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병신년) 새해맞이가 엊그제였나 싶더니 벌써 올 4/4분기에 들어서고 있다. 긴 추석연휴를 끝내고 일주일 지나 9월 막바지에 온 국민 감회가 어느 해보다 새롭고 날카롭다. 그동안 여론을 뜨겁게 달군 일컬어 ‘김영란법’이 위용을 뽐내며 시퍼런 칼을 빼드는 시행일이 이달 28일 아닌가. 급기야 사회 전반이 얼어붙는 날을 맞이하는 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개한 적용대상 기관은 4만919개이며 이 가운데 학교, 언론사 비율이 96.8%를 차지한다. 나머지 3.2%가 공직 행정기관 종사자와 법령에 따라 공공기관의 권한을 위임, 위탁받은 단체나 개인들이다. 이처럼 광범위한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들의 위반사례를 신고하면 건당 2억 원 한도의 포상금이 보장된다. 가히 파파라치 업계의 ‘로또’로 자리 잡을 만하다.

이러한 파라치 횡재를 노린 ‘란파라치’ 준비생들에게 김영란법 특강을 하는 학원이 서울시내 2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몰래카메라 찍는 법, 녹음 기법, 등을 강의하고 수강생들에게 한두 차례 강의와 묶어 몰카를 비싸게 팔아 돈벌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제까지 식당이나 슈퍼마켓 등의 위반 사례를 쫓는 식(食)파라치, 탈세를 추적하는 세(稅)파라치 등으로 활동하던 파라치족들이 일확천금을 기대해서 대거 ‘란파라치’로의 전업 준비를 했다고 한다.

파파라치 학원들은 “김영란법은 적용대상이 400만 명에 달하고 한건 신고하면 최대 30억 원 보상금과 2억 원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신고된 부정한 돈이 국고로 환수되지 않으면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지적은 당연히 쏙 빼놓는다. ‘란파라치’ 수강생들은 복잡한 김영란법만 알면 ‘대박’날 수 있다는 무지개 희망에 젖어있다.
그러면 앞으로 펼쳐질 우리 사회의 그림이 충분히 유추된다. 수십개 학원이 배출한 ‘란파라치’에 머리 싸매 김영란법을 외워 익힌 독학파 ‘란파라치’들이 첨단장비를 갖추어 400만 국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위반 여부에 대한 다툼 또한 부지기수로 일어날 것이다. 정부,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넓어 보이기 때문이다.

권익위원회가 세분화한 14가지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 사례가 나올 경우 격한 유,무죄 다툼이 필연일 터다. 그렇다고 나라사정이 ‘김영란법’의 취지를 나무랄 형편은 못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부패도가 높은 나라로 꼽힌다. 2013년 국제투명성기구 부패인식지수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7위로 거의 밑바닥 수준이다.

그러나 법을 만드는 가치가 인명의 보호와 사회, 민생 안정에 있는 만큼 법으로 인한 폐해는 한 점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이 법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하는 것은 모든 법이 인권을 지키고 사회 공정성을 확장시키는 방향에서 운영되는 전제에서다. 따라서 법 시행 과정에 나타나는 문제점은 보완책이 늦어져서는 안 된다.

부패를 차단키 위한 부패방지법이 파파라치들의 ‘로또’로 떠오른 상황이 너무 구차스럽다. 법이 사회상규와 동떨어지거나 민간 자율을 제약해서는 악법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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