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가능성 커져…경제적 정의와 평등 이루는 리더십 탁월해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지난 2012년 4월 16일, 아시아인으로는 사상 최초로 세계은행(World Bank) 총재에 선출된 김용 총재의 연임이 확실시 되고 있다. 내년 6월 30일 첫 임기를 마치는 김 총재가 최근 연임 의사를 밝히자 미국에 이어 중국과 일본도 지지를 표명하고 나선 것. 글로벌 경제 강대국들이 이처럼 적극 지지함에 따라 김용 총재는 이변이 없는 한 연임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세계은행을 전 세계의 빈곤 감소를 위한 ‘해법 은행(solution bank)’으로 진화시키겠다는 소신을 피력하며 세계적 양극화 해소에 강한 의욕을 보였던 김 총재가 첫 임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방증이다.

지난 9월 5일,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부상이 항저우에서 김용 총재와 회담을 갖고 그의 세계은행 총재직 연임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소 부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빈곤 퇴치 등을 향한 김 총재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지난달 25일 미국의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의 연임지지 표명과 31일 중국 재정부의 “김 총재가 임기 내 이룬 특출한 실적과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며 세계은행 총재 연임을 지지한다”는 공식입장에 이은 쾌거였다.

이러한 글로벌 경제 강대국들의 연속적인 지지 표명은, 세계은행 직원들의 연임 반대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김 총재는 임기 초반 공격적인 직원 구조조정 등으로 내부적인 논란을 야기했고 이는 세계은행 직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지난달 9일 세계은행 직원조합은 “세계은행이 리더십의 위기에 봉착했다”며 김용 총재의 연임을 반대하는 서한을 이사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악재 리더십으로 극복

이렇듯 내부 직원들의 반대와 함께 세계은행이 재정위기에 몰리는 등 김 총재의 연임에 여러 가지 악재가 상존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경제강국들의 잇따른 지지 표명으로 김 총재의 연임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그렇다면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세계 주요 국가들이 김 총재의 연임을 지지하는 이유가 뭘까?

우선 지난 4년간 임기를 통해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게 가장 설득력 있는 평가다. 더불어 김 총재가 자신을 지명한 현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일 뿐만 아니라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도 친밀한 관계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진단에 의하면 오는 10월 예정된 세계은행 연차총회와 11월 미국 대선 전 김 총재의 연임을 확정한다는 게 세계은행 이사회의 의도다.

이에 미국이 김 총재의 연임을 지지함에 따라 미국과의 무난한 외교관계를 지향하는 여러 국가들이 김 총재의 연임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연임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시각이다.

차기 총재 선임 절차는 이미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이사회는 오는 9월 14일까지 후보 지명을 받은 뒤 후보를 3명으로 압축하고 면접을 거쳐 9월 말 전후로 차기 총재를 최종 선임한다.

한편, 유엔·국제통화기금(IMF)과 더불어 유력한 3대 세계기구 중 하나인 세계은행의 정식 명칭은 국제부흥개발은행(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경제 부흥과 개발도상국의 개발을 위해 이전보다 완화된 조건의 장기 자금을 제공할 목적으로 설립한 국제은행이다.

1944년 7월 브레튼우즈협정이 발효되면서 만들어진 유엔의 경제이사회 전문기관이기도 한 세계은행은 1946년 8월 발족해 현재까지 세계 경제발전의 한 축을 이끌어왔다.

특히 현재는 주로 개발도상국의 공업화를 위해 융자를 행하고 있으며 세계은행이 지원하는 개도국의 프로젝트 총 투자액은 연간 500~600억 달러 정도 규모로 지역별로 중남미 지역이 가장 큰 수혜국이 되고 있다.

의협심 강하고 인간미 넘쳐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5세 때 미국 아이오와주 무스카틴으로 이민한 김용 총재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보건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무스카틴 고등학교 재학 시절 전교회장과 수석 졸업생 대표, 미식축구 팀에서 쿼터백과 농구팀의 포인트 가드 등 전방위적인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실용을 강조하는 부친에게 조직의 운영과 리더십을, 철학박사였던 모친에게는 따스한 눈으로 인간을 볼 줄 아는 부드러운 심성과 사고의 깊이를 배웠던 김 총재.

그는 하버드대학교 메디컬 스쿨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의사이자 일반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인도주의 활동가로 승승장구했다.

또한 2004년부터 3년간 세계보건기구(WHO)의 에이즈국장을 역임하면서 성공적인 에이즈 퇴치 운동을 이끌었고 폐결핵 전문가로서 2007년까지 약 3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결핵, 말라리아 등의 질병에서 치유될 수 있도록 발로 뛰기도 했다.

이후 하버드 의대 교수와 국제보건 및 사회의학과 학과장으로 활동하던 김 총재는 2009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아이비리그 가운에 하나인 다트머스대 총장에 선출되면서 일약 화제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이렇듯 왕성하게 활동한 결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뽑은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과 ‘US 뉴스&월드 리포트’의 ‘미국 최고 지도자 2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수재형 인재로 늘 성실하게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하기로 정평이 난 김 총재는 젊은 시절 억압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종횡무진 활약할 정도로 의협심이 강했다고 전해진다.

10만 달러어치의 약을 훔쳐 페루의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고 하버드대 재학 시절부터 저소득층의 건강을 위해 비영리기관을 설립, 운영했던 에피소드들은 김 총재의 인간적 면모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세계은행 확장성 위해 노력

김 총재는 지난 2000년 조이스 밀렌, 알렉 어윈 등과 함께 <성장을 위한 죽음, 지구적 불평등과 가난한 사람의 건강>이란 저서를 출간했다.

이 저서를 통해 김 총재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와 기업 친화적 성장주도 정책들이 빈곤 국가들과 그 나라의 국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고 가속화시키고 있음을 강하게 설파했다.

이 저서에는 아프리카의 여러 빈곤 국가와 수많은 개도국, 중진국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성장보다 분배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따라서 이 저서를 보면 김 총재가 세계은행의 수장으로서 어떤 정책을 주도적으로 펼쳐왔는지 알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펼쳐갈지를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김 총재는 지난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등과 같은 긴급 재난에 대해 세계은행이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조치하는 등 세계은행의 전통적인 업무영역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김용 총재는 연임을 표명한 이메일 성명을 통해 자신이 이끈 세계은행의 지난 4년간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동시에 “이 중요한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밝히면서 연임의사를 확고히 했다.

이는 김 총재가 첫 임기에 대한 외부의 평가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더불어 차기 임기도 첫 임기동안 펼쳤던 정책들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세계은행 내부에서 ‘리더십 위기’를 내세우며 김 총재의 연임을 반대하는 등 마찰음은 잔존하고 있지만 그의 연임은 그래서 더욱 가시적이라는 평가다. 차기 임기에서 보여줄 그의 리더십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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