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김재수 농림부장관 해임건의안으로 파행을 겪었다. ‘냉동국회’, ‘반쪽 국감’이라는 조롱속에서도 여야의 칼끝대치는 국민들로 하여금 분노를 넘어 냉소적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국회의원이 입법기관으로서 법 제정 기능과 함께 중요한 행정부 견제 기능을 상실하고 정쟁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국회 무용론도 흘러나왔다. 무엇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간 대선 열기가 조기 과열되면서 잠룡들조차도 ‘국감파행’이라는 초유의 사태보다는 대권게임에만 몰두해 비판도 쏟아졌다. 정국 혼란속에서도 ‘존재감 부각’에 나선 잠룡군들의 실태를 취재했다.

- 반기문…‘대망론 꺼질라’-문재인·안철수·손학규 ‘존재감’ 과시
- 박원순·정운찬, ‘대권시동’ 김부겸·안희정·남경필 ‘연합정치’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정치는 타협과 협상의 산물이 아니라 갈등과 대치의 산물이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정치권의 금언을 현 대한민국 정치 상황에 빗대 말한 어느 당직자의 일침이다. 2016년 9월 국정감사를 맞이한 20대 여야 국회의원들이 갈팡질팡이다. 여소야대 속 정세균 국회의장과 야3당이 힘을 합쳐 김재수 농림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키자 청와대가 ‘수용불가’로 맞서면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당장 새누리당은 정세균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국감장을 박차고 나갔고 형사고발까지 했다. 이정현 당 대표는 “정세균 의장이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겠다”고 대표실 문을 잠그고 단식에 돌입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나홀로 국감’을 선포하고 반쪽 국감을 진행시켰다. 여야 간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칼끝대치는 피감기관인 공무원들만 미소짓게 만들었다.

‘국감 파행’ 누가 화장실에서 웃고 있나

역대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에 대해 불성실하게 제출하거나 아예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가 태반인 피감기관들이 반쪽 국감으로 전락하자 반색하는 분위기다. 상시국감 체제도 아닌 상황에서 20일만 버티면 국감은 내년에 다시 개최된다는 점에서 시간끌기 전략도 횡행했다. 특히 내년은 대선을 앞두고 치러지는 국감으로 ‘부실 국감’이 될 공산이 높아 사실상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받는 국감은 이번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에 대한 견제기능과 국민혈세에 대한 감시 기능이 국회 본연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을 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역시 국감이 ‘우병우 국감’, ‘미르-k 스포츠 재단 국감’으로 20일 내내 언론을 장식하느니 국감 파행을 내심 방치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9월28일에는 이정현 당 대표가 ‘나는 단식을 계속 할 테니 여당 국회의원들은 국감에 참석하라’고 밝혔지만 주류 강성파들이 반대하고 오히려 ‘릴레이 단식 농성’에 동참하겠다고 밝힌 배경에도 청와대 의중이 실린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20대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국회 무용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중심을 잡아야 할 여야 잠룡군마저 국내 현안보다는 대권 게임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여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경우 국내에 없고 국회의원도 아니라는 점에서 국감 파행과는 무관한 처지다. 그러나 국내 현안에 10년 동안 떨어져 침묵하면서 해외에서 ‘대망론’만 키우는 반 총장에 대한 회의론도 존재한다.

특히 ‘기름장어’로 불리는 반 총장이 올해 5월 국내에 귀국해 ‘반기문 대망론’에 불을 지피더니 추석에는 자신을 방문한 정세균 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에게 ‘내년 1월 귀국하겠다’고 밝혀 추석상을 독차지했다. 또한 귀국 후 국민들을 향해 ‘귀국 보고를 하고 싶다’는 입장도 피력해 ‘귀국 보고회=대선 출정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권에서는 반 총장의 예상치 않은 조기 귀국발언에 대해 절묘한 ‘타이밍 정치’를 보여줬다는 평도 나왔다.

국내 여야 대선 후보 중 선호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현안에 대해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 전 대표는 여야 대치정국이 심화되자 “국회 밖에서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새누리당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하는 양상이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던 때와 같다”며 “그때도 한나라당이 ‘노무현이, 노무현이’ 그랬는데 지금도 ‘정세균이, 정세균이’ 라고 부르는 등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文, ‘집토끼’, 安, ‘산토끼’ 잡기 대조

또한 김 농림부장관 해임건의안과 관련해서도 “과거 새누리당도 참여정부 시절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켜서 기어코 사퇴하게 만들었던 전례가 있다”며 “집권 여당 대표가 대한민국을 한순간에 부끄러운 나라로 만들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실상 여야 간 정쟁을 접고 국정감사에 나서야 한다고 마무리하면서도 ‘노무현’, ‘참여정부’를 운운하며 친노 세력의 결집을 꾀하는 계기로 삼고 있는 모양새다.

