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으로 ‘스타’된 배우들

<태왕사신기>에서 <왕과 나>, <이산>에 이르기까지. <대장금>을 기점으로 안방극장에 불어 닥친 ‘사극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오히려 점점 더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그 열풍 덕에 숨겨진 재능을 인정받고 팬들의 사랑을 받는 배우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신인에서 중고신인까지 연령도, 활동 기간도 다양하다. 물론 이들이 절로 인기를 얻은 건 아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를 중심으로 ‘사극’이란 돛을 달고 연기 인생 순항 중인 배우들을 살펴본다.


신인 이지아
<태왕사신기>로 스타덤


MBC 퓨전사극 <태왕사신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평균 시청률이 30%에 육박하고 12월엔 일본에서도 방영될 예정이다.

높은 시청률은 고스란히 출연진의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 주인공 ‘담덕’ 역의 배용준은 물론 ‘처로’ 역의 이필립, ‘주무치’ 역의 박성웅, ‘각단’ 역의 이다희, ‘바손’ 역의 김미경 등 조연들까지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세간의 관심을 받는 중이다.

특히 담덕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수지니’ 역의 이지아는 <태왕사신기>를 통해 ‘생짜 신인’에서 단숨에 인기스타로 발돋움하는 행운을 잡았다. <태왕사신기>가 데뷔작임에도 탄탄한 연기력으로 선머슴 같으면서도 귀여운 수지니를 완벽하게 소화해 팬들의 지지를 끌어냈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얼마 전엔 최지우, 이나영 등이 모델로 활동했던 롯데제과 애니타임의 전속모델로 발탁됐고 미니홈페이지가 해킹당하는 헤프닝을 겪기도 했다.

이지아만이 아니다. 이미 많은 배우들이 사극을 통해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기쁨을 누렸다. 사극이 스타 탄생의 산실이 되고 있는 셈.

MBC 월화 드라마 <이산>의 이서진과 박은혜도 사극이 배출해낸 스타다.

1999년 SBS 드라마 <파도 위의 집>으로 데뷔, <별을 쏘다>, <왕초> 등에 출연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서진은 2003년 MBC 퓨전사극 <다모>를 통해 ‘훈남’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극중 자신의 심복이자 다모인 ‘채옥’(하지원)과 슬픈 사랑을 나누는 좌포도청포도 종사관 ‘황보윤’으로 분해 애잔한 눈빛 연기로 여성 팬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대사는 각종 방송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됐을 정도로 유행했다. 이후 <불새>, <연인> 등의 주연을 맡으며 인기를 굳힌 이서진은 현재 <이산>에서 ‘정조대왕 이산’ 역으로 안방극장의 사극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연인>에 함께 출연했던 김정은과의 열애로도 화제를 모으는 중이다.


박은혜-양미경,
<대장금>으로 한류스타


‘효의왕후’ 역의 박은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사극 <대장금>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케이스. 1998년 영화 <짱>으로 데뷔한 박은혜는 ‘한국의 왕조현’이란 별명을 얻으며 <찍히면 죽는다>, <천사몽> 등의 영화와 몇몇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대장금>에서 어리버리하지만 귀엽고 착한 장금의 절친한 친구 ‘연생’을 연기하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대장금>이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 각국에서 사랑받으면서 ‘한류스타’로까지 발돋움했다.

<이산>과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SBS 사극 <왕과 나>에도 <대장금>으로 뒤늦게 빛을 본 스타가 있다. ‘정희왕후’ 역의 양미경이 그 주인공.

<대장금>에서 장금의 스승이자 올곧은 수라간 최고상궁인 ‘한상궁’으로 출연한 양미경은 숨겨둔 연기내공을 폭발시켜 시청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대장금> 이후 보훈처, 한국 농식품 등 각종 홍보대사로 위촉됐고 중견배우로서는 드물게 한류스타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왕과 나>에서 내시부 수장 ‘조치겸’ 역을 맡고 있는 전광렬과 ‘인수대비’ 역의 전인화도 사극으로 대중적 인기를 맛본 경험이 있다. 전광렬은 이병훈PD가 연출한 <허준>에서 ‘허준’으로 분해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고 전인화는 <여인천하>에서 ‘문정왕후’로 분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며 ‘사극 여왕’이란 호칭을 얻었다.


김명민,
<불멸의 이순신>으로 무명 타파


<태왕사신기>와 맞대결 중인 SBS 수목드라마 <로비스트>의 주인공 ‘송일국’도 빼놓을 수 없는 사극 출신 스타다.

1998년 MBC 공채 27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송일국은 K-1TV <애정의 조건>으로 얼굴을 알렸고 이어 K-2TV <해신>에서 매력적인 악역 ‘염장’ 역을 맡아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그 인기에 힘입어 <레드 아이>, <작업의 정석> 등의 영화 주연을 맡았으며 지난해 50%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사극 <주몽>으로 드디어 톱스타 자리에 올랐다. 두번의 사극 출연이 확실한 인기발판이 된셈.

