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참전 대비 48만 명 철수案 52년 초 마무리…류큐열도 최적지 판단

포로 1만여 등 공산세력 볼모 계획…소개時 한국군 日本 투입계산

미국(美國)은 한국전(韓國戰)에 소련(蘇聯)이 본격 개입하며 국제전(國際戰)으로 비화될 것에 대비해 한국민(韓國民)을 대대적으로 해외 소개시키는 계획을 마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51년 초부터 검토하기 시작한 이 방안은 유사시 한국민 최대 48만여 명을 제주도, 일본(日本), 대만(臺灣) 또는 류큐열도 중 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미 백악관, 중앙정보국(CIA) 및 합참은 이와 관련해 52년 1월 오키나와를 포함하고 있는 류큐열도가 최적지라는 데 의견을 접근시킨 것으로 지난 1994년 12월 공개된 미 극비 문서들이 밝혔다.

‘작전 계획 4-51’이란 명칭의 소개 계획은 ▲소개 대상 선정 방법 ▲공산 포로 1만명과 친공(親共) 인사 볼모 확보 및 ▲소개 후 한국군을 일본 서부 방어에 투입하는 문제 등도 다루고 있다. 미국은 당시 또 한국이 한반도 공산화에 대비해 젊은이 1백만 명을 대만으로 옮기는 문제를 장개석(蔣介石) 정부와 비밀 협상하는 것으로 보고 크게 신경썼던 것으로 나타났다. 소개 계획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대상 선정 방법이다. ‘한국민 소개’란 제목의 52년 1월 23일자 미 합참 극비 문서(JCS 1776/278)에 이렇게 언급돼 있다.

“소개 대상 한국민은 두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클래스 A는 정부 관리와 군·경(軍警) 실제 동원 병력으로 모두 30만5백 명이다. 클래스 B는 군·경 예비 병력, 주요 전문인·종교 지도자와 그 직계 가족, 그리고 철도·항만 노동자 같은 유엔군 지원 인력 등으로 18만2천 명이 해당된다."

여기에 상황에 따라 “미 8군사령관이 클래스 B의 일부 또는 전부를 소개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는 대목과 필요할 경우 공산 측과 유리하게 협상할 수 있도록 “포로 1만 명을 볼모로 데려간다"는 귀절이 이어진다.

또 한반도 공산화와 관련해 “미국의 이익을 해칠지 모르는 핵심 공산주의자와 동조 세력도 우리의 통제 하에 둬야만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미 국가안보회의(NSC)도 당시 미국이 왜 한국의 각계 지도층을 보호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책 지침을 마련 중이었다. 합참 문서에 인용된 NSC의 입장은 이렇다.

“과학, 산업, 정부 및 군의 지도자들이 적에게 활용되지 않도록 보호 또는 소개시켜야 한다. (미국에 대한) 이들의 충성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직계 가족도 보살펴야 한다."

미국은 한반도가 공산화될 경우 남한에 보복이 가해지지 않겠느냐는 점도 우려했다. 소개 계획을 초안한 미 합참 전략기획위 보고서는 남한이 공산화될 경우 “모두 1백55만7천3백55명에게 심각한 보복이 우려된다"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이들을 ▲정부 관리 6천4백78명 ▲군·경 33만7천9백72명 ▲미 8군 지원 인력 14만4백5명 ▲정부 관리와 군·경의 직계 가족 1백4만3천명 ▲종교 지도자와 직계 가족 1천5백명 ▲기타 사회 지도층과 직계 가족 등 5만7천5백명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유사시 이들 모두를 소개시킨다는 얘기는 미 합참과 NSC의 관련 문서 어 디에도 언급돼있지 않다. 수송 수단이 가뜩이나 부족하던 터라 미국도 달리 어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민을 어디로 옮길지로도 고민이 컸다. 미 본토와 하와이 등은 절대 안된다는 대전제 하에 제주도와 일본이 수송상의 유리함 때문에 우선적인 후보지가 됐다.

그러나 제주의 경우 적의 공격을 받기 쉽고 또 미국이 원치않는 난민 유입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일본은 한일(韓日)간 감정이 극히 나쁘다는 게 주된 탈락 사유였다.

대만도 한때 후보지로 거론됐으나 장개석(蔣介石)의 본토 수복 야심과 연계된 한·대만 간 결속 움직임이 걸림돌이 됐다.

이에 따라 근 1년여의 고심 끝에 의견이 접근된 곳이 류큐열도다.

52년 1월 23일자 미 합참 문서는 1백50여 섬으로 구성된 류큐가 ‘인종적 측면’은 물론 작전 여건과 공간 면에서 한국민을 소개시키기에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반면 산업 설비가 거의 없고 또 식량 자급자족이 어렵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합참 문서는 그러나 “지리적 측면 등에서 한국 망명 정부가 들어서기에 류큐열도가 최적지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 열도 내 오키나와는 미군 전략상 예외라는 조건이 붙었다.

유사시 한반도에서 소개되는 한국군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미국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소련이 한국전에 본격 개입할 경우 미국은 한국군을 일본 서부 방위에 투입했으면 했다. 합참 문서는 이렇게 전한다.

“(소개된) 한국군을 일본 방위에 활용하는 것과 관련해 이들이 과연 제대로 싸워줄 것인지가 문제다…그러나 한국군의 다수는 국토 회복에 희망을 걸고 전투에 임할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또 흥남 철수 작전과 관련해 당시 현지에서 빠지는 병력을 직접 일본으로 보내 재편시키는 방안도 한때 검토했던 것으로 미 비밀 문서들이 밝혔다.

한편, 미 합참은 51년 2월께 CIA 특별 분석(CIA-SE) 등을 토대로 한·대만이 유사시 남한 젊은이 1백만 명을 대만으로 옮기는 문제를 비밀 협상중인 것으로 보고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미국은 당시 정규군과는 별도로 청년의용군을 무장시키겠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에 난색을 표시하던 차라 한·대만간의 이같은 움직임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 대만 외교부가 지난해말 공개한 한국전 관련 비밀 문서에 따르면 이승만(李承晩) 정부는 50년 12월 3일 대만 행정원장 앞으로 극비 전문을 보내 박격포, M1 소총 및 경기관총을 비롯한 총포류 1만2천여정과 수류탄 근 2만개 등을 지원토록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