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義(클린 사회)를 위해 외식업계는 희생하란 말인가”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 첫날 저녁 풍경은 낯설고 또 새로웠다.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국회와 금융가가 몰려 있는 여의도 식당가와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강남이다. 음식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3만 원 이하 메뉴를 출시하고, 유흥업계도 단골손님들을 대상으로 주대 인하를 했지만 별무 효과였다. 여의도에서 유명 복어 전문점을 운영하는 A씨는 현 상황에 대해 “한마디로 처참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본 지 기자는 김영란법 시행 첫날 여의도와 강남 일대 음식점·유흥주점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 고급 식당들 “한마디로 처참하다…” 예약 급감에 가격 인하 고육지책 
- 유흥업계 “잠깐이면 된다. 어떤 식이든 꼼수 생겨날 것”

김영란법이 시행된 첫날인 지난 9월28일 오후 12시. 여의도 식당가엔 정적이 감돌았다. 평상 시라면 예약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했을 여의도의 복어 전문점 관계자 A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A씨는 “김영란법 이전에도 불경기였지만 이 정도로 손님이 없는 건 30년 만에 처음”이라며 “오늘은 물론이고 10월 한 달 예약 손님이 한 테이블도 없다”고 막막해 했다. 그는 또 “김영란 법에 맞춰 나름대로 3만 원 이하 메뉴를 출시하고 대책 마련을 했으나 다 헛수고...”라며 혀를 찼다. 김영란법의 여파가 3만 원이라는 가액 기준과는 상관없이 식당가를 찬 바람으로 휩쓸어버리는 듯한 모습이다.

또 다른 음식점 관계자 B씨 역시 “이 일대에 ‘란파라치’가 쫙 깔렸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누가 여기 오겠습니까”라며 “가격 내리고 메뉴판 수정하고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고 울분을 토했다.

실제로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업계에 종사 중인 직장인 C 씨는 “3만 원이든 뭐든 무조건 피하고 봐야 한다. 의심 가는 행동 자체를 하지 말라는 회사 내부 지침도 내려온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시범케이스만큼은 절대 돼선 안 된다”며 “김영란법 내용에 모호한 부분이 있는 걸로 안다.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것 아닌가. 판례가 쌓이기 전까진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을 예정이다. 꼭 만나야 한다면 1만 원 이내의 식당만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외식업중앙회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외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여파로 국내 외식업 연간 매출이 4조 1500억 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업종별로는 1인당 식사비가 대부분 3만 원을 넘는 한정식집이 61%, 육류구이전문점과 일식집이 각각 55%, 45%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반면 순댓국집, 설렁탕집, 갈비탕집 등 1만 원 이하의 메뉴에 주력하는 식당가는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의도 인근 설렁탕집 관계자는 “우리 집 음식 메뉴는 대부분 1만 원대로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분위기가 뒤숭숭했다"면서도 “막상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나니 평소 못 보던 손님들도 많이 찾아오고 점심때 이 정도면 매출이 20% 이상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여의도에서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Y씨 역시 “김영란법 시행 초기라 아직까지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강남일대 유흥업계 역시 음식점 못지않은 타격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날 오후 8시경 평소라면 차량이 가득해야 할 유흥업소 주차장은 썰렁했다.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발렛 파킹 일을 하고 있는 D씨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 자리에 앉지를 못했다. 밀려드는 손님들 차를 주차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오늘은 정말 한가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그냥 발렛 부스 안에 들어가서 휴대폰 게임이나 해야겠다”고 말했다.

해당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E씨 역시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건 내가 장사하고 10년 만에 처음 보는 일”이라며 “보통 화류계는 명절 즈음해서 손님이 끊긴다. 다들 가정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명절 기간의 1/5 도 안 된다”고 흥분했다. 그는 또 “우리 가게만 이러진 않을 것이다. 주변에 다 연락해봤는데 더하면 더했지 덜한 가게는 없다”고 말했다.

강남에서 또 다른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F씨도 “출근한  직원들이 손님이 없자 다 퇴근했다”며 “업주들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는가 하면 F 씨는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해 기자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는 “잠깐이면 된다. 지금 전부 시범케이스에 걸릴까 몸 사리는 것 아닌가”라며 “유흥 없는 사업과 로비가 어디 있나. 곧 어떤 식으로든 다시 가게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강남 유흥가에선 김영란법에 맞서(?) 꼼수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F씨는 “여기 오는 손님들 중 뚜벅이(처음 오는 손님)는 없다. 다 소개로 오거나 단골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흥비 결제는 모두 싸인(외상)으로 받고 있다”며 “더욱이 카드로 유흥비를 결제하는 사람은 없다. 4명이 오면 보통 400만 원 정도 유흥비가 책정되는데 4명의 손님이 각자 나에게 100만 원씩 다음날 송금해 주면 된다. 그리고 접대를 하는 한 명이 나머지 세 사람에게 현찰이든 뭐든 안 걸리게 100만 원씩 돌려주면 되니까 나는 문제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 2000년 중반, 접대비 축소(50만 원 이하)에 따라 유흥업계에 큰 피해가 초래된 적이 있었다. 접대비 축소 초반 폐업한 유흥업소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영업행위가 성행하게 되었고, 결국 시장이 양극화되는 현상을 초래하게 됐다. 외식업계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정치권의 관계자 A씨는 “정부의 새로운 법령에 대하여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를 통한 나비효과에 대해서도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 한다”며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법”이라며 씁쓸해 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한 관계자 역시 “재난재해로 농가가 피해를 입으면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지만 국가의 정책으로 음식점주들이 힘들어하는데 아무런 지원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 일이다"면서 “시행 초기라 앞으로 몇 달간은 법이 어떻게 자리 잡을지 지켜봐야겠지만 그때도 외식업계의 피해가 크다면 법 개정 등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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