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13년 사장 현대카드 지분 無…오너 아닌 오너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남데렐라와 신데렐라.’ 평범한 남자와 여자가 소설 ‘신데렐라’처럼 하루아침에 신분이 급상승되는 것을 빗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과의 결혼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사위는 ‘백년지객’. 처가에서 사위는 손님처럼 어려운 상대라는 뜻이다. 그러나 재벌가(家)에서 사위가 손님이라는 말은 무색한 경우도 있다. 사위 신분으로 경영 일선에 서 승승장구해 재벌의 주인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 반대로 재벌가와의 어쩔 수 없는 ‘관계’ 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사위도 적지 않다. 며느리는 ‘종신 식구’라는 말이 있듯 사위와는 다소 다른 대접을 받는다. 제집 식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며느리가 재벌가에 입성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데렐라’가 되어 소설처럼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일요서울이 국내 재벌가의 ‘남데렐라’와 ‘신데렐라’들의 명암을 들여다보았다.

 

‘금융권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요즘은 때로 은퇴 후의 생활을 설계하면서 너무 신남…은퇴하면 현카(현대카드)가 카드 한도 줄이려나?” 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 부회장으로 승진, 나름 재계에서 경영 성과를 확실히 인정받아 그 어렵다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가신’ 그룹에 포함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그가 왜 ‘은퇴’를 운운했을까?

마법같은 ‘남데렐라’는 더 이상 없다?

1985년 정몽구 회장의 둘째 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과 결혼해 현대가의 사위가 된 정태영 부회장이 당시 거의 일반인에 가까웠음에도 현대가의 사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소박함을 중시하는 현대가의 가풍 때문이었다. 1987년 현대종합상사 기획실에 입사한 후 승승장구하며 그룹 차원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부회장까지 승진했다. 카드업계에서는 유일한 오너가(家)의 최고 경영자(CEO)이기도 한 그는 2003년 현대카드 캐피탈 사장으로 취임해 13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성장시킨 현대카드 지분은 전혀 없다. 금융권에서는 이를 두고 정 부회장이 정몽구 회장의 사위라는 태생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2000년대 중반 카드와 광고, 서비스, 업무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디자인 기법을 도입했다. 또한 슈퍼콘서트를 기획하는 등의 창의적 발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을 살려놓았다. 이로 인해 정 부회장은 카드업계는 물론이고 금융권에 신선한 충격을 준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임우재 삼성전기 상임고문

‘남데렐라’의 대표적 인물은 임우재 삼성전기 상임고문

평사원 임우재 씨와 삼성재벌가(家) 장녀 이부진 씨의 아름다운 만남과 결혼은 당시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운명적 만남은 1995년 이건희 회장의 한남동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임우재 씨는 ‘한남동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자택을 자주 드나들었다. 첫 대면에서부터 서로 남다른 감정을 갖게 된 둘은 그 후 자주 만나면서 ‘신분의 벽’을 넘는 사랑을 키웠다. 이들이 사내 봉사모임에서 만났다는 설도 있으나, 어찌됐건 이들은 4년여의 열애 끝에 ‘재벌혼맥’을 넘으며 마침내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 동화 같은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특히 모든 남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들에게 '평강공주와 온달왕자'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대학 졸업을 할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큰 마찰이 없었던 이부진 씨는 부모의 반대에 직면했다. 특히 어머니 홍라희 여사의 반대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커피숍이 문을 닫을 때까지 혼자 고민하는 이 회장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자식 이길 부모 없다’는 말이 적용되기는 이 회장 내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장녀의 결혼을 승낙했다. 이부진 씨와 임우재 씨는 또 하나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임우재 씨 부모의 반대는 이부진 씨 부모의 그것보다 더 심했다. ‘단식투쟁(?)’까지 불사하는 바람에 이부진 씨는 임우재 씨 부모를 간신히 설득했고, 마침내 둘은 1999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 후 1년간은 별 문제가 없었다. 이듬해인 2000년 이 회장의 둘째 딸 서현 씨가 김재열 씨와 결혼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임우재 씨와 김재열 씨가 비교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방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 집안의 장남인 임우재 씨는 단국대 출신의 평범한 사원이었던 반면 김재열 씨는 전 동아일보 회장의 아들로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MBA를 전공한 전형적인 경영자 스타일이었다. 특히 김재열 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중학교 동창이었다.

이때부터 임우재 씨는 심적으로 위축됐다. 실제로 그는 훗날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과 자신의 역할, 손아랫동서와의 비교 등이 부담됐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김재열 씨와 달리 체계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지 않은 데다 소심한 성격인 그는 이후 삼성가 행사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반면 김재열 씨는 이 회장 옆에 늘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영어가 능통한 데다 글로벌 경영감각마저 탁월하자 이 회장은 김재열 씨를 크게 신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임우재의 ‘가족 소외설’이 나돌기도 했다.