K-2TV <인순이는 예쁘다>에 출연 중인 김민준 역시 <다모>를 통해 스타가 됐다. 극중 고독한 개혁가 ‘장성백’ 역을 맡은 김민준은 탁월한 액션연기와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델 출신 연기자’에 대한 우려와 편견을 깨고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현재 차기작을 준비 중인 배우 중에도 사극의 은혜를 입은 이들은 많다.

손예진과 호흡을 맞춘 영화 <무방비도시> 개봉을 앞둔 김명민은 K-1TV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으로 데뷔 10년 만에 스타 호칭을 거머쥘 수 있었다.

SBS 공채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이후 잇단 작품 취소와 부상에 시달리던 김명민은 연기를 접고 뉴질랜드로 이민 갈 생각까지 했다.

그 와중에 <불멸의 이순신>에 캐스팅됐고 갈고 닦은 연기내공을 바탕으로 ‘이순신’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최고의 배우’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성기를 맞았다.

신인이던 이준기는 1천2백만명을 동원한 사극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여성스런 남자 광대 ‘공길’로 등장해 단숨에 ‘충무로 기대주’로 떠올랐고 박용우도 K-2TV 드라마 <무인시대>와 사극 영화 <혈의 누>로 데뷔 10여 년만에 ‘재발견’되는 영광을 누렸다.


치열한 노력과 탄탄한
연기로 승부


이처럼 많은 배우들이 사극으로 성공 기반을 다졌지만 절로 인기를 얻은 건 아니다. 그 뒤엔 남모를 눈물과 노력이 숨어있다.

사극의 경우 현대극이나 트랜디 드라마보다 깊이 있고 탄탄한 연기력이 요구된다. 분장에서 구어체 말투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다. 퓨전사극을 제외하면 기본 60부 이상이라 촬영기간도 길다. 때문에 얼렁뚱땅 연기할 수 없고 약간의 노력으론 존재감을 발할 수 없다. 자신을 컨트롤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결국 사극으로 성공한 스타들은 까다로운 사극 연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인 셈이다.

실제 최수종, 정준호 등이 거절한 <불멸의 이순신>의 ‘이순신’ 역을 맡아 미스 캐스팅 논란에 휩싸였던 김명민은 피나는 노력으로 종영 무렵엔 ‘이순신 장군의 재림’이란 찬사를 받았다. 밤새워 대본을 외우는 건 기본, ‘인간 이순신’을 이해하기 위해 상상초월의 정신적 고통을 견딘 결과다. 한겨울 바닷바람에 손발이 꽁꽁 얼고 한 여름에 20kg에 달하는 갑옷을 입고 진행하는 촬영도 이겨내야 했다. <해신>의 송일국도 군 입대로 중도하차한 한재석에게 ‘염장’ 역을 이어받아 부담이 컸지만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과 철저한 캐릭터 분석으로 시청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현재 지상파 3사에 경쟁적으로 방영되고 있는 다양한 사극을 통해 또 어떤 스타가 탄생할 지 자못 궁금하다.



#“사극 안에 여가수 있다?”

심은진, 전혜빈, 이진.

세명의 공통점은? 맞다. 가수다. 하지만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 가수 출신 연기자인 이들은 현재 사극에 출연,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5인조 여성 댄스그룹 베이비복스 출신인 심은진은 K-1TV 대하사극 <대조영>에서 대조영 진영의 여장수 ‘금란’ 역을 맡아 정식 연기자 신고식을 치렀다. 초반 설인귀(이덕화)에게 정보를 빼내기 위해 기생으로 위장했던 심은진은 최근 여자 무사로 등장해 강렬한 카리스마와 기대이상의 액션연기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9월 말 경북 문경에서 진행된 액션신 촬영에선 무술전문 연기자의 실수로 입 부분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전혜빈과 이진은 나란히 SBS <왕과 나>에 출연 중이다.

그룹 러브로 데뷔해 여러 오락프로그램에서 발랄한 매력과 끼를 과시했던 전혜빈은 극중 어머니의 원수인 노내시(신구)의 수양딸이자 수발을 드는 ‘설영’ 역을 맡았다. 남들 앞에선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보여야 하는 탓에 표정과 눈빛만으로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전혜빈은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최고의 여성그룹 핑클 멤버였던 이진은 극중 ‘정현왕후’로 분해 연기 활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온화하고 기품 있는 정현왕후와 차분한 이진의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는 평가다.

한편 이들이 가장 힘든 장르로 손꼽히는 사극으로 본격적인 연기활동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상당수 연예 관계자들이 “연기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탄탄한 연기력을 요하는 사극에 출연해 ‘가수 출신 연기자’에 대한 편견과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것. 실제 전혜빈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수 출신 꼬리표를 떼는데 현대극보다 사극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촬영 기간이 길고 연륜 있는 연기자들이 많이 출연해 실전 연기를 배울 수 있다는 점도 가수 출신 연기자들이 사극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무대에서 선보인 화려하고 현대적인 가수 이미지를 없애는데도 현대극보다 사극이 더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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