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려한 휴가’ 소송 위기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가 300억원 상당의 소송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화려한 휴가> 제작진을 상대로 소송 준비 중인 사실이 알려진 것. 비단 <화려한 휴가>만이 아니다. <실미도> <그 놈 목소리> <서울1945>에 이르기까지 많은 실화 소재 영화와 드라마가 명예훼손, 진실왜곡 등을 이유로 소장에 이름을 올렸다. 홍보에 유리하고 쉽게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매력만큼 논란을 겪을 가능성도 농후한 실화 소재 작품들. 그 면면을 살펴본다.



지난 7월에 개봉한 영화 <화려한 휴가>는 전국에서 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웃음과 감동이 공존해 영화 자체에 대한 평도 좋았지만 잊혀져가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많은 지지와 관심을 받았다.

이처럼 ‘화려한’ 평가와 성적을 기록한 이 영화가 최근 소송당할 위기에 처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전사모)’에서 소송 준비 중인 사실이 알려진 것.

전사모는 지난 10월 18일 인터넷 카페 자유게시판에 올린 공지 ‘전사모의 외침’을 통해 “정의실현을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려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이 글에서 전사모는 “거짓으로 꾸며진 영화를 진실인양 홍보해 1만8000명 전사모 회원 및 5.18 때 희생하신 공수부대 유가족들을 전 국민에게 손가락질 받게 하고 정신병자로 취급당하게 한 것에 대한 피해보상과 진실규명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하려 한다”며 소송목적을 밝혔다.

소송대상은 <화려한 휴가> 제작사, 제작진, 감독, 출연배우 등이며 소송내용은 “기자회견을 통한 대국민사과와 정신적 피해보상 금액 100~300억 원 선”이다. 뿐만 아니라 전사모는 <화려한 휴가>의 하이라이트 장면인 애국가가 흐르는 가운데 진압군이 광주시민에게 무차별 발포를 하는 일명 ‘도청발포사건’은 명백한 왜곡이며 전사모 회원 중 5.18 관련자나 당시 공수부대 지휘관, 사병, 공수부대 유가족들의 연락을 기다린다고 했다.

이같은 전사모의 소송 준비에 대해 <화려한 휴가> 제작사인 기획시대의 유인택 대표는 “소송을 통해 오히려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유 대표는 전화 인터뷰에서 “전사모가 소송을 한 게 아니라 소송 준비 중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밝힐 수 있는 대응방법이 없다”며 “하지만 진실에 기해 <화려한 휴가>를 만들었기 때문에 소송을 당한다 해도 걱정하진 않는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만약 소송이 진행된다면 5.18 당시 최초 발포 명령권자를 비롯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소송 이유 대부분 ‘명예훼손’

<화려한 휴가>만이 아니다. 이전에도 많은 실화 소재 영화가 소송에 휘말렸다.

설경구, 김남주 주연의 <그 놈 목소리>도 그 중 하나.

올 2월 개봉해 320만명 이상의 흥행스코어를 기록한 <그 놈 목소리>는 1991년에 발생한 고 이형호군의 유괴살해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박진표 감독은 “공소시효가 지나도 반드시 유괴범을 잡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군의 어머니 A씨는 <그 놈 목소리> 제작사를 고소했다. A씨는 자신의 육성이 영화에 사용되어 사생활이 침해됐다며 <그 놈 목소리>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A씨의 음성을 삭제, 변조하지 않고 DVD나 비디오를 제작, 판매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영화 1000만 시대’의 포문을 연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 역시 소장에 이름을 올렸다. 2004년 4월, <실미도>의 실제모델인 일명 ‘684부대’ 훈련병 유족 59명이 “자원입대한 684부대원들이 사형수, 살인범 등의 범죄자로 묘사돼 사망자와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 1, 2심 모두 영화사측이 승소했지만 이로 인해 <실미도> 관계자들은 흥행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마음 고생을 꽤나 했다는 후문이다.

10.26 사태를 소재로 한 <그때 그 사람들>의 경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으로 ‘일부 삭제 상영’ 판결을 받았다가 이의신청을 통해 원본을 상영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다니엘 헤니가 주연을 맡은 <마이 파더>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미군에 지원한 입양아 애런 베이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살인범 미화 논란을 일으켰다. 극중 다니엘 헤니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사형수에게 살해된 피해자 가족이 영화 상영 반대의사를 밝혀 제작사가 사과의 글을 올려야했다.

실화 소재 드라마도 소송을 피해갈 순 없다.

해방 전후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그린 KBS-1TV <서울1945>는 지난 해 고 이승만 전 대통령과 고 장택상 전 총리 유족으로부터 “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민·형사 소송을 당했다. 다행히 1, 2심 모두에서 <서울1945> 제작진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2003년에는 탤런트 최민수가 “부친 최무룡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SBS 드라마 <야인시대> PD와 작가, 방송사 등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형사고소를 하기도 했다. 최민수는 당시 “패소할 경우 이민을 가겠다”는 폭탄발언을 던져 더욱 화제를 모았다.


