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극장 <속편2탄>

제1부 사악한 왕국
저 며칠 후 금니박이 사내가 불렀다.
“지식은 실천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면 헛것이다. 이제부턴 오전과 저녁엔 일을 하되 대낮엔 포교를 하러 나가거라.”
청운은 어느 아주머니를 따라 동대문으로 나갔다. 이른바 ‘낚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된다고 생각하면 되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꼭 안 되는 건 아니겠지만 이왕이면 잘된다고 생각하면 좋지. 하지만 절대로 부끄럽다고 생각해선 안 돼. 잠깐의 부끄러움을 참고 나가 목표를 이루면 성취감과 함께 황홀해지니까. 훔바리 쿰!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인간에겐 부끄러움보다는 당당함이 필요해.”
정감 아주머니가 말했다.
“예.”
청운은 고분고분 대답했다.
새하늘교는 최상층의 교주와 지도부 아래로 총감, 정감, 정무 등등의 직책으로 엄밀하게 짜여 있었다. 정무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정감에 소속되고 같은 구조로 다섯 명의 정감은 총감에 소속된 완전한 다단계 식이었다. 각 조의 조원들은 조장을 마치 부모님처럼 모시면서 교의를 배우고 수발하며 매달 일정액의 헌금을 상납했다. 전국 각지에 모세혈관처럼 뻗은 지부를 통해 모금된 성금은 결국 ‘한님’인 교주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포교에 성공하게 되면 본인도 점수를 받지만 덩달아 조장까지 점수를 쌓게 돼 이른바 ‘효도’를 하게 되는 셈이었다.
“몇 살이니?”
“열일곱요.”
청운은 이번엔 모호한 한두 살의 차이를 따지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청춘의 시작이군.” 
부러움이 깃든 여자의 목소리에 청운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얘, 지금부터 잘 봐둬! 징그럽게 웃지만 말구.”
여자는 민첩한 발걸음으로 어떤 중년 남자에게로 다가서더니 생긋 웃었다.
“오, 정말 고상한 대인군자의 복덕을 지닌 인상이시군요! 잠시 시간을 내주시면 생활 속에서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을 알게 되어요. 선생님뿐만 아니라 자손들이 더 큰 복을 누릴 수 있답니다.”
남자는 여자가 건네주는 유인물을 휙 떨쳐 버리곤 걸어갔다.
여자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길거리의 다른 목표물을 노렸다.
“하루에 한 마리만 낚아도 괜찮은 거야.”
그러고는 곧 깔끔한 한복 차림의 어느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아유, 참 곱기도 하셔라! 아드님이 해주셨나, 며느님이 마련해 주셨을까나? 그런데 귀여운 손주 중에 하나가 검은 빛 속에 있어서 우리 자애로운 할머님 안색에도 수심의 그늘이 졌군요. 어쩔거나! 어르신, 잠시 잠깐 틈을 내어 새하늘의 진리 말씀을 들어 보시면, 바로 그 귀하신 손주가 밝은 빛을 얻고 나아가 국가의 귀인을 만나 앞으로 크게 영달할 수가 있답니다.”
“집에 가서 살림이나 잘 할 일이지 저게 무슨 짓이람.”
할머니는 주름살 많은 얼굴을 찡그리곤 혀를 쯧쯧 차며 지나갔다.
“아, 갑자기 속이 아파…… 우리 저기서 좀 쉬었다 갈까?”
낡아빠진 여인숙 간판 앞에서 여자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여자는 청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어둑스레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청운은 무심코 따라갔다.
만약 누군가 감언이설의 낚시에 일단 걸리게 되면 저절로 회당까지 따라가고 만다. 한 마리의 ‘인간 고기’는 화려한 무지갯빛 방에서 네댓 명의 포교 전문가들에게 둘러싸여 세뇌교육을 받는다. 인간이란 그저 동물에서 신으로 건너가는 일종의 다리에 불과하다. 동물적인 면과 신적인 면이 섞여 있기 때문에 인간은 온갖 괴로움과 풀기 어려운 문제들에 얽매여 생고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저급성뿐만 아니라 어찌 보면 반쯤은 부자유한 기성종교의 신까지도 극복할 때, 인간은 구체적인 완전자가 되어 진정한 신께 감사의 미소를 던질 수 있고 나아가 신을 부려서 이 땅과 나의 삶을 천국으로 돌변시킬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른바 ‘무지개 다리’를 각자 속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도와 기꺼이 바치는 성금聖金이 필요할 터였다.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다. 하지만 일단 세뇌(축복)를 받은 사람들은 바로 내일이나 모레 또는 몇 달 후면 자신이 그 천국의 화원에 들어가게 되리라 믿고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청운이 듣고 본 모습이었다.