나아가 문 전 대표는 9월26일에는 백남기 농민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특검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농심(農心)을 달랬다. 아울러 박 대통령의 쌀값 대선 공약을 언급하면서 “당초 17만 원에서 2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13만 원선, 일부 지역은 11만 원까지 떨어졌다”며 “농촌을 살리기위한 예결위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뿐만 아니라 문 전 대표는 같은 달 22일 전남 광주를 방문, 광주 민주화의 산증인이자 광주 시민사회 대표적 원로인사인 고 조철현 비오 신부를 조문했고, 23일에는 지진피해가 난 창원 명서중학교를 방문했으며, 28일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년 추모식에 참석하는 등 잠룡으로서의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우병우 민정수석 사퇴’나 ‘미르-K재단 의혹’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입장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현안에 대해 문 전 대표에 비해선 진일보한 입장이다. 특히 우병우 파문과 관련해 직접적인 사퇴 요구보다는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안 전 대표는 8월 17일 ‘공정성장’ 강연회에서 “국민이 가장 분노하는 건 검찰의 여러 문제 아니겠냐”며 “홍만표·진경준·우병우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이게 나라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그는 “그 분노를 차곡차곡 국민들이 쌓아가고 있고 반드시 표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국감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 의혹’과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김재수 농림부장관 해임건의안과 새누리당의 정세균 의장 사퇴 요구에 대해선 “좀 무리한 요구가 아닐까”라면서 “정치는 대화와 타협 아니겠느냐. 정 의장도 새누리당도 접점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편 집권 여당의 ‘국감 보이콧’과 관련해선 “어려운 국가적 난제를 앞에 두고 집권당이 취할 태도냐”며 “하루빨리 본연의 임무로 돌아오라”고 페이스북에 입장을 표명했다. 이정현 대표의 단식 농성에 대해선 “여당 대표가 단식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면서 “그 열정을 여야 협상에 쏟았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차기 대권에 더 신경쓰고 있는 안 전 대표의 행보 역시 여느 잠룡군과 다르지 않았다. 안 전 대표는 9월28일 ‘안철수-반기문 연대설’에 대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양당이 공포감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발끈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나는 승부사다. 한번도 현실과 타협하거나 마음이 약해서 물러선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강한 모습을 보였다. ‘반기문-안철수 연대설’이나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긋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오히려 안 전 대표는 최근 ‘교육부 폐지론’을 들고 나와 교육계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안 전 대표는 “교육의 혁명적 변화를 위해 과감하게 교육부를 해체해야 한다”며 “대신 중장기 교육정책을 수립할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업무를 지원할 교육지원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2기 출범식을 갖고 ‘중산층 복원’이라는 정책 목표를 설정하는 등 대선 이슈 선점에 나서고 있다.

군소잠룡, ‘정책’, ‘현안’, ‘연대’ 존재감

군소 후보들의 경우에는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도 반향을 별로 일으키지 못하거나 집권 여당 출신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엿보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무성 전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 지사의 경우 원외인사이거나 광역 단체장, 4.13총선 패배에 따른 책임 때문에 잠룡군에는 포함되지만 집권 여당 관련 현안에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는 모습이다.

반면 비주류 유승민 의원은 현 정권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유 의원은 우병우 파문에 대해 “스스로 물러나든지 대통령이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감 파행사태에도 “정세균 의장도 잘못했지만 국감은 참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최순실 개입 의혹이 있는 ‘미르-K재단 설립 및 모금 의혹’관련해서는 “증거가 나오면 성역없이 수사해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광역단체장인 남 지사의 경우 ‘연정’, ‘모병제’, ‘연합정치’ 등 현안보다는 대선 이슈 선점에 주력하고 있다. 남 지사는 ‘50대 기수론’을 내세워 “야권 막강 주자는 안희정, 김부겸”이라고 치켜세우면서 ‘동반 상승효과’를 노리고 있다. 실제로 이들 3인방은 9월21일 공익재단인 ‘여시재’가 주최하는 국제포럼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여야를 막론하고 동북아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여시재는 ‘시대와 함께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사재를 털어 만든 학술·정책 연구단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회장, 안대희 전 대법관, 김현종 전 유엔대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기지개 켜는 손학규·정운찬’ 대권선회한 박시장

한편 안희정 충남지사는 현안에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정부·국회에 9가지 입법과제를 발표하는 등 정책 중심으로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김부겸 의원은 ‘법인세 인상 반대’, ‘백군기 농민 사망’ 등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면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야권에는 또 다른 군소 잠룡군인 손학규, 박원순, 정운찬 3인방이 있다. 2년 가까이 칩거생활을 한 손 전 고문의 경우에는 9월20일 전남 강진 토굴 생활을 정리하면서 “다산의 개혁정신으로 나라를 구하는 데 저를 던지고자 한다”며 정계복귀 선언과 함께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다음날에는 광주를 찾아 조비오 신부 조문을 통해 호남에 대한 애정을 보였고 24일에는 전주에서 지지자들과 막걸리 회동을 가지면서 대권 기지개를 켜고 있다. 손 전 고문은 금명간 전북 덕유산에서 지지자들과 대규모 산행을 통해 호남 세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3선 도전’보다는 대선 출마로 급선회하는 모양새다. 9월27일 관훈토론회에 참석한 박 시장은 “국민의 부름을 고민하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대권 출마선언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운찬 전 총리 역시 최근 강연과 기고문을 통해 차기 대권 주자로서 활발하게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특히 10월 캐나다와 미국 방문을 통해 국제적인 인맥을 쌓고 뉴욕 방문 시에는 반기문 총장과 회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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