신중히 만들지만 논란 불가피

실화 소재 영화와 드라마의 잇단 소송에 대해 상당수 연예 관계자들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사자나 가족이 생존해있는 상황에서 특정사건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경우 명예훼손, 진실왜곡 등의 논란이 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삼을 경우 그 가능성은 더욱 농후해진다.

드라마 제작사에 근무하는 A는 “소송이 걸린 작품 대다수가 정치사회적으로 유명한 사건과 인물을 등장시켰다”며 “워낙 많은 이목이 집중되는데다 이해관계, 이념대립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보니 갈등이 안 생길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 “관심을 쉽게 모을 수 있지만 논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게 실화 소재 작품의 장점이자 한계”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화 소재 작품 제작진은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자료수집에 총력을 기울이고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해 문제 발생 여지를 최소화하려한다. 사건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건 기본.

때문에 실화 소재 작품을 만드는 이들의 고충은 상상이상이다. “작품보다 외적으로 신경 쓸 게 더 많고 욕심보다 표현수위를 줄여야할 때도 있다”는 한 방송 관계자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실제 <마이 파더>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시사회에서 “다시는 실화 소재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고 부담스러웠다”는 말로 연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창작의 자유 vs 책임감

한편 영화와 드라마 관계자들은 대중이 실화와 작품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삼아도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각색을 거치고 새로운 이야기가 가미되면서 또 하나의 ‘픽션’이 된다는 것. 대중이 작품과 실화를 계속 동일시 할 경우 작가들의 창작활동이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아무리 창작의 자유가 있다 해도 연관된 사람이 있는 이상 실화 소재 작품을 만들 땐 최대한 신중을 기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중매체가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책임감은 더욱 커진다고.

탤런트 매니저 B는 “실화 소재 작품의 소송 대부분이 명예훼손이다”며 “불특정 다수에 노출되는 영화나 드라마에 자신 혹은 가족이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진다면 누가 좋아하겠나. 더욱이 그 사실이 거짓이라면 나라도 소장을 준비할 것”이라는 말로 소송하는 이들에게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실화 소재 작품들이 논란을 홍보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소송 등의 논란이 생기면 언론에 보도되고 이는 대중의 관심으로 이어져 저절로 작품 홍보가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

홍보사 관계자 C씨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나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릴 경우 해당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작품을 모르던 사람도 알게 된다”며 “좋은 일도 아니고 의도한 바도 아니지만 홍보효과가 적진 않을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흥행 확률도 높은 실화를 내버려둘 제작자는 없다”는 한 방송 관계자의 말처럼 앞으로도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과연 그 작품들이 얼마만큼 발전하고 어떤 논란을 낳으며 어느 정도의 흥행을 거둘지를 지켜보는 재미도 적지 않을 듯하다.



#잔혹 미해결 살인사건 영화제작
할리우드 영화 <블랙 달리아>에 세간의 관심 급증


‘한국에 <살인의 추억>이 있다면 미국엔 <블랙 달리아>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 <블랙 달리아>가 국내 네티즌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연출을 맡고 스칼렛 요한슨, 조쉬 하트넷, 힐러리 스웽크 등이 출연한다는 점도 화젯거리지만 관심을 받는 진짜 이유는 엽기적인 미해결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 달리아>는 1940년대 미국 LA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1947년 1월 15일. LA 외각의 한 공터에서 여자 시체 한구가 발견된다. 여자는 벌거벗겨진 채 허리를 중심으로 몸이 정확히 두 부분으로 분리돼 있었다. 내장과 몸 안의 피는 모두 제거된 상태였으며 입술 양 끝이 귀까지 절단돼 기괴하게 웃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처참한 시체의 이름은 22살의 배우 지망생 엘리자베스 쇼트였다.

이 끔찍한 사건은 LA 전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고 언론의 대서특필 속에 대대적인 관심을 받았다. 관심만큼 수사도 방대하게 진행됐다. 500여명의 수사관이 투입됐고 3000여명의 용의자가 체포됐으며 2만5000여건의 사건 제보가 이어졌다. 모든 제보편지는 만일을 대비해 범죄 수사과에서 지문 및 필적검사를 거쳤고 모방 유사 범죄도 100여건에 달했다. 하지만 결국 수사는 미해결에 그쳤다.

이처럼 극적이고 잔인한 살인사건, 그것도 미해결 살인사건을 다뤘다는 점 때문에 미국에서도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모은 <블랙 달리아>의 인기는 국내에서도 만만치 않다. 11월 1일 국내 개봉을 앞둔 상태에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극에 달한 것. 대다수 네티즌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살인의 추억>과 <블랙 달리아>를 비교하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고 일부 네티즌은 인터넷을 뒤져 사건에 대한 새로운 단서까지 캐고 있다.

한편 엘리자베스 쇼트는 생전 칠흑같이 검은 머리에 아름다운 꽃을 꽂고 라는 영화에 출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후 ‘블랙 달리아’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는 영화 제목으로까지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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