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집착하는 거야… 내 마음 알지?”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에게 ‘팬’은 존재 의미이자 활동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모든 팬이 연예인에게 힘이 되는 건 아니다. 과유불급. 관심과 사랑을 넘어 집착으로 변한 팬의 사랑은 연예인에게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도를 넘어선 안티 팬의 활약(?)도 마찬가지다. 그 아픔을 함부로 드러낼 수도 없다는 점이 연예인들을 더욱 괴롭힌다. 빗나간 관심, ‘스토킹’에 시달리는 연예인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피해라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탤런트 최성국이 최근 한 인터넷매체를 통해 여성 팬에게 스토킹 당한 사실을 고백했다.

최성국에 따르면 문제의 여성 A와 최성국은 미니홈피를 통해 알게 됐다. A가 최성국의 미니홈피에 좋은 글을 남겼고 이후 두 사람은 쪽지를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았다. 하지만 좋은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 A가 최성국에게 ‘만나 달라’ ‘내가 갖지 못하는 남자는 남도 가질 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휴대폰 문자를 하루 20여 통이나 보낸 것.

최성국이 문자에 답하지 않자 A는 인터넷을 이용한 음해를 시작했다. 최성국의 연인을 자처,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 최성국의 부정을 들춰내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최성국은 이 사건을 조용히 넘기려 했으나 주연을 맡은 <색즉시공2>가 개봉을 앞둔 시점이라 제
작사에서 최성국에게 음해성 글에 대해 물어왔다.

진실을 알게 된 제작사가 A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A가 음해성 글을 자진 삭제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 됐지만 최성국은 향후 스토킹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단 최성국만이 아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스토킹의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중견 탤런트 김미숙이 동일인(B)에게 무려 17년 간 스토킹 당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져 충격을 줬다. B가 2000년과 2002년에도 김미숙에 대한 절도 및 협박죄로 체포, 실형 선고를 받아 복역한 전적이 있다는 점에서 충격의 강도는 더욱 컸다.

김미숙의 소속사에 따르면 B는 30대 후반의 미혼여성으로 1990년부터 김미숙의 팬을 자처하며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2000년에는 김미숙이 운영하던 유치원에 무단침입, 김미숙의 휴대전화와 집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하루 수십 번씩 “만나 달라”는 전화를 걸었다. 집 대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당시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던 김미숙은 큰 심리적 압박을 느꼈고 가족의 안전도 걱정돼 B를 고발했다. B는 협박죄로 실형을 받았지만 스토킹을 멈추지 않았고 2002년, 다시 한번 무단침입 및 절도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까지 했다.

김미숙이 지난 해 말 경기도 파주로 이사하면서 잠잠했던 B의 스토킹은 올 7월경부터 다시 시작됐다. 김미숙의 집을 알아낸 B는 또 다시 집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고 밤 11시가 넘어 초인종을 눌러대기도 했다. 7살 난 아들과 5살배기 딸을 둔 김미숙의 불안은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B가 ‘1억원을 주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겠다’는 쪽지를 김미숙에게 건넸고 참다못한 김미숙의 남편이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B는 지난 9월 12일 공갈 미수 등의 혐의로 경기도 파주경찰서에 구속됐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B는 말을 번복해 “돈은 필요 없다. 김미숙과 살고 싶다”고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근한 인상으로 사랑받는 가수 겸 연기자 김창완도 동일인(C)에게 13년 동안 지독한 스토킹을 당한 피해자다.

87년부터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라며 김창완을 쫓아다닌 C는 94년 김창완의 집에 침입해 김창완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뿐만 아니라 98년 10월에는 김창완 집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 실형을 선고받았고, 2000년 4월에도 비슷한 이유로 불구속입건 됐다. C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00년 9월, 김창완 집에 찾아가 “오늘이 마지막이니 꼭 만나게 해 달라. 아니면 죽어버리겠다”며 김창완의 동생을 협박했다. 그는 결국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희구 “스토킹에 자살 시도”

개그우먼 이희구가 당한 스토킹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7월 이희구는 한 아침방송에 출연해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스토킹을 당해 가슴 졸이며 살았다”는 눈물의 고백을 했다.

이희구를 스토킹한 사람은 당시 방송국 후배와 교제 중이던 남자 D. 회식자리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D는 이후 이희구를 따라다니며 20억을 요구하고, “누드사진 촬영을 했다”며 악성 루머를 퍼뜨렸다. 전속 프로덕션 사장에게 이희구와 동거 중이며 결혼 할 것이라는 거짓말을 한 것은 물론 방송국 게시판에 ‘이희구는 포르노배우’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2001년에는 유리잔으로 이희구를 때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았고, 2002년에는 동료 개그맨 두 명에게 “이희구가 시트콤 제작자에게 출연료 사기를 당했으니 함께 고소하자. 아니면 죽이겠다”고 협박해 신체포기각서까지 받아냈다.

결국 D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지만 이희구는 “스토킹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했다. 119가 출동해 죽지 못했다”고 말해, 스토킹이 주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줬다.

야구선수 출신 방송인 강병규도 지난 해 30대 여성에게 수십통의 음란성 이메일과 휴대전화 문자 등을 받아 경찰에 신고했고 가수 이현우는 계속적으로 오피스텔 문을 두드리고 잠자는 사이 집 안까지 들어온 20대 여성 팬에 대해 접근금지 신청을 내기도 했다.

