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가격이 문제, 하지만 손해 볼 수는 없어’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부정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이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됐다. 예상대로 서울시내 호텔과 고급식당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서둘러 메뉴가격 조정에 나선 호텔과 식당은 오히려 손님맞이에 분주한 반면 분위기를 보겠다며 눈치를 살피던 곳들은 하루하루 마음 졸이고 있다.

가격 낮춘 런치메뉴 선보이자 예약률 급증
한우집 등은 업종변경·폐업 심각히 고려 중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9월 28일 오후 1시, 남산에 위치한 A호텔 주차장은 여전히 차들로 북적였다. A호텔에는 전망 좋은 레스토랑과 뷔페 등이 있어 평소 기업인들이나 정치인들이 만남의 장소로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첫날이지만 호텔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었다. 관광객들과 일반 손님이 많기도 하지만 호텔 레스토랑과 뷔페의 메뉴가 워낙 고가인 탓에 오던 사람들만 오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시내에 위치한 B호텔은 레스토랑 예약률이 약 30% 정도 줄었다. 시청 인근에 위치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비즈니스차 들러 식사와 담소를 나누던 곳이다. 

눈치 보는 호텔들
가격 낮춘 메뉴 ‘인기’ 

호텔업계 관계자들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호텔 매출이 급감하는 게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레스토랑이나 뷔페 등 식음업장을 찾는 고객이 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처하는 분위기는 달랐다. 

발 빠르게 김영란법에 맞춰 메뉴 가격을 3만 원 이하로 조정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더 지켜보겠다는 곳도 많았다. 콧대 높은 호텔들은 쉽게 가격대를 낮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생존경쟁을 위해서는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포구에 위치한 C호텔은 김영란법 시행에 맞춰 뷔페 런치 가격을 29,700원으로 조정했다. 다양한 뷔페 메뉴를 맛볼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건강한 영양식과 함께 스파클링 와인 한 잔이 무료로 제공된다. 

3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선보인 C호텔 점심 뷔페는 김영란법 시행과 함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C호텔 관계자에 따르면 “28일 점심 예약 손님이 100명, 29일은 10시 30분 기준 140명이 넘었다”며 “맛있고 다양한 메뉴들을 김영란법에 맞춰 가격을 낮춰 선보인 게 인기요인이 됐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한 호텔들이 고객들의 발길을 모으자 관망하던 호텔들도 새로운 가격대의 신 메뉴 출시를 적극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D호텔은 아직 김영란법에 맞춘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지 않고 있다. D호텔 관계자는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게 아닌 데다 우리 호텔은 가족모임이나 사교모임이 많아서 준비하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김영란법과 관련한 메뉴 출시를 검토 중이다”고 전했다.    

고급식당 예약 ‘뚝’
한우집 ‘문 닫을 판’

김영란법에 의한 피해 강도는 일반 호텔보다 고급식당들이 더 크다. 일반 식당보다는 비싸지만 호텔보다는 저렴한 가격의 메뉴가 많아 접대장소로 주로 이용돼 왔기 때문이다. 실제 김영란법이 시행된 28일 이후 일부 고급식당 중에는 폐업이나 업종 변경을 고려하는 곳도 많다.

마포구에 위치한 숯불갈비전문점 E식당은 접대와 회식장소로 유명하다. 실내가 모두 룸으로 만들어져 있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기 좋아 인기가 많다. 평소에는 며칠 전부터 미리 예약을 잡아야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지만 28일 이후에는 예약손님이 절반 이하로 뚝 끊겼다. 

이곳 메뉴가격은 세트의 경우 3만 원~4만 원대며 코스를 이용할 경우 5만 원 후반대다. 아직까지 김영란법을 적용한 메뉴를 내 놓지 않은 탓에 접대 손님은 거의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고급식당 중 한우를 주 재료로 운영하는 식당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소고기 1인분 가격이 대부분 3만 원이 넘는 상황인데 손님을 잡기 위해 가격을 내리자니 원가 이하가 돼 손해를 볼 수밖에 없어 영업포기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프랜차이즈업체들도 고민은 깊다. 서울시내에 10여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는 해초바다요리 전문점 해우리는 1인 기준 2만9000원인 저녁 특정식 ‘란이한상’을 판매하고 있다. 이 특정식은 하루 5팀에게 한정 판매한다. 고객의 발길을 잡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법원행정처 ‘청탁금지법 Q&A’ 들여다보기

변호사와 더치페이? 연인 선물은 OK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법원행정처가 법관 및 법원공무원을 위해 ‘청탁금지법 Q&A’ 책자를 제작 배포해 눈길을 끈다. 법원에는 김영란법 적용대상이 되는 법관 2968명과 법원공무원 1만 2995명이 근무하고 있다.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에서 제작한 ‘청탁금지법 Q&A’는 총 74쪽으로 구성됐다. ‘청탁금지법 Q&A’의 목적 및 유의사항, 적용범위 관련 Q&A, 부정청탁 관련 Q&A, 금품수수 관련 Q&A 등 세부적인 사례 등이 담겼다.

책에서는 ‘미혼의 법관이 변호사와 사귀면서 고가의 선물을 받는 것은 허용되는지?’에 대해 “미혼의 법관이 연애 과정에서 고가의 선물이나 1년에 300만 원이 넘는 선물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연애 과정에서는 상호간에 다소 고가의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 ‘법관이나 법원공무원과 변호사 또는 법무사 사이에는 항상 직무관련성이 인정되는가?’란 질문에는 “현재 구체적 사건이 계속되고 있거나 계속될 것이 명백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직무관련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직무관련자인 변호사 등으로부터 금품 등을 수수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직무관련성이 인정된다는 견해가 가능하다”며 “가급적 변호사 등과의 사교, 의례적인 만남에서는 식사비 등을 각자 부담하고 어려운 경우에는 시행령에서 정한 음식물의 가액 한도액인 3만 원을 준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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