승진에서도 둘은 곧잘 비교됐다. 김재열 씨는 결혼 후 제일기획 상무보로 시작해 2010년 제일모직 부사장, 2011년 제일모직 경영기획 사장에 임명되는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반면 임우재 씨는 승진에서 두 번이나 누락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문에 아내 이부진 씨가 가족들에게 “임우재 씨를 무시하지 말라”며 반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부진 씨는 남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임우재 씨를 미국 MIT로 유학 보내 석사학위를 받게 하기도 했다. 임우재 씨는 2005년 삼성전기 기획담당 상무를 역임하고 2009년 전무로 승진한 뒤 2011년 부사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아내 이부진 씨의 극진한 내조 속에서도 삼성가 3세 가운데 유일하게 사장직을 맡고 있지 않아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이 같은 늦은 승진과 결혼 후 8년 동안 아이가 없자 부부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다. 2007년 8년 만에 아들을 낳아 모든 소문을 일축했으나 부부끼리 떨어져 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는 등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2014년 이들은 이혼조정신청에 들어갔고, 지금은 친권과 양육권 재산분할권 문제를 두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현재 제일기획 스포츠사업 총괄 사장인 김재열 씨도 삼성그룹 경영 핵심에서 다소 멀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김 사장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에서 제일기획으로 자리를 옮기자 일각에서는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이 부진해 김 사장을 배려한 인사로 해석하지만 김 사장의 신임 보직이 대외 업무를 주로 하는 곳이어서 후계구도의 본류(本流)에서 멀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1995년 현대정공에 입사한 뒤 정몽구 회장의 셋째 딸 정윤이씨와 백년가약을 맺고 현대가 일원이 된 후 고속 승진을 거듭, 2005년 현대하이스코 사장에 오른 신성재 전 현대하이스코 사장은 10년 동안 경영을 맡으면서 1조 원대 회사를 4조 원대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2013년 말 현대차그룹이 현대하이스코의 냉연부문을 현대제철로 넘기면서 그룹 내 입지가 급격하게 위축되자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혼도 했다.

이렇게 재벌가 사위 중 처음 시작과는 달리 어두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실세로 떠오른 사람도 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사위인 안용찬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재학 때 장 회장의 장녀 채은정 애경산업 부사장을 만나 애경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1995년 애경산업 사장으로 취임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시켰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사위인 문성욱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도 나름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SK텔레콤 기획조정실, 소프트뱅크 벤처스 코리아 등에서 근무한 그는 2001년 경기초등학교 동창인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을 만나면서 ‘남데렐라’가 되었다. 신세계 기획팀 부장, 신세계I&C 전략담당 상무를 거쳐 이마트 해외사업총괄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으며, 2014년에는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이 됐다.

재벌家 문화 적응이 ‘신데렐라’ 성패의 관건

‘종신 식구’로 대접받고 있는 며느리 역시 재벌가의 문화에 절 적응하면 글자 그대로 ‘종신 식구’가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중도 탈락하고 만다.

탤런트 고현정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연예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고현정 씨는 1995년 삼성가(家)에 시집가며 뭇 여성들로부터 부러움을 샀으나 끝내 결혼생활에 실패했다. 결혼 8년 만의 파경이었다.

고현정 씨는 사생활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삼성가의 분위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케이스였다. 인기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다.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도 언론 노출 때문에 자유롭게 가질 수 없었다. 이에 따른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가라오케 출입을 해 구설수에 올랐고 교통사고도 뒤따랐다. 결혼반지 도난 사건도 터졌다. 자연 그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고, 이어 터진 차량 도난 사건에 휘말려 결국 남편 정용진 씨와 이혼하고 말았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전 부인인 가수 배인순 씨는 그야말로 ‘신데렐라’같은 신혼생활을 누렸다. 호화로움 그 자체였다. 그의 자전소설에 따르면 그의 집은 450여 평이나 되었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유럽 여행도 다녔다. 주치의도 항상 그의 집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부러울 게 없는 생활이었으나 시부모와의 갈등으로 배 씨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결혼 6개월 만에 집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들은 것. 여기에 남편의 여성편력에 시달리다 결혼 22년 만인 1998년도에 최 전 회장과 파경에 이르렀다.

배 씨는 자신의 암울했던 결혼생활에 진저리가 난 듯 재벌에게 시집가겠다는 후배가 있다면 말릴 것이라고 했다. 후배들에게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고 충고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벌가에 시집가 아직까지는 평탄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신데렐라’들도 있다. 노현정 씨와 최정윤 씨가 대표적인 인물들.

노현정

KBS 아나운서 출신인 노현정 씨는 현대그룹 총수일가인 고 정몽우의 3남 정대선 씨와 결혼했다. 미국 유학 중이던 정 씨가 평소 방송에 나오는 노현정 씨의 모습에 호감을 갖고 있었고, 마침 자신의 친구와 만나고 있는 모 방송사의 아나운서가 다리를 놔 노 씨와의 만남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한 틈에 노 씨를 소개받은 정 씨는 그의 단아한 외모와 지적인 모습에 애프터를 신청했고 노 씨 역시 정 씨의 믿음직한 모습에 끌렸다. 이후 이들은 본격적으로 사귀게 되었고,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결혼까지 가는 길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정 씨의 어머니 이행자 씨가 노 씨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 다행히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과 탤런트 강부자 씨가 노 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자 이 씨가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 후에도 이들은 불화설, 원정출산 등 각종 루머에 시달렸으나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배우 최정윤 씨는 2011년 4살 연하인 이랜드 박성경 부회장의 장남인 이글파이브 출신의 윤태준 씨와 결혼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랜드는 당시 6조 원대의 자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최정윤 씨는 현재 결혼 5년 만에 임신했다.

사위는 유학파, 며느리는 현모양처 선호

한편 재벌가(家)가 며느리를 고를 때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집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싫어하는 며느릿감은 연예인과 아나운서. 얼굴이 널리 알려진 탓에 구설에 자주 오르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 집안도 재벌가들이 멀리하는 부류. 권력은 유한하다는 속성 때문이다. 그래서 재벌들은 재벌 집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재벌가(家)는 조용히 집안 살림만 할 며느리를 원한다. 따라서 판·검사, 변호사, 의사, 기자 등 자기주장이 강한 전문직 여성은 물론 음악인 등 예술인도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년지객’ 사위의 조건 역시 ‘집안’이 가장 우선시된다. 유학파, 특히 아이비리그 MBA 전공자들을 선호한다. 경영을 맡겨야 하기 때문. 따라서 집안 수준이 맞고 이른바 ‘외국물’을 먹어본 남자가 재벌가의 사윗감으로 제격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모는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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