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6000만 원, 심장 1억이요”

총책 김 씨(강 실장)가 운영했던 인터넷 카페

‘헬리콥터·귀신’ 은어 즐겨…중국인으로 위장 편법 동원

피해 대부분 중증 환자…국내 이식 수술 3년 기다려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경찰은 지난 12일 중국 원정 장기 밀매 ‘총책’을 붙잡았다고 발표했다. 도피 생활 8년, 2011년 브로커 일당 조모(53)씨가 구속된 지 5년 만이다. 총책 김모(43)씨는 60억 상당의 불법 중국산 장기를 알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죽은 사람의 장기뿐 아니라 산 사람의 장기를 사용하는 ‘생체 이식’도 드러나 충격을 줬다. 피해자들은 국내에서 장기 이식을 받지 못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중국으로 간 중증 환자들이었다. [일요서울]은 중국 원정 장기밀매의 실체와 국내 장기 이식의 현실을 살펴봤다.

이번에 검거된 총책 김 씨는 공범 조 씨와 함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개설해 불법으로 장기를 알선했다. 이들은 카페명을 ‘○○장기이식센타’, ‘○○이식 환우회’ 등으로 만들어 장기 이식이 필요한 급한 환자를 지원하는 것처럼 위장했다.

정상적인 사람이 보면 곧바로 허점을 알아챌 수도 있지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장기 이식만이 최후 수단인 만성신부전증(신장), 간암 및 중증 간경화 환자, 중증심장병 환자들이었다. 이들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뒤져 이곳까지 찾아왔다. 국내에서는 정상적인 절차를 기다려서는 수술이 힘들기 때문에 생명이 위독한 중증 환자들은 달리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총책 김 씨의 눈에는 이들이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였다. 김 씨는 ‘강 실장’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면서 이들에게 접근했다. 전화와 이메일 등을 통해 장기 이식 비용 안내, 중국 입국 절차, 중국 장기 이식 병원을 친절히 소개했다. 김 씨는 카페를 통해 중국에서 1~2주 정도만 대기하면 장기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고, 신장 이식의 경우 4000~6000만 원, 간 6000만 원~1억 원, 심장 1억 원의 비용이 든다고 설명했다.

총책 김 씨(강 실장)가 운영했던 인터넷 카페

뒤로는 불법 장기 매매 알선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걸 잊지 않았다. 알선 시 챙기게 되는 커미션(수수료) 관리, 사무실 운영, 운전기사 및 통역원 급여 관리, 수술 희망자에 대한 중국 이식수술 병원 마련, 카페에 가입한 환자들과의 상담 등 환자를 중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준비를 빈틈없이 챙겼다.

이들을 위한 장기는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 중국 병원에서 조달한 사형수의 장기나 사고사 장기, 중국 현지 장기 공여자들의 장기가 한국 중증 환자들의 몸속에 채워졌다. 중국 당국은 문제가 불거지자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외국인의 수술 자격을 엄격히 제한했다. 하지만 일당들은 한국인을 중국인으로 둔갑시키는 방식의 편법으로 매매를 지속했다. 중국 내 이식센터에 수술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나 경제적 여건이 안 되는 중국인들을 미리 리스트에 올려놓고 한국 환자가 오면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장기 밀매를 일삼는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은어도 있다. 자기들만의 언어로 경찰 단속망을 피해보려는 심산이다. 최근에 와서 많이 쓰는 경향이 보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예를 들면 헬리콥터다. 헬리콥터는 장기를 뜻한다. 신장을 표시하는 알파벳 H와 간을 표시하는 L의 앞 글자를 따서 헬리콥터라고 쓴다. ‘헬리콥터 판다’는 것은 ‘장기를 판다’는 말이라고 한다.

생체 이식도 버젓이

‘귀신’이란 말도 헬리콥터와 비슷하게 쓰인다. 그 외에 ‘통나무’는 장기가 적출된 시체를 뜻하고, ‘청웅’이란 말도 비슷한 뜻을 가진 은어다. 인신매매 당해 죽은 시체라고 통한다. 조선족 은어라고 알려져 있다.

