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무거운 책임감 동시에 느낀다”

박준영 변호사(42)가 휴대전화를 들어 자신의 스토리펀딩 내용 등을 보여주고 있다.

“유명해지고 싶었다” 솔직히 털어놓기도

사법피해자 돕는 ‘공익 변호 단체’ 구상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레슬링에 뒤집기 기술이 있다면 판결에도 뒤집기 기술이 있다. 이미 법원의 판단이 끝난 사건을 뒤집는 ‘재심(再審)’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반 재판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힘든 기술이다. 피해자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인 탓에 돈도 벌기 힘들다. 그런데 이 재심을 전문으로 하는 국내 유일무이한 변호사가 있다. 바로 박준영 변호사(42)다. 그는 재심사건만 맡다가 파산 위기를 맞았다. 그런 그의 주머니를 채워준 건 일반 시민이었다. 파산 위기에서 ‘스토리펀딩’을 했고, 3일 만에 1억이 모이더니 9일 현재 3억 6000여만 원이 모였다.

전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무척 바빠 보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전화도 많이 오고, 만날 사람도 많고, 일도 많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원활하지 못한 인터뷰에 미안함을 표했다.

그는 시민들이 보내준 십시일반의 금액에 ‘무한 감사’를 표시했다. 스토리펀딩(글과 사연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내는 방식)에 달린 수 천개의 댓글에 충분히 답글을 해주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시민들의 후원과 격려로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며 “그와 동시에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도 동시에 느낀다”고 밝혔다.

박준영 변호사는 소위 ‘흙수저’ 출신이다. 이렇다 할 출신이나 배경이 없다. 최근 법조계 비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 진경준 전 검사장 등에 비하면 초라하다. 학벌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지방대를 중퇴한 고졸 출신이다. 사법연수원 성적도 밑바닥이다.

그런 그에게 사건 수임을 맡기는 사람은 없었다. 무료 변론, 무료 법률상담 자리라도 맡겠다고 자처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결국 국선변호사로 전향한 그에게 ‘재심 인생’을 시작하도록 한 건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2007)’의 피의자 아이가 쓴 한 통의 편지였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던 아이에게서 진심을 느낀 박준영 변호사는 사건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2007년 5월 경기도 모 고등학교에서 10대 소녀의 사체가 발견됐는데 수사당국은 20대 노숙인 2명과 10대 가출청소년 5명을 검거해 자백을 받아내고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몇 년간 사건에 몰두하던 박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와 강압 수사에 겁을 먹은 아이들이 거짓 자백을 했음을 밝혀냈다. 결국 2010년 7월 가출청소년 전원은 무죄를 선고받았고, 형을 살던 노숙인도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됐다.

변호사 사무실 벽 한 켠에 붙어있는 재소자들의 편지

무심코 받은 전화 한 통

이 사건 이후 박 변호사의 전화기는 ‘불’이 났다. 여기저기 사건 수임 연락이 왔고, 직원들도 고용해 자리 잡아 가던 중이었다. 그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간접조작 사건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장경욱 변호사(48)였다. 일각에서는 그를 ‘종북 변호사’로 일컫는 인물이기도 하다. 장 변호사가 ‘탈북자 허위자백 사건’을 도와달라고 해 당시에는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덥석 승낙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탈북자의 실상을 알게 됐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낀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는 “그 전화를 받고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한 것 같다. 그 때 전화를 안 받았으면 그냥 좋은 일 가끔 하는 평범한 변호사로 살았을 것 같다. 장 변호사도 이번 일(펀딩)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고 전했다.

최근 박 변호사는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파산 위기를 겪으면서도 재심사건을 쭉 맡을 수 있었던 비법(?)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솔직히 공익 추구, 연민, 동정과 같은 사회적 정의감만으론 현실을 버틸 수 없다. 개인적 욕망도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유명해지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 목표를 이룬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지만 좋은 일 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씀해주셔서 목표를 이룬 것 같다. 사회적 정의감과 더불어 유명해지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은 사건 해결에 있어서 큰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공익 변호사 단체 설립 계획

그는 현재 3건의 재심 재판을 다루고 있다. 재심이 확정된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2000)’과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1999)’, 재심 확정이 아직 안 된 ‘김신혜 친부살인 사건(2000)’이다.

지난 7일 삼례 나라슈퍼 재심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박 변호사는 “다음 달 (무죄) 선고가 바로 나올 것 같다”며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그가 맡고 있는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영화로도 나올 예정이라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영화 ‘재심’은 지난 7월 첫 촬영을 시작해 내년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앞으로의 계획도 들려줬다. 그는 “한동안은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중에는 뜻있는 변호사들을 모아서 ‘공익 변호사 그룹’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영리 목적의 수임은 하지 않고 후원금 받아 사법피해자들을 돕는 공익 변호 활동을 체계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후원을 매달 CMS(자동이체)로 하겠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돈과 사람이 모이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겠다”며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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