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정관계 포퓰리즘 법안 ‘봇물’ 후유증

김영란법·정세균법·백남기특별법·반기문예우법…
현재 진행형인 ‘포퓰리즘 입법’ 누구를 위한 법안인가?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김재수 해임건의안 사태로 촉발된 국회 파행사태가 가까스로 봉합됐지만 여야 간 ‘입법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여권은 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국회의장 중립법(일명 정세균 방지법)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에 맞서 야권은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권한을 강화한 일명 ‘유승민법’을 꺼내들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자 여권은 또 전직 국제기구 대표 예우에 관한 법률을 추진하며 반기문 공들이기에 나섰고, 야권도 이에 질세라 백남기 씨 관련 특검법안을 제출해 정국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이처럼 국회 입법권이 여야 간 경쟁 도구로 사용되는 모습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법안 상정 의도를 의심하고 나섰다.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을 위한 입법’은 뒤로한 채 정쟁과 여론몰이를 위한 ‘포퓰리즘 입법’에 여념이 없다는 지적이다.

김영란법·정세균법·백남기특별법 등 특정인의 이름을 단 법안, 이른바 ‘실명법’의 장점은 여론 형성이 쉽다는 것이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인물이나 사건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여야가 특정 현안이 터지면 그 이름을 딴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에대해 일각에선 여론에 편승한 ‘포퓰리즘 입법’가능성에 우려를 표한다. 여론몰이와 정쟁에만 치중한 법안에는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영란법·오세훈법·이인제방지법 등 ‘실명 법안’ 부작용 뒤따라…

최근 시행에 들어간 ‘김영란법’ 역시 이 같은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영란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교수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던 2012년 발의한 법안이다. 당시 ‘벤츠 여검사’, ‘스폰서 검사’ 등 권력의 정점에 있던 공직자가 금품과 향응을 받고도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자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이에 국회에선 본격적으로 김영란법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시 정치권에선 “취지는 좋으나 입법만능주의는 안 된다. 부정청탁이 사라져야 한다는 당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법은 도덕의 최소한에 맞춰야 한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결국 이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김영란법의 애초 취지와 달리 적용대상자가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입법은 무리라는 취지에서 제기된 ‘형평성’ 문제가 반대로 적용대상 확대라는 역효과를 낳았다. 입법과정에 외부효과가 너무 많았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에 정치권의 관계자는 “그대로 통과되리라곤 입법에 참여한 의원들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김영란법은 정부나 국회 혹은 사안을 검토한 전문가들이 입법 시행까지는 안 되리라 여겼던 ‘포퓰리즘 법안’의 하나였던 셈”이라고 비판했다.


‘개정 정치자금법(일명 오세훈법)’ 역시 ‘포퓰리즘 법안’의 한 예로 들 수 있다. 기업이나 법인 단체의 이름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의 모금행사 금지, 120만 원 이상의 정치자금 기부자 실명 공개 등을 골자로 한 ‘오세훈법’은 오세훈 의원이 16대 국회의원이던 시절 개정을 제안해 통과된 법이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검은 돈이 오가는 불법 선거 문화를 개선하려는 취지였다. 오세훈 당시 국회의원은 총선 불출마라는 초강수까지 둬가며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후 그는 돈 안 드는 선거를 정착시켜 우리 정치를 깨끗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등에 업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오세훈법’의 문제점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업·단체 기부와 정당 후원회 결성 금지 규정이 있음에도 ‘청목회 사건’처럼 불법과 합법 경계선에 놓인 ‘쪼개기 후원’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정당 활동 경비가 국고지원금 중심으로 운영돼 세금 낭비를 야기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정치의 고비용 구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정치자금 관련 범죄를 막기 위해 ‘오세훈법’을 오히려 완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나아가 ‘오세훈법’을 폐지하고 대신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견해도 정치권 안팎에서 제기됐다. 차떼기 사건’으로 대표되는 불법 정치자금 조성 차단을 목적으로 했던 ‘오세훈법’이 부패를 어느 정도는 해소했지만 강력한 정치자금 규제 정책이 자연스러운 정치적 의사표현을 가로막고 불법 정치자금 유혹을 키우며 정치인 및 정당 후원을 통한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위축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인제방지법’ 역시 이와 비슷한 사례다. ‘이인제방지법’은 1997년 당시 한나라당 경선에 불복한 이인제 후보가 국민신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하자, 이 같은 사태를 막고자 만들어진 법안이다. 당내 경선에 참여한 예비후보자가 탈락 후 같은 선거구에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게 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그러나 이 조항의 치명적인 허점은 가산점을 못 받아서 탈락한 후보들에게는 효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통상적인 경선에는 여론조사와 투표만 해당된다. 이 때문에 신인이나 여성 등에 가산점을 주는 새누리당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대거 불복하면 선거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를 두고 당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적인 사건을 두고 여론에 편승하기 위해 법안을 던져놓고 정작 구체적 내용을 조율하는 법안 심사 및 처리 과정은 나몰라라 하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반기문예우법·정세균방지법 VS 오세훈법·백남기특별법

정쟁과 여론몰이에 치중한 법안 상정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지난 10월 4일 새누리당의 ‘보이콧 해제’로 국정감사가 8일 만에 정상화됐지만 입법 추진을 둘러싼 갈등은 뇌관에 인접한 상황이다. 특히 국회의장의 중립 의무를 명문화한 정세균 방지법에 대한 여야의 기싸움은 다가오는 연말 예산정국에서 법인세 인상 논의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아 벌써부터 전운이 감돌고 있다. 