경찰에 따르면 한국 환자가 돈을 지불한 후 수술을 못 받은 적은 거의 없지만 수술 도중 3명이 사망했다. 수술 부작용에 따른 것이다. 부산지방경찰청 김용수 경정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기가 몸에 맞지 않거나 여러 가지 환우(질병) 상태와 안 맞아서 사망한 경우가 있었고, 수술 받고 귀국한 후에 사망한 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책 김 씨는 이런 내용은 숨긴 채 좋은 수술 사례가 있는 것으로 홍보해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게다가 죽은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는 ‘사체 이식’ 뿐 아니라 산 사람의 신장을 이식한 ‘생체 이식’도 6건이나 있었음이 밝혀졌다.

김 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5년 여간 총 87회에 걸쳐 60억 상당의 장기를 불법으로 알선했다. 이 돈의 90%가 알선료 명목으로 중국 측 브로커에게 전달됐고, 김 씨는 총 6억 원 상당의 수수료를 챙겼다.

김 씨는 경찰의 추적과 설득 끝에 지난 8월 자수했다. 경찰은 전국에 내려진 수배 때문에 중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머물렀던 김 씨가 압박감을 느낀 것으로 봤다. 김 경정은 “김 씨가 불법체류자로 중국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검거되면 강제송환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경찰이 계속 자수를 권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금도 이 같은 조직들이 더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김 경정은 “중국 원정 장기이식을 소개하는 브로커들을 최근에도 검거된 사례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에 장기이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반해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브로커들이 꽤 있다고 본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중국 원정 장기 이식 수술과 밀매 흐름도.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수요 대비 공급 '턱 없어'

국내에서는 장기 기증 받기가 어려워 건강이 위중한 중증 환자들이 중국 원정 이식 수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의 ‘국립 장기이식관리센터’가 전국을 통합해 관련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데 이식이 필요한 환자는 의료기관 등 지정기관에 등록한 뒤 의학적 응급도, 조직 적합성, 혈액형, 나이, 장기기증 경험 유무 등 선정기준에 따라 순서대로 이식 기회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를 받으려면 평균 3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장기 이식이 필요한 대기 환자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장기 기증자 수는 대기자의 10%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이하 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장기이식 대기자는 2만7444명으로 집계됐다. 2011년 말 2만1861명보다 25.5% (5583명) 늘었다. 하지만 장기 기증자는 대기자의 9.3%(2565명)에 그쳤다. 2011년부터 4년 동안 고작 68명 증가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기 이식에 걸리는 대기시간이 평균 3년 이상(1137일, 2014년 기준) 걸린다.

주요국과 비교해도 장기 기증률은 낮다. 센터가 한국과 주요 5개국(미국·독일·영국·이탈리아·스페인)의 인구 100만 명당 장기 기증자를 비교한 결과, 한국은 49.5명으로 스페인(46.8명)에 이어 두 번째로 낮았다. 미국은 한국의 6배가 넘는 318명으로 기증률이 가장 높았다.

이처럼 장기 기증을 꺼리는 것은 시신을 훼손할 수 없다는 유교적 관념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센터 관계자는 “장기 기증에 대한 국민적 인지도는 98% 수준으로 매우 높지만, 죽은 당사자의 가족이 장기 기증을 결정해야 할 때가 되면 시신 훼손을 꺼려 거부하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중국 원정 장기 이식 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국내에서 기다리다 못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장기 기증을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는 기증 희망자가 사망하면 현행법상 최종 기증 결정은 가족에게 달려있다. 사후 장기 기증은 기증 희망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전적으로 유가족의 뜻에 달렸다는 얘기다. 18세 이상 성인이면 장기 기증 여부를 본인 스스로 결정하는 미국 등의 사례와 다르다. 사후 장기 기증을 가로막는 문화적 요인의 극복과 함께 환자와 기증자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어주는 제도적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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