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달 25일 한나라당과 옛 민주당의 불법 대선자금 용처의 중간결산 결과를 발표, 수사가 ‘종착역’으로 향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정계일각에서는 ‘정치권 사정 태풍’을 몰고 온 이번 대선자금 수사가 끝을 맺더라도, 검찰의 정치권에 대한 개인비리 수사는 계속될 것이라며 긴장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대략 20여명의 의원들이 추가 표적에 올라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면서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파렴치범’으로 몰려 총선정국에서 치명상을 입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한나라당은 현재, 대선자금 수사 이후 ‘차떼기당’으로 시작해 입당의원에 대한 이적료 지급 논란, 대표 퇴진을 둘러싼 내홍 그리고 이인제 의원 등 대선 때 타당 유력인사에 대한 매수공작 의혹까지 날만 새면 터지는 악재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이 때문에 한나라당 안팎에선 “이젠 한나라당이란 이름으로 총선을 치르기조차 어려운 것 아니냐”는 자조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

소장파 의원들은 “공천과정에서 조금이나마 의심이 가는 의원들은 과감하게 탈락시켜야 후환이 없다”며 “당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정당성이 입증되고 있다”고 밝히고, 최병렬 대표 퇴진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나라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검찰의 출구조사다.정치권에선 ‘매수공작’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이인제 의원 측에 전달된 돈까지 조사됐을 정도라면 한나라당 의원들의 자금 사용내역은 이미 검찰이 쥐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만약 이들의 우려처럼 검찰이 한나라당의 불법대선자금의 사용처에 대해 실상을 대부분 파악했다면, 이로부터 자유로운 의원은 없을 전망이다.결국 검찰이 3월 초순에 대선자금 출구조사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고 정치인 관련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는 달리 한나라당 현역의원들의 개인비리 수사는 계속될 것이며, 총선이 임박해서 결정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내 변호사 출신 의원들은 “검찰이 김영일 전총장 등 구속된 당내 주요인사들로부터 한나라당에 건너간 기업 불법 정치자금의 출구조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 해 놓은 상황에서 총선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더욱이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대략 20여명의 의원들이 표적에 올라 있어 이들이 총선직전에 검찰소환 또는 비리의혹이 언론에 흘러나오면 우리당 후보들과 박빙의 대결 구도가 일시에 무너지는 데미지를 입게 될 것으로 걱정하는 분위기다. 또한 벌써부터 또 다른 거물급 의원 소환설이 나돌고 있다.더욱이 정치권 인사들은 검찰수사가 한나라당 기존 의원보다 입당한 11명의 의원이나 이인제의원 등 외곽의 지지세력에 우선 초점을 맞춘데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이들 11명 중 일부 인사들은 소위 이적료로 받은 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흔적이 검찰에 포착됐다는 후문이다.

대검 중수부(안대희 부장검사)는 이들 11명의 의원에게 “김영일 총장으로부터 받은 지원비용의 사용내역 등을 소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해야만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고, 이 때문에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일부 이적의원들은 물론 다른 의원들 역시 개인치부혐의로 사법처리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해진다.이 같은 사실이 검찰에 의해 공개되면 이번 총선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며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셈이나 마찬가지기 때문. 게다가 공천이 끝난 지역의 후보나 지구당 위원장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점점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을 압박해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더욱이 대검 중수부는 26일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과 노무현 캠프가 각 지구당과 시·도지부에 제공한 불법지원금과 관련, 지구당별 자금사용처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전국 지구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할 경우 총선을 40여일 남겨둔 시점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될 수밖에 없다.

검찰은 지난 25일 한나라당은 410억원, 노 캠프측은 42억5,000만원을 각각 전국 지구당과 시·도지부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안대희 중수부장은 “처벌은 형사 정책적 판단에 따른다 해도 해명은 들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모두 불러 조사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조만간 방침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당 별로 지구당 227개, 시·도지부 16개에 직능단체까지 합할 경우 500여개가 넘는 곳에 대해 모두 수사를 벌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검찰은 내심 고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고 몇몇 지구당만 선별적으로 수사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지도 모르는 상태.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중앙당에 이어 지구당까지 조사해 야당을 말살하자는 거냐”며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이 검찰의 불법대선자금 용처 수사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각 지구당별 사용 내역 실사’에 대해 이처럼 당황하는 이유는, 검찰이 지구당까지 뒤지는 상황이 올 경우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는지조차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한 초선의원은 “이번 총선이 여야 정책대결이 아니라 비리의원들 솎아내기 국면으로 왜곡돼 진행되고 있는 배경에는 뭔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의해 조종을 받고 있는 느낌”이라며 “검찰이 말 그대로 3월 초순에 수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에 대한 개인비리 수사를 계속 진행하게 되면 당에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민주당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 정치인에 대한 개인비리 척결은 비단 한나라당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들도 이런 부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내 일각에서 ‘모 의원이 내사를 받고 있다’는 식의 말이 나돈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화갑 의원 못지 않은 거물급 정치인도 검찰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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