간판은 도로변에 있었으나 여인숙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접선 암호처럼 그려 놓은 붉은 화살표를 따라 골목길을 이리저리 몇 구비 돌고서야 겨우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어둑스레한 곳에서 추레한 난쟁이 여자가 쌍둥이를 힘겹게 겨우 안고 울음을 달래는 꼴을 바라보던 청운은 여자가 재촉하는 소리를 듣고 곧 복도를 지나 이층으로 따라 올라갔다.
구석방 문을 열고 들어간 여자는 머뭇거리는 청운의 팔을 잡아 끌어들인 뒤 즉각 닫았다. 그리고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아유, 다리가 너무 아프네. 허새비처럼 섰지 말고 와서 좀 주물러 줘.”
“아깐 배가 아프다고 하시더니…….”
“얘, 넌 모르는구나. 병이든 고통이든 다른 무슨 일이든, 더 큰 것이 작은 것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말야. 만약 지금 두통이 심하다면 다른 통증은 잊히는 식이지. 인생의 진리를 하나 가르쳐 줬으니 이리 와서 다릴 주물러 줘.”
청운은 마지못해 쭈그려 앉더니 무릎걸음으로 그녀의 발치께로 다가갔다. 여자는 벽에 기댄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늘 불그무레하게 충혈돼 있어서 일말의 공포감을 주던 그 눈은 긴 속눈썹에 덮여버려 오히려 애잔스러웠다. 마흔 살에 가까워 뵈는 얼굴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눈은 마음의 창문이라 하지만, 눈을 감은 모습이 더 진실하다는 말도 있던걸. 어느 쪽이 사실일까?’
청운은 그녀의 다리로 손을 가져가며 멈칫거리다가 하얀 양말 신은 발을 잡고 살살 만지기 시작했다. 
“아이 간지러워…….”
작고 불그죽죽한 여자의 입술 새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리가 아프다니까 그러네. 장난치려 말고 어서 다릴 좀 주물러 줘.”
여자는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청운은 손을 옮겨 그녀의 종아리를 슬슬 만졌다.
“감질나게 말고 좀 꼭꼭 눌러 봐.”
청운은 손아귀에 힘을 넣어 주물러 주었다. 지난 여름의 땡볕에 그을린 듯한 연갈색 다리는 의외로 말랑했다.
“무릎이 많이 아파.”
명령에 따라 청운이 무릎을 감싼 채 마사지하자 여자는 여린 신음소리를 내면서 벽에 기댄 상체를 조금씩 방바닥으로 미끄러뜨렸다. 그 사이에 문득 무릎을 한번 세웠다가 놓았다. 검정 치마가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 허벅지가 내보일 정도였다. 종아리와 달리 볕에 타지 않아 허연 속살이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치마를 끌어 내리다가 청운의 손을 잡아 허벅지 위로 슬며시 올려놓았다. 
그 순간부터 청운은 저도 모르게 입 속이 바싹 마르고 심장이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온몸이 벌벌 떨렸다. 그래도 여체의 매끄러운 탄력을 이기지 못한 그의 손바닥은 죄악과 벌을 잊어버린 양 저절로 움직이며 점점 여인의 허벅지 위쪽으로 더듬어 올랐다.
여자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한숨만 쉬며 이따금 할딱거렸다. 
청운의 떨리는 손은 허벅지의 종착지 또는 어떤 신비스런 입구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여인의 숨결이 점차 가빠지더니 갑자기 상체를 일으켜 청운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목과 귀와 눈과 입술에 침을 마구 묻히며 키스를 해댔다. 마치 탐식하는 욕심쟁이 소녀처럼…….
늙은 아줌마의 이상스런 열정 앞에서 청운은 오히려 차츰 냉정해지고 있었다. 사춘기의 앳된 청년에겐 주체할 길 없는 정욕과 더불어 순수를 향한 목마름도 있는 법이다. 그는 고뇌가 깃든 눈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여자의 몸을 밀어냈다. 어쩌면 한순간 그의 마음속엔 엄마나 박꽃누나 혹은 생긋 미소 짓던 바닷가의 그 소녀가 떠올랐는지도 몰랐다. 
“왜 그러니? 내가 무서워서 그래?”
여자의 말에 청운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짐짓 냉소적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습긴요. 쳇, 가련해 보여서 그래요.”
“흥! 그래도 꼴에 남자라고…… 애송아, 그딴 소리 말고 어서 발목이나 주물러 줘. 음, 허리도 아픈걸.”
여자는 좀 성이 났으면서도 몸을 돌려 엎드리며 절제된 목소리로 명령했다. 
“아깐 속이 아프다고 하시더니만.”
“얘, 꺼벙아, 너가 인생에 대해 뭘 알겠니.”
청운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선감도에서 온갖 고생 끝에 살아나온 사람을 앞에 놓고 애숭이라니!
“사람 몸이 인생이야. 큰 고통이 사라지면 작은 고통이 곧 그 자리를 차지하지. 고민도 마찬가지고…….”
