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법 사례’ 유행… 시범케이스 누가 되나
- 더 끈끈한 ‘짬짜미 행태’ 심화 우려스러워

‘김영란 법’ 적용 20여 일을 앞둔 추석 밑이 어수선하다. 일단 이 법의 적용 대상 기관들과 ‘업자(?) 회사’들에서 ‘김영란 법’ 해설 설명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고 이 자리에는 대민 업무가 많은 부서 실무자들과 ‘영업 맨’들이 자리를 꽉꽉 채워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경찰청에서도 5백 페이지 분량의 김영란법 수사 매뉴얼을 전국에 배포하고 수사 간부 6백 명에 대해 별도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28일 이후 발생할 각종 상황에 대해 만반의 대비를 취하는 모습이다. 특히 이 법의 적용 기관이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과 공직 유관단체에서 언론사, 학교까지 확대되어 그 대상이 약 4백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다 보니 일선 현장에서 수사업무 폭증에 대한 우려감이 큰 상황이다.

때문에 수사 매뉴얼의 제1사항으로 ‘신고는 증거가 첨부된 서면(전자문서 포함)으로만’ 조항이 눈에 띈다. 전화 신고는 아예 출동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결혼식, 장례식 등 관혼상제 장소에도 가급적 나서지 않는 것을 천명했다. 아울러 허위 신고인 경우 신고자를 무고죄로 처벌하기로 했다.

과잉수사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이라고 하나 업무 폭증에 대한 ‘자구책’이란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이번 ‘김영란법’ 시행으로 가장 주목을 받는 직업군은 언론사 기자(프리랜서 제외)들이다. 주목받는 만큼 기자들 스스로도 이 법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일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설명회’에 150여 명에 가까운 언론계 관계자들이 모여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밥값 안 내는 기자’나 ‘촌지’ 관행 등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다. 이날 주된 관심사는 언론사가 다양한 부대행사를 하면서 기업이나 관공서의 협찬을 받는 문제, 또 광고와 연계된 선심성 기사에 대한 판단 기준 문제였다고 한다. 즉, 객관적 자료에 의거한 정당한 계약관계로 집행된 것이라면 문제 없지만 자체 기준이 없는 모호한 영업활동들은 위법성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 교육되었다고 한다.


‘김영란법’ 설명회는 주로 경륜있는 변호사들이 강사를 맡아 이 법의 특징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사례로 풀어주는데 위법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직무 관련성 여부’, ‘대가성 여부’, ‘내부 기준 준수 여부’ 등이 핵심적으로 언급된다고 한다. 즉,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문제가 되었을 때 적어도 ‘관행’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절차와 기준에 따라 공개적으로 진행되었음을 행위자 스스로 밝힐 수 있는 ‘방어 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어쨌든 법이 시행되면 범법자가 나오기 마련인데 관련 업계에서는 ‘첫 케이스’로 학계 종사자를 주목한다는 이야기가 분분하다. 학계 종사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아마도 다른 업종군보다 ‘사제지정’이나 선후배 연고와 같은 인간적 영향력이 좀 더 작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전망이 나오는 것 같다.

특히 밥은 3만 원, 선물은 5만 원, 부조는 10만 원의 기준으로 묶이다 보니 현장에서의 다양한 사례에 대한 위법 여부 판단에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시중에는 권익위가 만든 매뉴얼을 Q&A나 퀴즈 형식으로 풀어서 김영란법 위법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대유행이다.     

다양한 사례들이다. 업무 관련성이 있는 업체로부터 7만원짜리 상품권을 선물받아 2만 원을 돌려주었다면 처벌 대상이 될까? 안 될까? 된다. 기준을 초과하는 비용을 받았다면 전액이 수수 금지 금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7만 원 전체를 돌려줘야 처벌 대상에서 예외가 된다. 골프장 회원권을 가진 사람의 동반자에게 주어지는 ‘그린피 우대’는 선물에 해당할까? 아닐까? 선물에 해당하므로 정가의 금액을 내야 한다. 내지 않으면 처벌 대상이다.

