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한 영화 속 베드신

“진짜야? 가짜야?”
영화 속 사실감 넘치는 장면을 보다 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다. 베드신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하는 정사신은 감탄을 넘어 영화에 대한 관심을 급증시키는 역할까지 한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영화가 아닌 베드신만 기억에 남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많은 영화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파격적인 베드신을 품는다. 논란을 일으킬 만큼 사실적인 영화 속 정사 장면과 그 기능을 살펴봤다.



‘색,계’, 배우 음모·성기 노출

11월 8일 개봉하는 영화 ‘색,계’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등을 연출한 세계적인 거장 이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연기파 배우 양조위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 세계영화의 중심에 섰다.

이처럼 화려한 면 외에 ‘색,계’가 화제를 모으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파격적인 정사 장면이다.

2차 대전 당시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스파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자(탕웨이)와 그녀의 표적이 된 남자(양조위)의 슬픈 사랑을 그린 ‘색,계’에는 20여분에 걸쳐 3차례의 전라 정사신이 등장한다. 극중 정사신은 남녀 주인공의 외로움과 서로에 대한 그리움, 억압된 감정 등을 드러내는 중요한 영화적 장치다. 작품의 완성도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평이다.

하지만 정사신 농도가 워낙 짙은데다 일부 장면에서 양조위의 성기, 탕웨이의 음모가 노출돼 영화 자체보다 정사 장면에 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배우들이 실제로 관계를 한 것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었다. 얼마 전 방한한 이안 감독이 “카메라 앵글 등을 이용해 실제처럼 보이게 했다”고 말했지만 실연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색,계’ 외에도 많은 영화들이 파격적이고 사실적인 베드신으로 세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아왔다.

시들지 않는 미모를 자랑하는 프랑스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열연한 ‘돌이킬 수 없는’도 실연 논란에 휘말렸었다. 극중 모니카 벨루치가 강간당하는 9분 간의 롱테이크 장면에서 남자 배우의 성기가 노출된 데다 감정 표현이 워낙 리얼해 ‘진짜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은 것.

국내에서는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여배우 음모 노출과 실연 의혹으로 개봉 당시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켰고,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를 만든 이성강 감독의 첫 실사 영화 ‘살결’도 파격적인 섹스 신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에 이성강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결코 실제 정사장면이 아니다. 정교한 연출”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일부 영화, 배우들 실제 정사

그런가하면 배우들이 실제 관계를 가진 영화도 있다. 물론 포르노물은 아니다.

제작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설과 예술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1976)’, 레오 카락스 감독의 ‘폴라X’, 파트리스 셰로 감독의 ‘정사’, 틴토 브라스 감독의 ‘숏버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장 자끄 아노의 ‘연인’, 웨인 왕 감독의 ‘센터 오브 월드’, 틴토 브라스 감독의 ‘칼리큘라’, 잘만 킹 감독 연출에 미키 루크가 주연한 ‘와일드 오키드’ 등은 베드신 실연 여부가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파격적이고 적나라한 베드신에 대해 영화 관계자들은 “작품의 완성도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촬영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목끌기가 아닌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이를 증명하듯 실제 상당수의 예술영화가 격정적이고 파격적인 베드신 속에 철학적 주제와 사회 비난을 담아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 강도 높은 베드신은 영화 홍보에도 용이하다.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돼 별다른 노력 없이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 ‘색, 계’의 경우만 봐도 기자시사회 직후 수많은 매체에서 ‘실연 논란 정사 장면’, ‘파격 베드신 무삭제 개봉’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올려 누리꾼들의 이목을 끌었고, 포털 사이트 영화 검색어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홍보대행사에 근무하는 A는 “‘색,계’ 같은 영화는 홍보가 안되는 게 이상하다. 유명 감독과 배우, 국제적 수상 경력, 거기다 파격적인 베드신까지 있다”며 “솔직히 홍보에 강도 높은 베드신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지 않나”라며 부러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리얼한 베드신은 주객이 전도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베드신에만 관심이 모아져 영화가 전하려는 본질적인 메시지가 차단되고 대중이 장르와 상관없이 에로물로 받아들이는 불상사도 생긴다.


영화 아닌 베드신만 주목

인터넷을 검색하면 상당수 네티즌이 ‘폴라X’, ‘감각의 제국’ 등을 강도 높은 에로물 정도로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를 본 이유도 쇼킹한 베드신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다는 말이다.

영화광을 자처하는 류정희(29·여)씨는 “베드신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들을 봤는데 내 취향과 달라서인지 어떤 예술적 가치도 느낄 수 없었다”며 “성기와 음모를 드러내고 격정적인 베드신을 넣어야만 인생의 의미와 철학적 사고를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작품은 베드신만 강조한 홍보 때문에 ‘자체적으로’ 에로영화로 둔갑하는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예술영화가 에로물로 둔갑하는 경우는 빈번하다”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베드신을 내세워 홍보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유와 결과가 어떻든 예술성 혹은 흥행을 위해 정사신은 계속 업그레이드될 것”이란 한 영화 제작자의 말처럼 영화 속 파격 베드신의 행진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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