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국감 시즌이다. 국정감사란 국회가 입법기능 외에 정부를 감시·비판하는 기능을 갖는 것이다. 정치실종으로 국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멀어지고 있지만 바른 정치에 대한 갈망마저 소멸된 것은 아니다. 최근 불법 대북송금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창의 역할은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고, 방패의 역할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다. 이 두 사람은 고 김대중 대통령의 문하로 고향도 각각 전남 순천과 진도로 동향이고, 출생연도도 42년생으로 같고, 김대중 정권 창업의 밑그림을 함께 그리고 집권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다.

김경재와 박지원은 창업에는 뜻을 같이 했으나 수성 과정에서 햇볕정책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여 지금은 서로 정치적 입장이 다른 상반된 길을 걷고 있다.
김경재는 1999년 김대중 대통령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뒤 “일방적 퍼주기 햇볕정책이 아닌 채찍과 당근이 병행된 4계절식 햇볕정책으로 전환해야 된다”는 의견을 개진한 후 대북라인에서 배제당했다. 

이후 김경재는 박근혜 대통령의 홍보특보를 거쳐 자유총연맹 총재로 자유수호의 마지막 보루를 담당하고 있고, 박지원은 김대중의 유훈통치 분신으로 여전히 북한-중국과 보조를 맞추며 안보대란을 부추기고 사드 반대를 ‘김대중 정신’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두 라이벌의 공통점이 매우 이채롭다. 김경재는 박정희 정권 시절 16년간 미국에서 망명 논객 활동을 했으며, 박지원은 미국에서 사업가의 경제활동을 통해 지금의 정치적 기반을 쌓았다. 김경재는 대학시절 김대중을 알아 오랜 정치적 교분을 가졌고, 박지원은 처음에는 전경환 쪽에 줄을 대고 있다가 김경재의 설득을 통해 김대중 쪽으로 전향했다.

그런 두 사람이 지금 불법대북송금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 김경재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군의 날 ‘탈북권유’ 축사와 관련 “북한 붕괴와 귀순을 직접 거론하면 선전포고 아닌가”라는 비판으로 ‘북한에 어떤 큰 약점 잡힌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지원에 대해 “4억 5천만 불이란 현찰을 김정일 개인계좌에 넣어줘 핵개발에 기여한 인물이, 이를 방어하는 사드배치까지 반대하는 것은 명백히 김정은 대변인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비판한 바 있다. 또한 김경재는 “결과적으로 일방적으로 퍼주면 북한 스스로 개방할 것이라는 햇볕정책은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나아가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있다면, 불법 대북송금을 사과하고 사드배치를 찬성했을 것”이라 주장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이제 공은 박지원에게 넘어갔다. 김경재의 주장에 대해 박지원은 ‘김대중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언론 지면을 통해 반박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대정부질문을 통해 주장한 청문회에서 불법 대북송금의 진실을 밝히는 게 바람직하나, 그게 싫다면 언론 일각에서 주장하는 김경재와 박지원 일대일 공개토론을 통해 국민에 해명을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김경재는 자신의 저서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박정희 대 김대중의 쟁패’의 기록이라고 규정하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와 교훈을 창조적으로 융합시키는 이른바 산민통합(産民統合)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들(박정희와 김대중)은 경제개발과 민권수호에 있어선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을 벌였으나 한일수교와 월남파병에 있어선 완벽하게 일치했다고 부연한다. 

또 김경재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홀로 국제질서에서 이탈,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절대 지지와 중국·러시아·일본의 협조로 이뤄진, 그 당시의 국제적 흐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민주당 정부가 추진하는 사드배치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존중했던 김대중이 살아있었더라면 이에 찬성했을 것이라는 논리다. 
사마천은 <사기>에 “지나간 일을 잊지 말고 훗날의 스승을 삼자”(前事不忘 後事之師 전사불망 후사지사)고 했다. 후세의 왕들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진나라의 망국 과정을 교훈삼아 통치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같은 기록을 남긴 것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핵탄두를 장착한 북한 미사일이 목전까지 온 마당에 정치권은 더 이상 사드 문제를 정쟁(政爭)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 북핵은 이제 실존적인 위협이다. 김정일은 1998년 이후 핵폭탄 개발에 본격 착수했고, 2000년 산업은행-현대그룹을 동원해 4억 5천만 달러 현찰이 불법송금으로 김정은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이후 16년이 지난 대한민국은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안보불안국가 신세로 전락했다. 잘못된 과거의 ‘반역 행위’는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