사진=정대웅 기자

현재 새누리당은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명확히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을 국감 복귀와는 별개로 ‘투 트랙’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4일 “국민의당이 국회법 개정을 적극 검토하기로 한 만큼 더불어민주당도 논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조원진 최고위원 역시 “의장 중립 문제는 반드시 지켜질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야 해결된다”고 거들었다.


반면 야당은 “산적한 의혹을 가리려는 여당의 속셈”이라며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 권한을 강화하는 일명 ‘유승민법’으로 맞불을 놨다.


여야가 법안 상정과 관련해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말 퇴임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두고도 여야는 날 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여당은 반 총장의 퇴임 후 생활을 예우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데 반해, 야당은 반 총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견제에 나섰다.


이종배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인들의 국제기구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합당한 예우와 신변보호를 할 필요가 있다”며 일명 ‘반기문예우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의 국가 선양이나 세계평화 국제질서에 기여한 공로를 우리가 인정하고 이에 합당한 예우를 마련하려고 만든 법안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허무맹랑한 시도는 그만두기를 바란다”며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가 어디 우리나라뿐인가”라며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 역시 ‘사무총장 퇴임 직후 정부 직위 금지’를 규정한 유엔총회 결의안을 근거로 “반 총장이 출마해 당선되면 각국이 문제를 지적할 것”이라며 ‘반기문예우법’에 반대함과 동시에 반 총장의 대선 출마를 견제했다.


고 백남기 씨의 사망 원인과 부검을 둘러싸고도 여야는 ‘칼끝 대치’ 중이다. 야당은 경찰의 물대포로 인한 외상이 명백한 사망 원인인데도 굳이 부검을 하려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기에 특검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국가가 아무런 반성 없이 고인을 병사라고 하기 때문에 특검만이 정답”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은 따갑다. 야당이 ‘백남기 특검법’을 도입하려 하는 데는 국정감사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백 씨 사건은 이미 국회 청문회에서 사인을 포함해 다양한 문제가 논의됐지만 결정적인 것은 없었다. 사망진단서 작성 또한 의사 개인의 고유 권한이고 사인 규명을 위해서는 부검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모두 야당이 시비 걸 문제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일각에선 “이런 상황에서 특검이 진행되면 진실 규명은커녕 국론 분열과 정치적 분쟁만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진실을 밝히자고 해놓고 정작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에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많지 않는 모습”이라고 질타했다. 


이 같은 무책임한 ‘포퓰리즘 정책’은 비단 국회에서 일어나는 일만은 아니다. 과거 박원순 서울시장은 “취업난에 몰린 청년들이 자기계발을 통해 취업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겠다”며 ‘청년수당’ 정책을 폈지만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정치권의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야만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잠재적 대권주자인 박 시장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청년표를 의식해 치적을 쌓으려고 포퓰리즘 정책을 펴고 있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또 “박 시장의 마음에 청년은 안중에도 없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오로지 정치적 인지도만 높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며 맹비난했다.

4·13총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법안 발의조차 못해…

‘포퓰리즘 법안’은 선거철에 특히 쏟아져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4·13 총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법안 가운데는 발의조차 못한 법안도 있다. 새누리당의 경우 총선 이후 사라진 대표적인 공약이 마더센터였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시·군·구마다 은행과 대형 마트 같은 접근이 쉬운 곳에 최대한 만들겠다”고 했던 마더센터는 전국에 아직 한 곳도 만들어진 곳이 없다. 물론 관련 법안 발의 실적도 전혀 없는 상태다.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12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 가운데 저소득층 소액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1000만 원 이하, 10년 이상 장기 연체 부채의 일괄 소각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법안 발의는 물론 추진계획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이처럼 법안 상정, 나아가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데는 언제나 정치인들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모든 법은 국민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여론몰이와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법안 발의를 시기 적절히 활용하는 행태는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사람 이름을 딴 법안’에는 이슈가 되는 인물을 활용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여론을 형성해 법안 통과를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정치 전문가들은 국회의원들의 끊임없는 ‘포퓰리즘 입법’을 방지하려면 국민들 스스로 깨어있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국민들이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안을 부결시킨 데 이어, 국가연금 지급액을 10% 올리자는 법안도 부결시켰다. 스위스에서는 이전에도 포퓰리즘 법안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부결된 적이 있어, 포퓰리즘 입법 극복의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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