공공기관이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신년 기자간담회를 개최할 경우 교통비로 10만 원이 지급되었다면 위법일까 아닐까? 위법이 아니다. ‘공식행사’에서 통상적으로 제공되는 교통, 숙박, 음식은 김영란법의 3.5.10만원의 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 중요한 기준은 업무 연관성, 참석자 개방성, 행사 공개성 등을 갖춘 ‘공식 행사’인가 여부이다.

공무원이 이웃집 지인의 부탁으로 부동산 매수자를 소개해주고 사례비로 금품을 받은 경우 위법일까? 아닐까? 위법이 아니다. 업무 관련성이 없기 때문이다. 업무 관련성이 있는 업체 직원과 공무원이 각각 2만5천 원짜리 밥을 먹은 뒤 길 건너에 있는 커피점에서 각각 9천 원짜리 커피를 마셨다면 이는 괜찮은 걸까? 괜찮지 않다. 시간적 장소적 근접성이 있다면 1회로 간주되어 밥값이 3만 원을 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업무 관련성이 있는 공무원을 집에 초대해 저녁식사를 했다면 이는 위법일까? 아닐까? 그날 상차림에 들어간 음식 재료의 비용을 놓고 판단할 문제라 식재료 영수증이 첨부되어야 위법성을 판단할 수 있다. 개별의 구체적 사례로 들어가면 ‘김영란법’은 정말 아리송하기만 하다. 더구나 공기업, 공공기관 인근의 중대형 식당들은 울상이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전국 외식업체 운영자 560명을 대상으로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모바일과 전화조사를 실시한 결과, ‘김영란법’ 시행으로 8월 매출이 감소했다는 응답이 26.4%로 나타났다. 1인당 비용이 5만원 이상인 식당의 경우, 8월 매출이 감소했다는 의견이 45.5%에 달했고 업종으로 보면  전체 일식업의 47.6%가 ‘김영란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일식당의 타격이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육류 구이와 한정식은 각각 34.3%와 33.3%가 ‘김영란법’에 따른 매출 감소를 경험했다고 지적해 ‘김영란법’이 축산업, 인삼업 등 고가의 농축산물 뿐 아니라 요식업에도 직접적인 파장을 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더치 페이(각자 돈내기)’와 관련해, 외식업체의 20.9%가 ‘방문 고객들의 더치 페이가 증가했다’고 응답해 소비자 행동에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이렇듯 한쪽에서는 ‘김영란법’ 준수에 난리법석을 피우지만 ‘진경준 전 검사장 백억 수뢰 사건’이나 ‘김형준 부장검사의 스폰서 돈거래’ 등을 보면 ‘김영란법’만으로 우리 사회가 맑아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때문에 ‘김영란법’이 가져올 사회의 변화와 관련해 두 개의 전망이 있다. 밥 사주고 술 사주고 영업하던 관행이 근원부터 바뀜에 따라 출발선이 똑같아진 사회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다. 이미 기업체 임원들이 동창이나 선후배를 만나면 ‘나 이제 너 밥 못 사줘, 골프치기 힘들어’ 이런 말을 하소연처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대외적으로 보이는 환경이 공정하고 투명해지는 대신 더 끈끈한 ‘짬짜미 행태’가 은밀하게 심화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지금보다 더 기상천외한 변칙들이 나올 것이란 우려감이다.

28일 ‘김영란법’의 뚜껑이 열리고도 한참이 지나야 우리는 이 법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으로 공직사회가 납작 엎드려 있는 2016년 추석에도 아이러니하게 택배 오토바이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롯데, 현대, 신세계백화점 자체 조사에 따르면 세 곳 모두 작년보다 추석 선물세트 매출이 증가했다고 한다. 청탁과 선의의 선물에 대한 구분이 무엇인지, 일을 추진함에 있어 관행과 원칙에 대한 나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 마지막 선물들이 부지런히 배송되는 추석 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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