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압박·충신으로서의 선택…사연도 ‘제각각’

<뉴시스>

국민상조 대표-경찰, 이인원 부회장-검찰 수사 앞두고 자살
 검·경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수사 차질 빚을까 ‘전전긍긍’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횡령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던 국민상조 나기천 사장이 경찰 출석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인원 롯데 부회장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자살한 지 불과 10여일도 안 돼 발생한 일이라 검·경은 물론 재계도 충격에 휩싸였다. 이와 관련해 각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경의 강압적인 수사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총수일가로 향하고 있는 검찰의 칼날을 주춤하게 만들기 위한 충신의 선택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누리꾼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기업인 자살 문제에 대한 자성 목소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관심을 갖기도 한다.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2005~2014년)간 검찰 수사 도중 자살한 사람은 기업인과 공직자 등 90명에 달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는 자료를 통해 2010년부터 2015년 6월까지 검찰 조사 도중 자살한 사람이 모두 79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가장 최근에는 국민상조 대표가 자살했다.
지난달 31일 경기 김포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5분 김포시 고촌읍 국민상조 건물 옥상에서 나기천 대표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공동대표 B(39)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나기천 대표는 지난달 18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 의뢰돼 이날 오전 10시 김포경찰서에 출석을 앞두고 있었다.

김포경찰서 관계자는 “나 대표의 사망시점이 30일 저녁과 31일 새벽 사이일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나 대표의 차량에서는 “상조가입회원과 가족에게 피해와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는 내용이 담긴 유서가 발견됐다.
국민상조는 9만 명의 회원이 가입된 대형 상조업체다. 최근 폐업을 하면서 일반가입자와 더불어 3만 명의 경찰관 피해자가 발생해 주목을 받았다.

자살로 생 마감한 기업인 누구

문제는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다가 적지 않은 기업인들이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각자의 혐의만큼이나 제각각이다. 하지만 극단적 선택을 한 수사 대상자들은 모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죽음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앞서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은 2003년 8월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정 회장은 대북송금과 현대그룹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수사당국으로부터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정 전 회장의 자살 배경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경영난과 검찰 수사에 대한 심리적 압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도 2004년 3월 대통령 친인척 비리로 조사를 받던 중 서울 한남대교에 투신해 사망했다.

남 전 사장은 정치권에 비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사장 연임을 위해 대통령 친인척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그는 “내가 모두 짊어지고 가겠다”는 말을 남겼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 역시 지난 2005년 ‘형제의 난’으로 두산 가문에서 제명된 뒤 성지건설을 인수해 재기에 노렸으나 경영난에 몰리자 2009년 11월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박 전 회장은 자금 압박과 가문에서 제명된 심적 스트레스 등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완종 회장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진다.

조사 앞둔 심리적 압박감 때문

전문가들은 사회 저명인사들의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는 물론 ‘부와 명예란 인생의 목표가 사라진 후 닥쳐오는 상실감과 패배에 대한 공포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꼽는다.

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최고 경영자나 사회적 성공을 거둔 인물들은 작은 실패에도 자신을 ‘패배자’로 낙인찍고 극도의 상실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심리전문가들도 통상 수사당국의 소환 전에는 심리적 중압감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 소환 후에는 자괴감과 모멸감 등이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특수통으로 불리는 한 검찰관계자는 “사회적 저명인사들의 경우 검찰 수사 대상이 되면 우선 포토라인에 서야 한다는 데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며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포토라인에 서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기도 한다”고 말했다.

검찰조사 전후로 목숨을 끊은 사례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당국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조사 도중 극도의 심리적 불안상태를 보이는 경우에는 신변보호 차원에서 ‘긴급체포’를 해 자살 등을 방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긴급체포는 인신구속을 하는 사안인 만큼 인권침해 등 논란의 소지가 크다. 

조사대상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 가장 당혹스러운 주체는 수사기관이다. 국민상조 나 대표의 자살 소식으로 경찰 내부가 흉흉해졌고, 이인원 부회장의 자살 소식으로 검찰은 당혹감을 내비치며 여러 차례 내부 회의를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대상자가 조사 전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에는 검찰이 비난의 화살을 오롯이 감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자 했던 수사당국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핵심 피의자가 숨지면서 관련 수사가 더 진행되지 못하는 차원을 넘어 수사의 명분까지 희석되는 상황이 온다면 검찰의 의욕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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