안티 팬들의 스토킹도 연예인에게 고통을 주긴 마찬가지다.

간미연은 그룹 베이비복스 시절 H.O.T의 리더 문희준과 사귄다는 소문이 돈 뒤 H.O.T 열혈 팬에게 혈서와 칼날 등이 든 편지를 받았고, 가수 겸 연기자 이정현 역시 조성모와 CF를 찍은 뒤 “오빠와 사귀면 죽을 줄 알라”는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하리수의 경우 올 초 자신의 미니홈피에 지속적으로 비방 글을 올린 30대 남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미지 관리 위해 ‘쉬쉬’

이처럼 성별과 연령을 막론하고 많은 연예인들이 스토킹에 시달리고 있다. 연예계엔 “피해의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면 스토킹을 한 번도 안 당한 인기 스타는 없을 것”이란 농담 아닌 농담까지 나돈다.

최근엔 휴대폰, 이메일, 인터넷 게시판 등을 이용한 일명 ‘사이버스토킹’의 등장으로 피해를 입는 연예인이 더욱 증가했다. 사이버스토킹의 경우 오프라인 스토킹과 달리 언제 어디서든 스토킹 할 수 있고 직접 대면하지 않기 때문에 신분이 노출될 가능성이 적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악성 루머를 순식간에 퍼뜨릴 수 있어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 중 그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스토킹 당하는 연예인 대다수가 상황을 조용히 수습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기와 이미지로 먹고사는 직업인만큼 구설수에 오르내리면 좋을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반인보다 얼굴이 많이 알려지는 직업의 특성상 스토킹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알아서 넘어가기도 한다.

여가수 매니저 A씨는 “아주 심각한 스토킹이 아니면 굳이 언론이나 세간에 알리려 하지 않는다. 혹시 있을지 모를 후한도 두렵지만 이미지에 득이 될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여자 연예인의 경우 스토커에게 받은 음란성 메일이나 편지가 공개돼서 좋을 게 없지 않나”라고 전했다.

최성국 역시 최근의 스토킹 사건에 대해 “연예인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처음엔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스토커, 처음엔 팬…처벌 망설여

대다수 스토커가 처음엔 팬이었다는 점도 연예인의 신고를 망설이게 만드는 큰 이유다. 비뚤어진 사랑이지만 자신에게 애정을 쏟는 팬에게 야박하게 굴기 어려운 연예인들은 처음엔 고통을 참고 스토커를 설득하려한다.

강병규도 지난 해 30대 여성 팬을 형사 고소한 후 “팬이라 처음엔 수차례 만류하고 설득했지만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줘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며 “일이 이렇게 돼서 안타깝다”는 심경을 내비쳤다.

스토킹의 법적 처벌이 쉽지 않다는 점도 연예인이 피해를 감추는 원인이 된다. 현재 국내에는 별도의 스토커 처벌 법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 즉, 스토킹 행위 자체로는 처벌이 어렵다. 대신 스토킹 유형에 따라 협박, 공갈, 명예훼손, 폭행 등으로 처벌이 가능한데 이를 증명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여가수 매니저 B는 “가해자가 폭행을 하거나 장시간 스토킹을 하지 않는 이상 형사 고소를 하기란 쉽지 않다”며 “대부분의 경우 처벌이 경미하기 때문에 큰 의미도 없는 것 같다”는 말로 신고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여전히 스토킹을 심각한 범죄로 보지 않는 사회적 인식도 문제다. 특히 사이버스토킹의 경우 직접적인 피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연예인이 이를 신고 할 경우 일각에서는 “별거 아닌 일에 유난 떠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경중과 유형을 떠나 스토킹은 심각한 범죄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요즘엔 스토커에게 처벌과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상당수 스토커들이 정신질환이나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더 과격한 행동을 할 확률이 높다”며 “스토킹을 당할 경우 하루 빨리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팬들의 자성도 요구된다. 아무리 좋아하는 스타라도 당사자가 원치 않는다면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절제할 줄 알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스토커라는 오명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

한 연예관계자는 “스토킹이 특별한 게 아니다. 그 의미가 ‘상대방이 싫다는데도 의도적, 반복적으로 따라다니는 등 정신적·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며 “오늘도 많은 연예인들이 일부 팬의 일그러진 사랑에 상처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토킹에 목숨 잃은 해외스타들

해외 스타들은 국내보다 더 지독한 스토킹에 시달린다. 미국처럼 비교적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국가의 경우 스토커에 의해 목숨을 잃은 스타들도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과 인기 탤런트 리베카 세퍼,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 라틴팝 가수 셀레나 등이다.

존 레논은 1980년 뉴욕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에서 열혈 팬 마크 채프먼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셀레나는 1993년 3월 자신의 스케줄 매니저였던 욜란다 살디바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3살이었다.

한편 1989년 발생한 레베카 세퍼 피살 사건은 캘리포니아 등 미국 일부 주에서 스토킹 방지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스토킹 방지법 입법을 열정적으로 주도했던 배우 테레사 살다나도 스토커에 의해 15차례나 칼에 찔렸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 외에 헤비메탈 그룹 판테라의 전 기타리스트 다임백 대럴도 콘서트 도중 무대에 뛰어 오른 팬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조디 포스터의 스토커 존 힝클리는 조디 포스터를 향한 자신의 애정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해 세간에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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