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단식 농성’ 해제’ 승부수는 통했다!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거대 야당의 힘자랑이 도를 넘고 있는 모양새다. 김재수 장관 해임 건의안을 단독으로 처리했고, 정세균 의장은 국회의장으로서의 중립 의무를 어겼다. 이에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단식 카드’로 맞섰다. 이 대표에게 이번 단식은 ‘사생결단’이다. 퇴로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야권의 부당한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결단을 내렸다. 반면 이 같은 사태의 ‘단초’를 제공한 야권은 ‘반쪽 국감’ 태도를 이어갔다. 무엇보다 두 거대 정당 사이에서 중재인 역할을 해야 할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마저 여당 흔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민생과 국가를 위해 무조건 단식중단’을 선언하면서 ‘큰 정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 李 “국감 참여하라” 黨 “단식 동참” '큰정치' 보여준 李
- “이제 박 위원장이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게 돼…”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맨입 발언’과 ‘편파 진행’으로 물의를 빚은 정세균 의장은 명지대를 찾아 “국회의장이 되면 당적이 없도록 해 중립 의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게 아니다” 며 “정치인이 어떻게 정치색이 없을 수 있겠느냐”고 해명했다.

‘맨입’ 발언 국회의장이 한쪽 편 든 명백한 증거

이 같은 정 의장의 발언에 여권 관계자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 의장은 야당대표가 당 소속 의원들에게나 할 법한 말을 공개적으로 서슴없이 했다”며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국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국회의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심된다”고 날을 세웠다.

실제로 정 의장이 세월호특별조사위 기간 연장 및 어버이연합 청문회와 김 장관 해임건의안 철회를 맞바꾸려 한 의도가 있었음이 ‘맨입으로는 안 되지’라는 발언에서 확인됐다. 명백히 야당의 편을 든 증거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대목이다. 그럼에도 야권은 국회의장 감싸기에 여념이 없는 실정이다. 나아가 이 같은 야당의 불의에 맞서 단식 투쟁에 들어간 집권 여당 대표를 조롱하기에 이르렀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불안한 정국, 불타는 정국에 휘발유를 퍼넣었다”, “쇼가 아니기는 뭐가 아니냐, 의원직 사퇴·단식·삭발, 이 세 가지는 다 정치쇼로 본다”, “우린 어떻게 해서든지 풀어나가려고 물밑대화를 하고 있는데 이게 말이 되는 거냐”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을 ‘정치 쇼’라고 조롱했다. 두 거대 정당 사이에서 중재인 역할을 해야 할 국민의당이 오히려 여당 흔들기에 앞장선 모양새다.

게다가 9월 28일에는 “이정현 대표께서 자기는 단식을 계속하겠지만 국정감사에 매진해 달라는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며 이전 과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또 의원총회에서 “어제 정 원내대표와 우 원내대표가 직접 얼굴을 맞대기 싫어했지만, 제가 오가며 만나 의견 일치를 봤다”며 제3당으로서 두 거대 정당의 갈등 봉합에 앞장서고 있음을 강조했다. ‘여당 흔들기’와 동시에 ‘줄타기’를 하며 적전분열(敵前分裂)에 나서기도 했다.

당내 분열·정부 레임덕 일거양득 노린 술수

실제로 당 대표의 ‘단식 투쟁’을 바라보는 새누리당 내 역학관계는 복잡했다. 당내 주류인 친박은 이정현 대표의 단식을 적극 지지했다. 단지 강성 친박이냐 온건 친박이냐에 따라 약간의 온도차가 있었다.

