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를 선두로 모바일 뱅킹 급속도로 확산

동아프리카 국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외곽 빈민촌 케이욜에 사는 조압 오몬디는 물을 실은 수레를 끌고 수돗물이 들어오지 않는 인근 지역을 돌며 물장사를 한다. 2년 전만 해도 케이욜에서도 물은 귀했다. 케이욜 주민은 한 통에 30실링(약300원) 하는 물 5갤런(약19리터)을 사려고 멀리까지 가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케이욜에 다시 수도가 연결됐다. 세계은행(WB)과 나이로비상하수도(上下水道)공사가 주민들이 수도요금을 모바일뱅킹으로 납부하도록 허용하면서 케이욜에 상수도가 재개통됐다. 그러자 오몬디를 비롯해 집에서 수돗물을 받아 쓸 수 있게 된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수레에 물을 가득 싣고 수도가 연결되지 않은 가까운 지역을 찾아다니며 물장사를 하고 있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보도했다.

오몬디는 수도요금 모바일뱅킹 납부 허용 조처로 주민의 삶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지역 수도는 이전처럼 끊길 일이 없다. 우리는 과거처럼 수돗물 공급을 신청하고 수도요금을 내기 위해 은행에서 길게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케냐 사람들은 과거 공과금을 납부하거나 다른 은행 업무를 처리하려면 은행 창구에서 여러 시간 기다려야 했다. 상하수도 시설의 부족은 동아프리카의 경제 발전에 매우 큰 장애물이다. 하지만 모바일뱅킹이 확산되면서 이제 상수도 회사는 주민에게서 수도요금을 징수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더 커졌음을 확신하게 됐다. 이에 따라 케냐 전역의 가정에 상수도를 연결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다. 상수도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고객, 은행, 기업의 3자 사이에서 돈을 이체하는 데 사용하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M-Pesa’를 통해 요금 고지서를 받는다. 2년 전 이 제도가 채택된   후 케이욜 주민 약 10만 명이 정기적으로 수도료 고지서를 휴대전화를 통해 받는다. 오몬디는 “거의 모든 주민이 집에 수도를 연결해 놓고 있다. 우리는 이 기본적인 서비스에 만족하며, 우리 지역의 수돗물을 아직 수도가 들어오지 않은 동네에 팔기도 한다”고 전한다.

세계은행에서 아프리카를 위한 상하수도 사업을 담당하는 사회학자인 조지프 암바조에 따르면 이 제도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비단 그것이 편리해서만은 아니고 가정에 수도를 놓는 데 드는 초기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케냐에서 가정에 수도를 놓으려면 비용이 약 100달러(약 11만 원)가 든다. 그런데 휴대전화를 통해 편하게 대금을 결제할 수 있어 이제는 수도 설치비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게다가 고객들은 그 설치비를 2년에 걸쳐 나눠 낼 수도 있게 되었다. 이는 모바일뱅킹 정착과 더불어 수도회사와 고객 간의 상호 신뢰가 높아진 덕분이다. 지역 주민들은 휴대전화 덕분에 전력 사용에 대한 접근이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건강정보도 더 널리 공유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케이욜 주민 레베카 은제리는 “모바일 기술이 여러 방식으로 케냐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면서 “우리는 이제 언제든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게 되었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또한 서아프리카 국가 라이베리아에서 긴 우기(雨期)를 맞아 농부 아이삭 톤도가 돈에 쪼들리고 있을 때 수도 몬로비아에 사는 그의 가족이 모바일뱅킹으로 8000 라이베리아 달러(약95만 원)를 송금했다. 도시와 농촌을 가릴 것 없이 아프리카 곳곳에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모바일뱅킹을 통해 소비하고 저축하면서 미래를 계획한 다고 AFP 통신은 전한다. 전문가들은 몇 가지 위험만 잘 관리한다면 성장과 빈곤 감소라는 효과를 볼 것이라고 믿는다. 톤도의 가족은 과거에는 고향 그랜드 게데 군(郡)에 사는 동생에게 인편으로 돈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너무 험해 돈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농부 톤도는 “사실상 몬로비아에서 보내온 돈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모바일 송금을 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사이의 거리가 멀고 도로와 사회기반시설이 열악하며 은행 계좌를 가진 사람이 적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이제 문자메시지를 통해 돈을 보내고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법으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 후루사와 미츠히로는 금융서비스 접근 촉진을 주제로 최근 서아프리카 국가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모바일뱅킹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 면에서 아프리카인들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IMF는 추가적인 금융발전의 가능성이 아프리카에서 “대단하며”, 은행 서비스에 대한 접근 확대가 아프리카의 연간 성장률을 1.5% 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서부 아프리카의 ‘오렌지머니’, 케냐의 ‘M-Pesa’, 여러 나라들에서 사용되는 ‘티고캐시’와 같은 결제 시스템들은, 대부분의 주민이 전통적인 은행 서비스에 물리적으로도 금융상으로도 접근하지 못했던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근년 들어 엄청나게 많이 보급됐다. IMF에 따르면 아프리카인의 약 11퍼센트가 이제 모바일뱅킹 계좌를 갖고 있으며 케냐에서는 그 수치가 60%에 이른다. 아프리카를 제외한 여타 세계에서 그 수치는 2퍼센트다.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가 동아프리카에서 선두 집단을 형성하며, 모바일뱅킹 이용자 비율이 25%인 아이보리코스트가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국가이다. 아이보리코스트의 ‘오렌지머니’ 사장 장 마리우스 야오는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본다. 그는 농촌 공동체와 여성들처럼 아직 시장이 미치지 않은 부문이 있어 오렌지머니가 앞으로도 더 뻗어나갈 소지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의 열정적인 모바일뱅킹 채택은 단순한 송금에서 예금과 대출 등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케냐와 같은 나라들은 이 분야가 아프리카 대륙 전역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잘 보여준다고 IMF 아프리카국(局)의 부국장 로저 노드는 말한다. 영국의 대형 장거리통신회사 보다폰의 자회사인 사파리콤이 운영하는 지불시스템 ‘M-Pesa’는 최근 ‘전자지갑’ 계정에 이자를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과거 저축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는” 사용자들이 돈을 저축하게 되었다면서 “경제학적으로 볼 때 금융발전과 경제성장 및 빈곤 감소 사이에는 매우 뚜렷한 관계가 있다”고 상기시켰다. M-Pesa의 서비스는 이제 의료보험, 공과금 결제, 소액 대출로까지 확대됐다. 아프리카인들 사이의 모바일뱅킹 이용 확산이 이 지역 경제발전으로 이어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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