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4일 미국 부통령 후보 1차 TV 토론에서는 공화당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 지사가 민주당 후보 팀 케인 상원의원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9월29일의 대통령 후보 1차 TV 토론에선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를 압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다음 2차, 3차 TV 토론이 주목된다. 하지만 올 미국 대선은 거짓말과 막말을 일삼은 ‘트럼프 현상’으로 국제적 조롱거리로 전락되었다. 

브라질의 작가 엘리안 블럼은 그동안 후진국들이 미국 민주주의를 모방해야 할 ‘롤 모델(Role Model:역할모형)’로 삼았지만, 이젠 배울게 없다고 일갈했다. 그녀는 공화당이 트럼프같은 사람을 대선 후보로 선출한 것을 보고 ‘롤 모델’은 끝났다고 했다. 중국의 관영매체인 신화사는 미국 대선이 미국인들 스스로 “자찬했던 대로 세계 민주주의의 표본이 아니라 엉망진창 흥행극으로 변질되었음을 반영한다.”고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추한 선거’라고 개탄했다. ‘트럼프 현상’ 탓이다.

2년에 걸친 미국의 대선은 어느 나라보다 최고지도자를 가려내는 과정이 훨씬 투명하고 정교하다.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거짓말, 막말, 아니면 말고 식 폭로, 사기꾼, 법치 무시, 백인 우월주의, 고립주의, 포퓰리즘(대중영합) 등으로 각인됐다. 

트럼프는 유럽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를 낡은 구시대 유물이라며 해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일본과 유럽에 배치된 미군 주둔비를 주둔지 국가들이 “당연히 100%“ 내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전쟁이 나도 그들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북한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햄버거를 먹으면서 더 나은 협상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공화당 당원들이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선출한 데는 필시 까닭이 있다. 워싱턴 중앙정부와 국회의원 등 기득권 주류 정치권에 대한 환멸과 불신에 연유한다. 미국 기업과 노동자들은 중국 등 값싼 외국상품 유입으로 공장과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 젊은이들은 ‘자유 수호’라는 명분 아래 수만리 떨어진 외국 땅에서 죽어간다. 빈부격차는 미국 역사상 최악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기존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잇속만 챙긴다. 여기에 트럼프는 불법 중남미 밀입국자 추방, 보호무역, 고립주의 등을 외치면서 자신을 썩어빠진 주류정치에 물들지 않은 참신한 후보라고 자칭한다. 일부 유권자들은 그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트럼프 지지층은 대체로 대학을 나오지 않은 백인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보호무역과 고립주의가 미국에 궁극적으로 재앙이 된다는 것을 외면한 채, 당장 일자리 창출 선동에 박수를 보낸다. 미국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이성과 합리성을 잃고 방향감각을 상실했음을 반영한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철학자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탈선하면 ‘폭민(暴民)정치’나 ‘중우(衆愚)정치’로 변질된다고 했다. 폭도나 무지몽매한 군중에 지배된다는 뜻이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도 미국 민주주의가 분별없는 군중에 휘둘리고 있음을 반영한다. 트럼프는 11월8일 대선에서 낙선될 게 분명하다. 그래서 ‘트럼프 현상’은 일시적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뒤집어 놓은 ‘엉망진창’ ‘추한 선거’는 미국의 폭민·중우 선동 정치인들에 의해 학습돼 재연될 수도 있다.
후진국들은 미국 선거를 ‘롤 모델’로 삼았다고 했다. 그들이 트럼프의 고립주의, 막말, 아니면 말고 식 폭로 등 ‘트럼프 현상’을 ‘롤 모델’로 착각, 따라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히 포퓰리즘에 가볍게 휘둘리는 우리 정치권이 ‘트럼프 현상’을 모방할 것 같아 더욱 걱정된다. 제발 나쁜 버릇일랑 배우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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