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별살인’ 6일에 한 명 꼴…‘안전이별법’은?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언론이나 방송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이별범죄’가 보도되면서 ‘안전이별’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화두가 됐다. ‘안전이별’이란 자신의 안위와 자존감을 보전하면서 이별하는 것을 말한다. ‘안전이별’이란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이별범죄’ ‘이별살인’이라는 말도 덩달아 생겼다. ‘만나면 언젠가 헤어지게 돼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순리가 통용되지 않고 잔혹한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진 것. 이번 달에만 8건이 넘는 이별범죄사건이 보도됐다. 이중 몇 가지 사건을 짚어보고 ‘안전이별법’에 대해 알아본다.

 

얼마 전 ‘헤어지자’고 통보한 여성을 차에 태운 뒤 바다로 뛰어들어 식물인간으로 만든 강모(50)씨에게 징역 8년이 선고됐다.

강 씨는 올 초 식당에서 함께 일하면서 사귀게 된 A씨에게 청혼했으나 거부당하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던 강씨는 지난 6월 식당에서 A씨에게 또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말다툼을 했다. 화가 난 강 씨는 술을 마신 채 A씨와 함께 인근 항구 선착장으로 차를 몰고 갔다.

강씨는 A씨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승용차에서 내려 선착장 앞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A씨가 자살하려 하는 자신을 구해주지 않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앙심을 품고 다시 차로 돌아와, A씨를 태운 채 차를 운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들은 인근 주민의 신고로 긴급출동한 119에 의해 구조됐지만, A씨는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유사한 사건 사례는

이번에는 이별 통보한 10대 여자친구를 살해한 30대 남성 이모(31)씨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된 사건이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조건만남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피해자 김모(18)양과 김 양과 함께 살던 친구 박모(17)양을 알게 됐다.

이 씨는 김 양에게 호감을 느껴 사귀어 오던 중 김 양이 이 씨에게 이별통보를 하자 김 양의 집을 방문해 살해하고, 이를 목격한 박 양도 살해했다. 이씨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일정한 직업 없이 성매매 업소를 홍보하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아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행 한 달 전인 같은 해 10월 A양을 처음 만나 호감을 느껴 계속 만나던 중 A양의 헤어지자는 말에 무릎 꿇고 사과했음에도 거절당하자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껴 범행을 결심했다.

평소 충동장애를 겪던 이씨는 마트에서 흉기 등을 미리 구입해 A양의 집을 찾아가 함께 음식을 배달시켜 먹은 뒤 거실에서 피해자들과 함께 잠을 잤다. 그러나 잠을 자던 중 김 양이 “엄마가 올 수 있으니 가라”고 말하는 것에 격분해 A양을 살해하고 옆에서 자던 B양이 놀라 비명을 지르자 함께 살해했다.

재판에 넘겨진 이 씨는 평소 충동조절장애 증상을 겪었으며 분노를 조절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에 따르면 피고인은 범행의 주요 부분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고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했으며, 현관에 서서 2~3분 범행여부를 고민하다가 범행에 나선 점 등을 고려할 때 범행 당시 사물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건재했다.

게다가 이 씨는 유족들의 면회신청을 거부하고 결심공판기일에 이르러서야 사죄의 의사표시를 하는 등 자신의 범행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2일에는 7년 넘게 교제하던 20세 연하의 여성이 이별을 통보하자 “이별 여행이나 가자”며 지방으로 데려간 뒤 옷을 벗겨 감금하고 “널 보내느니 차라리 죽이겠다”고 위협한 김모(67)씨가 붙잡혔다.

서울에서 거주하던 김 씨는 지난 9일 자신의 고향 해남으로 A씨(47)를 데려가 인적이 드문 농로에서 옷을 벗겨 자신의 승용차에 가둔 뒤 손목을 테이프로 묶고 가스 토치에 불을 붙여 위협했다.

그러나 A씨는 당황하지 않고 “차라리 스스로 죽겠다”고 차분하게 설득해 A씨가 옷을 돌려주고 손목을 풀어주게 한 뒤 한눈파는 사이 주변 인가로 달아나 경찰에 신고해 구조됐다.

최근 김 씨는 A씨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다고 판단, 추궁하는 등 잦은 다툼을 일으켰고, 이에 A씨는 이별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이별을 통보한 것에 앙심을 품고 여자친구의 집에 불을 지른 어이없는 사건도 있었다.

20대 김모씨는 지난 9일 새벽 여자친구와 다툰 후 여자친구가 사는 마포구 서교동의 한 빌라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화재 당시 여자친구는 집에 없어 화를 면했지만, 빌라에 있던 주민 2명이 부상을 입었고, 이 가운데 28살 남성은 의식불명 상태다.

또 집 내부가 모두 불에 타 소방당국 추산 1천200만 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경찰은 김 씨가 범행을 부인하고 있지만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불안과 공포에 떠는 사람 많아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이별 통보 후 상대편에게 스토킹 당하지 않고, 감금 당하지 않고, 얻어맞지 않고, 사진이나 동영상 유출 협박에 시달리지 않고, 살인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해주는 네티즌들이 많다.

특히 ‘안전이별’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인터넷에는 안전이별 유경험자들이 내놓은 ‘믿거나 말거나’ 식 처방전이 많이 떠돌고 있다.

불치병에 걸렸다고 해라, 큰돈을 빌려달라고 해라, 집안이 망했다고 해라, 긴 유학을 가게 됐다고 해라, 트림이나 방귀 등 정떨어질 만한 짓을 해라, 살을 갑자기 찌워라,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정신 나간 것처럼 행동해라 등이 그 예다. 그야말로 ‘웃픈(웃기지만 슬픈)’ 현실이다.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남편이나 애인에게 살해당한 여성 91명 중 37명은 이별이 부른 참극이었다. 특히 이별살인으로 여성의 가족 등도 23명이 살해돼 도합 60명이 희생당했다. 6일에 한 명 꼴로 이별살인을 당한 셈이다.

이 수치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헤아린 것이다. 보도되지 않은 범죄도 있고, 아예 경찰서에조차 알리지 않은 사건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여성이 이별 통보 후 불안과 공포에 떠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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