지처로 평탄한 일상을 유지하던 중 가장 친한 친구와 남편의 배신을 겪으며 나름대로의 분노와 체념으로 시청자들의 연민을 일으킨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드라마’라며 초반부터 비판 여론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심리를 표현하며 극이 전개될수록 캐릭터들은 나름대로의 인간적 연민을 자아내고 있다.

이처럼 ‘친구의 남편을 빼앗은 여자’, ‘친구에게 남편을 뺏긴 여자’로 인기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시청률 30%대를 유지, 요즘 최고 인기절정을 달리고 있는 드라마다.

그런데 요즘 ‘내 남자의 여자’ 때문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부부싸움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상계동에 사는 40대 주부는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과거 남편이 바람피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며 “드라마를 보고 난 뒤에는 남편 얼굴이 보기 싫다”고 말했다.

남편들의 마음도 편치가 않기는 매 한가지. 서울 동작동에 살고 있는 40대의 한 남성은 “월요일과 화요일은 집에 일찍 들어가기가 싫다”며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가 방영될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말해, 이 드라마에 대한 거부반응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남성은 과거 자신의 바람기 때문에 괴로워한 부인의 얼굴이 드라마에 오버랩(겹친다는 의미)돼 힘들다고 고백한다.

“솔직히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아내 얼굴 보기가 민망하다. 과거 불륜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내도 이 드라마를 보면서 투덜거리는 게 장난 아니다.”

뿐만 아니라 ‘내 남자의 여자’는 주부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 비록 남편을 친구에게 빼앗겼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대처하는 ‘지수’가 부러워서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가정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설득하는 게 과거의 아내였다면, 지금은 당당하게 재산분할권을 내세우며 이혼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자신이 드라마 속 지수처럼 대처하지 못한 회환이기도 하다.

서울 은평구에 살고 있는 40대 주부는 “남편이 지금 불륜을 저지른다면 바로 이혼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과거에는 참는 게 최선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내 남자의 여자’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주부들에게 ‘당당한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과거가 있는 남편들에겐 ‘한숨을 내 쉬게’ 만든 드라마다.

그래서 ‘내 남자의 여자’를 바라보는 남녀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아내들에겐 ‘자아성찰’의 계기였다면, 남편들에겐 ‘빨리 끝나면 속 시원한 드라마’이기 때문. 그래서 ‘내 남자의 여자’는 또 다른 사회풍속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