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볕이 따뜻한 지난 6일 오후 인사동 한 모퉁이에 자리 잡은 김창배 화백의 작업실 ‘담원 갤러리’를 방문했다. 건물 2층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맑은 풍경 소리가 울린다. 기자를 먼저 맞이한 건 부드러운 선율의 명상음악과 잔잔한 묵향. 약 20여 평의 갤러리에는 그간 김 화백이 그려놓은 작품 60여점이 전시돼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일반 갤러리와는 다르게 관람객이 앉아 쉴 수 있는 쪽마루와 방석이 마련돼 있다는 것.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해 있던 기자를 친절히 쪽마루로 안내한 김 화백은 자신이 직접 재배한 녹차를 내왔다. 김 화백은 ‘차’와 인연이 깊은 화가로 유명하다.

이미 차와 그림, 글을 조화시킨 국내 최초의 차 화문집을 여러 편 출간했는가 하면, 그의 모든 그림 속에 다관과 찻잔이 있으며 화제 또한 차와 관련된 글을 즐겨 쓴다. “‘다선일여(茶禪一如)’라 했습니다. ‘차와 선은 같다’는 뜻입니다. 제게 있어서 차는 그런 의미입니다. 30년 넘게 차를 곁에 두고, 작업하면서 늘 함께 했으니 그림 속 ‘선’들이 온통 차의 향기와 느낌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겠지요.”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예를 갖춰 마실 정도로 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그는 자신의 정신세계와 작품 활동도 차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작품들에 다동(茶童·차를 만드는 어린아이)을 그려 넣습니다. 해맑은 남자 어린아이를 그림으로 인해서 제 자신이 더욱 맑아지고 싶은 바람 때문이겠지요. 작품이란 곧 나 자신을 담는 것이거든요. 서민적이고 정겹고 소박한 느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런 노력에 반드시 차가 있는 것입니다.”그는 지리산에 500평 가까이 되는 차 밭을 직접 관리하고 있다. 갤러리 내부에 전시된 수 십 종의 찻잔과 다과 역시 방문객을 위해 손수 장만한 것으로 어느 것 하나 그의 손길이 가지 않은 것이 없다. 소중한 지인들이 오면 귀한 찻잎을 내와 직접 대접하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란다.

“차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닙니다. 물론 어느 정도 격식은 필요하겠지만, 좋은 물을 떠다가 좋은 다우들과 함께 다담을 나누며 마신다면 그보다 좋은 차 맛이 어디 있겠습니까(웃음).” 김 화백은 인사동에 우리의 전통을 찾는 발걸음이 보다 많아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오는 13일부터 27일까지 자신의 ‘담원 갤러리’에서 개관 기념전을 여는 것도 사실 이 때문이다. “근 20년간 이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우리의 전통을 알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평상시 누구든 찾아와 그림, 음악과 다담을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손수 장만한 차를 대접할 기쁨에 벌써부터 들떠 있습니다(웃음).”담원 김창배 화백의 선묵화와 향내 그윽한 차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담원갤러리 차 & 예술센터 개관기념

- 아름다운 차(茶)자리 그림 전’은 오는 13일(토)부터 27일까지 종로 인사동 담원 갤러리에서 개최된다. 김 화백은 전국의 차 문화 유적지를 발로 뛰며 스케치한 그림들과 전국의 다인들의 모습 등 차이야기가 담긴 그림들 3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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