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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그기들, 만주 근해 초계 미기(美機)들 공격적기(敵機) 최대 4대 격추
미기(美機) 공중전중 월경(越境)한 듯합참 진상 은폐 흔적
 
미국과 중공은 한국전(韓國戰) 휴전(休戰) 한참 후인 19555월 황해(黃海)상에서 치열한 공중전(空中戰)을 벌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비밀 해제된 미() 합참 문서에 따르면 당시 미군기 편대는 군산(群山)을 이륙해 만주 근해 상공(上空)을 초계 비행하던 중 미그기들의 공격을 받았다. 미군기들은 공중전에서 아무런 피해 없이 미그기 최대 4대를 격추시킨 것으로 합참 극비 문서가 밝혔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미군기 일부가 공중전 와중에 중공령()인 만주 해안 상공을 침범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미국 문서가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은 휴전 발효에도 불구하고 중공이 재도발하지 않을까 크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중공이 한반도와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야욕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 공군참모차장이 55514일자로 미 합참의장에게 올린 미국 5공군 한국 해안 초계 사고란 제목의 극비 보고서에 따르면 미 5공군 산하 제8폭격비행단 소속 F-86()들은 예정된 초계 임무에 나서고 있었다. 이들 미군기는 8대가 1개 편조(編組, Task Organization)로 군산 기지를 이륙한 후였다. 미군기들은 중공 인근 해역의 약 35천피트 상공을 비행하던 중 느닷없이 나타난 미그기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자연히 교전(交戰)이 이뤄졌다.
 
미군 조종사들은 적기 2대를 격추했으며 또다른 2대도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고 기지에 보고했다. 반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합참은 당시 공중전에 최소 8대에서 16대까지의 미그기가 투입된 것으로 판단했다.
 
미국 제8폭격비행단은 공중전에 휘말린 첫 편조가 임무에 나선 지 한시간 후 역시 군산 기지에서 F-868대를 출격시켰다. 이들 제2편조도 같은 항로를 비행했으나 공격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문서는 미군기들이 왜 공격받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 아군 레이다가 미군기들을 계속 추적했으며 인근 상공을 나는 다른 항공기의 존재도 그때 그때 조종사들에게 통보됐다고 문서는 밝히고 있다. 초계 비행에 하자가 없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문서는 그러나 공중전 당시 인근(해역)()코르벳함() 2척이 있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미군기들이 중공 함정에 접근하자 만주 안동(安東) 인근의 기지에서 미그기가 긴급 출격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당시 미군 레이다도 미그기들이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를 마주보는 안동(安東) 쪽에서 날아온 것으로 판단했다. 미국은 공중전이 일어난 위치에 무척 신경을 썼다. 영공 침범 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내용이 합참 문서에 담겨 있다. 미국 극동공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가 사건 직후 파악한 공중전 위치가 크게 달랐던 것이다.
 
미 공군은 북위 3928분에 동경 12353분이라고 밝힌 데 반해 유엔군 측은 북위 3931분에 동경 12312분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건 좌표상의 동경이 너무 크게 차이난다는 점이다. 유엔군이 파악한 공중전 위치가 미 공군이 처음 주장한 곳보다 대략 58km 정도 중공 쪽으로 더 치우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 공군이 당황했음은 물론이다. 공군작전사령관은 합참의장에게 50516일 극비 전문을 보내 공중전 위치가 북위 3927분에 동경 12337분으로 확인됐다고 정정 보고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극동공군사령부가 앞서 보고한 곳에서 약 26km를 중공 쪽으로 더 접근한 위치다.
 
따라서 미 공군은 공중전 위치 파악 시 실수를 했거나 아니면 고의적으로 좌표를 바꿨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후자 쪽이라면 미군기들이 당시 초계 임무 수행중 중공 영공을 침범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합참의 50514일자 보고서에도 미군기의 영공 침범 여부와 관련해 시사하는 대목이 있다. “조종사들은 기지 귀환 후 당시 아군기 1-2대가 적기를 쫓아 만주 해안 상공까지 들어간 것같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결정적인 대목은 그 다음이다. “미 극동군사령관은 월경(越境)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없음을 지적하면서 아군기가 절대 중공 영공을 침범하지 않은 것으로 계속 주장했으면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미 합참은 또 당시 공중전 관련 극비 문서들에 별지(別紙)를 붙여 회람자를 극소수로 한정한 것은 물론 서류를 봤을 경우 해당자의 이름이 찍힌 옆에 반드시 서명하도록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철저한 보안(保安)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은 당시 7함대를 재배치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 휴전 후의 미군의 위상을 다룬 미 합참 극비 문서들에 이 문제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중공이 휴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와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간 공중전은 이같은 상황에서 촉발됐던 것이다.
 
<윤광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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