강성 친박계는 단식에 동참할 것이고, 국감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온건 친박계는 입법기구의 의무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 이라며 국감은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비박계 역시 국감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친박인 이정현 대표가 ‘단식 투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 데는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새누리당 내 역학관계를 ‘정치 9단’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교묘히 활용했다. 사실 박 원내대표가 이정현 대표의 단식을 ‘정치쇼’로 규정하며 원색적 비난을 쏟아낸다한들 박 원내대표에겐 문제될 것이 없었다. 여론몰이를 통해 현 정부의 레임덕을 가속화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친박 일색의 당에 불만을 품고 있는 이혜훈·유승민·하태경 의원 등 비박계 인사들의 등을 긁어주며 당내 분열까지 야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현의 단식해제’ “민생과 국가를 위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은 언론의 주목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당 대표의 단식 투쟁’이라는 이슈로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정현 대표를 시기하고 있는 속내가 분명 있을 것이다”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내 주도권도 잡아야 하기에, 이 대표를 향한 세간의 관심이 탐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지 당적이 새누리당 이기에 ‘국감 복귀’ 정도로 발언 수위를 낮출 수밖에 없는 비박계 인사들에겐 박 원내대표의 농도 짙은 발언이 오히려 ‘소화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지원 원내대표의 ‘여당 분열’ 전략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정현 대표가 10월2일 “민생과 국가를 위해 무조건 단식 중단”을 선언하면서 개천절 연휴이후부터 국감 정상화를 선언했다. 이 대표의 단식농성 해제로 정국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 대표는 "국회의장의 중립의무 강화방안을 여야간 논의로 진행할 것"이라고 공격의 화살을 정세균 의장을 향했다.

반면 이 대표의 단식 중단과 새누리당의 국감 복귀에 대해 정세균 국회의장이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유감은 이 대표가 아닌 국민들을 향했다. 정 의장은 이날 오후 새누리당의 의원총회 직후 성명을 내고 “나라가 매우 어려운 시기에 국회가 걱정을 끼쳐드린 데 대해 국회의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의장은 또,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앞으로 모든 정당과 잘 협의하여 국민 여러분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이번 정기국회가 민생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퇴를 요구했던 새누리당과 이 대표에 대해서는 “국정감사 복귀결정을 환영하며 이정현 대표의 건강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고만 전했다.

이에 정치권에선 이 대표의 단식 농성 카드가 ‘신의 한 수 였다’는 평가와 ‘무리수였다’는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정현의 단식’이 당 대표로서 위상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신뢰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주요 언론에서 이 대표의 단식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가 많이 실렸었다”며 “우호적이지 않았던 여론을 의식해 국감은 정상화하되, 자신은 단식을 이어가면서 정 의장의 거취를 압박하겠다는 ‘투트랙 전략’이 제대로 들어맞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병법에 적에게 퇴로를 열어두고 싸우라는 말이 있다. 퇴로가 없는 적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퇴로가 없던 이정현의 절실함과 진정성이 판을 뒤집었다”며 놀라워했다. 새누리당의 평당원부터 시작해 당 대표까지 올라온 이 대표의 절심함과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TK 지역이 아닌 호남에서 당선됐다는 그의 자부심이 이 같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반면 박지원 원내대표의 계속된 ‘줄타기’는 철새 정치인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4·13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3당 체제 부활’을 이뤄냈다. 여야의 적대적 공존을 뛰어넘는 촉매제 역할을 해 달라는 국민들의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 지도부 사이에선 “이제 박 위원장이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야를 오가는 박 원내대표의 가벼운 발언이 국회의 대치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정부의 레임덕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다.

정치권은 이정현 대표의 ‘단식’ 중단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내놓았다. 야권에서는 정 의장이 사퇴할 가능성은 낮은 상황에서 이 대표가 단식을 중단한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정 의장 역시 이 대표보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송구하다’고 표현한 점도 그렇다.

이에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여야 3당 원내대표가 국감에 복귀하고 정 의장의 선 유감 표명이 있었다면 이 대표에게 필요한 ‘단식 중단’ 명분이 어느 정도 충족 되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는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에게 단식을 그만하라고 하고 박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들이 단식중단을 요청한 것은 그나마 이 대표가 단식농성을 중단하는데 하나의 명분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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