청운은 아무 말 없이 여자의 허리를 두드려 주었다. 한참 동안 안마를 받으며 작게 신음소리를 내다 여자는 손을 뒤로 돌려 청운의 손을 잡아 밀어냈다. 그러고는 천천히 일어나 앉더니 자기 가방 속에서 갈색 병의 드링크제를 꺼냈다.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시곤 청운에게 건네었다.
“흥, 이건 독약이야. 호호, 마실 용기가 있니?”
여자는 일부러 그러는 양 비웃음을 지었다. 청운은 그걸 받아서 쭉 들이켰다.
“그래도 남자랍시구, 폼생폼사네.”
여자는 뭐가 좋은지 낄낄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아, 배가 아파.” 
그녀는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정말 아픈 거예요?”
“음…… 배가 아니구 속이 아파. 가끔 한번씩 쿡쿡 쑤셔. 좀 주물러 줄래?”
청운은 손을 그녀의 배 위에 살짝 얹으려다가 멈췄다.
“병원엘 가보시죠.”
“그럴 돈이 어딨어. 설령 병원 갈 돈이 있더라도 차라리 성전에 희사하고 기도하는 게 낫지. 그래야만 우린 사람을 넘어 신인이 될 수 있어. 아, 아파…….”
여인의 찡그런 얼굴이 거짓말 같지 않아서 청운은 손을 그녀의 배로 가져가서 슬슬 문질렀다. 여자는 아늑히 호흡하면서 스스로 옷자락을 끌어 올렸다. 청운의 손은 저절로 여인의 배꼽 위 맨살에 닿았다. 부드럽고 따스한 피부의 감촉을 못 이긴 듯 그의 손은 저절로 여인의 배를 쓰다듬었다.
“음…….”
여인은 나지막이 신음을 흘렸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 청운의 머릿속엔 불현듯 어떤 기묘한 기억이 떠올랐다.

제주도에서 방랑하던 청운은 어느 날 휘적휘적 한라산으로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백록담이나 한번 보고, 그 거울 같은 신비한 물에 자신의 운명을 비춰 보고 싶었다. 그러고는 돌도 많고 바람도 많고 한도 많은 그 섬을 떠날 참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심한 비와 운무를 만나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결국 산중턱에 자리잡은 어느 암자로 찾아들게 되었다. 주지승은 머리를 파르라니 깎고 있었지만 눈알 가에 붉은 빛이 돌고 입술이 거무칙칙한 색을 띠어 그런지 스님이 아니라 어쩐지 무당 같아 보였다. 그가 입을 열자 금니들이 번쩍거렸다.
“불쌍스런 중생이로군. 마당에 빗자루질이라도 허멍 밥값을 허겡.”
산중이라 저녁 공양이 끝난 뒤 곧 어둠이 내렸다. 비는 줄기차게 쏟아졌다. 고시공부를 한다는 학생들 몇이 잡담을 나누다가 제각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자 산사는 빗소리 속에 더욱 적막해졌다.
청운은 홀로 야기 속에 서 있었다.
‘이상스런 느낌이 드는군. 나는 여기 있어. 그런데…… 별 멀지도 않은 예전에…… 이렇게 저렇게…… 그곳 저곳에서 살아 온 나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의 내가 허수아비처럼 느껴지는군. 아, 내가 아니라…… 옛날에 만나 얘기를 나눴던 그 사람들이 더 정답고 나 같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그곳에도 이처럼 비가 내리는지…… 그리고 박꽃누나와 피에로 형이 보고 싶어. 그 이상한 아저씨와 문둥이 누난 지금도 함께 있을까 몰라.’
독백을 하는 사이에 그는 빗발도 잊은 채 마당을 천천히 거닐었다. 
주지승 방의 창문에선 은은한 창호지를 통해 아직도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청운은 무심결에 그쪽으로 다가갔다. 어떤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혹은 쓸쓸한 인간을 보고 싶어서였을까?
그런데 방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은 두렵지도 않아여?”
여자의 잠겨드는 목소리였다.
“뭬가?”
“부처님의 신벌이…….”
“어허, 중생의 아픈 몸을 고치는 절차인데 뭣이 그리 두려워. 무서우면 가든지. 괜히 와서 그래. 흠!”
“아이, 좀 조용 하세요. 누가 듣겠세요.”
“누구라도 다 와서 보라 그래. 하늘도 부처님도 사람도 다 들으래지 뭐. 옴 도로도로…….”
“그래도 스님의 손길은 딱딱하면서도 부드럽네요. 아, 아…….”
여자의 신음소리가 자제를 못해 차츰 가팔라졌다.
청운은 빗소리를 핑계 삼아 겁도 없이 주지방 쪽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갑자기 방안의 불이 꺼졌다. 청운은 숨결을 목 속에 가두고 처마 아래서 몸을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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